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밀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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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시원하게 한잔 들이켜면 끝이겠지만 그래도 밀맥주는 고개를 갸우뚱해봐야 한다. 아니, 그 전에 한·중·일 세 나라의 맥주부터 살펴봐야 한다. 노란 빛깔에 하얀 거품의 이 술은 아무래도 우리의, 혹은 동양의 전통술로 보이지는 않는다. 보리에 홉을 첨가하고 거품이 나도록 빚은 술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으니 그렇다. 아니 이 술의 이름만 봐도 그렇다.

보리로 빚은 술이니 우리는 한자로 ‘맥주(麥酒)’라 쓰고 그렇게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자로 쓰기도 하지만 네덜란드어에서 차용한 ‘비루(ビ―ル)’라고 읽는다. 정작 한자의 본고향 중국에서는 ‘酒’라고 쓰고 ‘피지우(pijiu)’라고 발음한다. 보리와 관련짓기 싫었는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서양 말의 맥주 발음과 비슷한 한자를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를 들여와 ‘맥주 비’라는 훈과 음을 다시 붙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술의 뿌리가 서양에 있으니 그 이름을 달리 붙이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흰 맥주란 뜻의 바이젠비어(Weizenbier)에 이르러서는 다시 고민이 된다. 보리 대신 밀을 써서 맥주와 비슷하게 만든 이 술을 뭐라 해야 할까? 밀에 해당하는 한자는 따로 없고 소맥(小麥)만 있다. 그러니 정직하게 이름을 붙이자면 ‘소맥주’라 해야 한다. 밀맥주는 밀보리술이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이상하지만, 굳이 안 될 것도 없다. 본래 보리를 뜻하던 ‘맥’은 ‘소맥’과 ‘치맥’에 이르러서는 이미 ‘맥주’ 그 자체가 돼 버렸다. 전주 지역의 가게에서 먹는 맥주는 ‘가맥’이란 이름으로 지역 명물이 되기도 했다. 서양의 술이 들어와 우리의 마실 것의 일부가 됐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를 들여와 우리 말의 일부로 삼았다. 여기에 우리의 소주를 섞어 소맥을 만들고 치킨과 아울러 치맥을 만들었다. 잘 어우러질 수만 있다면 말이든 음식이든 입에 착 달라붙으면 그만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