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가족 먹여살리느라 힘들어도… 한잔 술에 시름 털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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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연(1922∼1990)

영탁의 ‘막걸리 한잔’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다 보니 유난히 막걸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 구멍가게로 막걸리 심부름을 보내셨던 때를 회상해 봅니다. 김치 몇 조각을 안주 삼아 홀짝홀짝 사발에 든 막걸리를 마시며 허기를 달래시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평상시 공기의 고마움을 잘 모르듯이 생전 아버지의 존재감과 가족에 대한 헌신의 위대성을 몰랐습니다. 철부지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돼 세월의 무게와 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저의 양어깨에 짊어지는 순간에야 당신의 존재감을 저절로 느끼며 그 중량감이 엄청나다는 것을 뼛속으로 절감합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화려한 수사보다는 과묵함으로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최선을 다하신 당신의 헌신적 리더십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땐 잘 몰랐지만, 그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이제야 깨우칩니다.

아버지는 1960년대 초반만 해도 삼륜차 운수업에 종사하시며 자부심을 가지셨고, 운전대를 잡으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행복해하셨습니다. 온종일 장거리 운전으로 등골이 빠지도록 힘드셔도 내색조차 하지 않으셨지요. 8명 식구 단칸방에서 밤새 끙끙 앓으시는 아버지의 신음을 들으며 자식들을 위한 헌신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비 납부일을 못 맞추면 자식들 기가 죽지 않을까, 절대빈곤에 배고픔으로 힘들지 않을까 밤새 노심초사하시면서도 아침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달걀 2알에 참기름을 넣어 후루룩 마시고는 서둘러 일터로 떠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멀리 장거리 운행을 떠날 때면 옆자리에 저를 태우고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아버지의 숨결이 그립습니다. 예닐곱 살 어린 눈으로 본 세상은 마냥 신기하고 의문투성이라 쉴 틈 없이 질문해도 손수 몰던 삼륜차에서 차근차근 답해주시던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납니다.

형편상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군인의 길을 선택해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던 날, 멋쩍은 웃음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 주시면서 “우리 아들 장하다. 그리고 고맙다”고 하신 그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폐암으로 병상에 누워 계시면서 저세상에 가서라도 자식들 모두 잘살게 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셨지요. 아버지, 이제는 모든 짐 내려놓으시고 편하게 쉬세요.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이준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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