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지리산 속살에서 만난 기암과 수목들의 별천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상진, 미명(微明)-지리산, 53×45.5㎝, 캔버스에 아크릴, 2021

한반도에는 ‘두류(頭流)’라는 이름의 산이 많다. 지리산도 과거엔 두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백두산에서 왔다’는 의미로 백두대간과 같은 맥락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두류는 씩씩하고 우렁차구나(頭流壯且魁)’라 했던 그것이다. 웅장할 뿐 아니라 ‘슬기로움이 다르다’는 뜻의 지리(智異)라니, 산 이름치고는 참 범상치가 않다.

좁은 화각으로 표현된 한상진의 지리산은 숫제 색면추상화다. 장엄하고 과묵한 벽처럼만 느껴질 능선들이 수행으로 마주한 화가에게 숭고한 내면의 순간을 선사했다. 농밀한 공기에 부딪혀 포말처럼 산란(散亂)된 빛들의 오묘한 향연. 그저 관조만 했지, 이토록 울림을 주는 그윽한 화폭으로 승화될 줄이야.

백두대간의 대미 지리산을 일러 장이불수(壯而不秀)라 하여 빼어남이 아쉽다고들 한다. 하지만 큰 산에서 뿜어내는 위엄 앞에 그건 한낱 군더더기의 수사일 뿐이다. 그림처럼 유장하고 둔중해 보이지만, 그 속살에서 만나는 기암과 수목들의 별천지, 흥분과 희열의 연속이다. 영산의 비밀은 디테일에 있다.

이재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