<아산 20주기, 꿈과 도전의 현장을 찾다>되게하라… 峨山 정신으로 대한민국 산업 기틀 세우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논밭과 모래사장뿐이던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를 세웠고, 현대중공업은 조선 분야 세계 1위로 성장했다.

(上) 창조·혁신의 상징

오는 21일은 한국 경제발전과 산업 도약의 초석을 놓았던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20주기다. 아산이 별세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기업들은 정부·여당의 규제 입법 남발로 경영권을 위협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 명예회장이 보여줬던 뚝심과 도전, 창조의 기업가 정신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명예회장 20주기를 맞아 그의 투철한 기업가 정신이 배어 있는 현장을 찾아 경제 활력 회복과 재도약의 길을 모색해 본다.

■ 영빈관 언덕 오르니 조선소 한눈에… 독마다 컨테이너·LNG船 위용
-‘韓조선업 요람’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조선소 건물 외벽에 새겨놔

미포만 백사장 사진·지도
英서 빌린 도면 들고 출장
그리스서 대형유조선 수주
조선소·선박 건조 ‘동시에’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조선소이자 한국 조선업의 요람이다. 지난달 찾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는 아산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곳곳에 서려 있었다.

울산조선소 정문에 들어서니 조선소 내부 건물 외벽에 새겨진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 명예회장의 어록 중 하나다. 정문 왼편에 있는 현대중공업 본사 건물 1층에는 정 명예회장을 기리는 흉상이 설치돼 정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민규 현대중공업 차장은 “흉상은 2017년 정 명예회장의 탄생 102주년을 기념하고 기업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작,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울산조선소에는 다양한 선박 건조와 수리가 가능한 독이 9개 있으며(위 사진), 정주영 명예회장을 기념하는 아산 기념 전시실도 마련돼 있다(아래). 현대중공업 제공

흉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에는 ‘아산 정주영 창업자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를 창업해 우리나라의 산업근대화를 이룩한 큰 별’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흉상 옆에 설치된 벽에는 ‘시련이란,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가면서 나가면 된다’ 등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했던 발언들이 적혀 있었다.

정문 오른쪽의 체육관 뒤쪽에는 아산 기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정 명예회장의 생애와 경영 철학, 업적, 사회 공헌 등을 주제로 전시실이 나뉘어 있었다. 정 명예회장의 생전 사무실을 꾸며놓은 공간도 있었다. 낡은 소파와 집기, 옷들은 평소 검소하고 현장을 자주 찾았던 아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아산은 울산조선소에서 직원들과 씨름을 하며 막걸리도 같이 마셨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이 직원들과 이런 시간을 보냈던 조선소 내 언덕에는 영빈관이 설치돼 있다. 선주들이 조선소를 방문해 배가 지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영빈관 언덕에 오르니 조선소가 한눈에 들어왔다. 각 독에서 컨테이너선과 LNG 운반선 등이 단계별로 건조되고 있었다.

목선건조 중심이었던 한국에서 근대식 강선을 건조하는 조선업이 시작된 것은 1937년 부산에서 대한조선공사가 설립된 이후다. 대한조선공사는 해방 후인 1966년 2600GT(총t수)급 화물선, 1968년에는 4000GT급을 시작으로 최대 1만7000GT급 선박을 건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여전히 세계 시장점유율 1%도 안 되는 조선업 불모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 명예회장은 26만6000GT급 초대형유조선(VLCC)을 건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 명예회장의 현대중공업 설립에 얽힌 실화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 오늘날에도 세계 해운·조선업계에서 하나의 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1970년 ‘대한민국에서 배를 만들어내겠다’는 집념으로 울산 미포만의 모래사장 사진 한 장과 5만 분의 1 지도 한 장, 그리고 영국 스콧 리스고 조선소에서 빌린 26만GT급 VLCC 도면을 갖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그리스에서 VLCC 2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정 명예회장은 1972년 3월 조선소 기공식을 시작으로 2년 3개월 만인 1974년 6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준공식과 VLCC 2척에 대한 명명식을 진행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한 정 명예회장의 독특한 발상으로 가능했던 일”이라며 “현대중공업은 준공 10년 만인 1983년에 일본을 제치고 조선 분야 세계 1위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안으로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을 완성해 세계 1위 조선사 지위를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절차는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승인을 남겨두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9년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해 한국을 비롯한 6개국에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했고 그 중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중국에서는 승인을 받은 상태다.

울산 = 이정민 기자 j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