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한국 자본시장 후진성 일깨운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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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계속되는 적자에도 100조 원이라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를 태극기로 덮었다. 이번 상장으로 10조 원 정도의 지분가치를 창출한 김범석 의장은 보통주는 없지만, 일반 주식의 29배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100% 보유하고 있어서, 상장 후에도 76.7%의 의결권을 유지할 수 있다.

쿠팡의 놀라운 상장 결과는 상당히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먼저, 한국의 다른 전자상거래 기업의 미래 가치가 재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불과,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기관투자가들은 관련 기업들에 대한 목표 주가를 수정했다. 둘째, 신생 기업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비록 재무적 관점에서는 적자지만, 미래 잠재력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초기 기업들이 훨씬 우호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셋째, 어려움을 감내하고 창업 전선에 나서는 기업가들이 받게 될 보상의 크기를 천양지차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쿠팡 상장은, 한국 경제가 시급히 풀어야 할 중대한 과제에 대한 경고문을 던진다.

첫째, 국내 기업들의 중요한 자금 조달 창구인 주식시장이 미국의 자본시장과 본격적인 경쟁을 해야 한다. 미 증시는 창업가에게 매우 우호적인 시장이다. 차등의결권을 논하기 전에, 미 증시는 한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나스닥과 뉴욕증시를 합치면 약 45조 달러 규모지만, 한국 증시는 2조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증시는 이제 우리보다 적어도 20배 이상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경쟁 상대를 만난 것이다.

둘째, 이제 국내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주식시장에 대한 인식과 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보석 같은 기업들을 계속 미국에 뺏길 가능성이 크다. 정부, 국민연금, 기관·개인투자자 모두 증시가 장기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시가총액 100조 원이 넘는 기업이 없다. 다른 상장 기업들도 미국에서 재상장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시가총액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기업가에 대한 국가적·경제적·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기업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어야만 반도체 산업이 유지될 수 있고, 보잉과 에어버스가 있어야만 항공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 인류의 삶과 생존에 절대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기업의 본질이다. 따라서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소중한 구성원이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반기업 정서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물론 일부 기업가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의 법적 대표이사는 매일같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서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는 푸념까지 들린다. 기업가들에게 무역의 날을 기념해 포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국가적·경제적·사회적 관점에서 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숙제는, 정부·경제계·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 한국 주식시장의 진정한 경쟁력을 창조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