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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지적 문화 시점 게재 일자 : 2021년 03월 23일(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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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해야 할 지역별 ‘작은 출판사들’

재주상회 ‘제주의 특벨헌 맛’ 2만부 팔려… 통영 명소 된 ‘남해의 봄날’은 해외언론서도 주목

귀농부부가 만드는 ‘하동 상추쌈’… 친환경에 주목 ‘순천 열매하나’… 대전 이야기 다루는 ‘이유출판사’

영어·불어로도 출간 예정 ‘강화 딸기책방’… 골목잡지 내는 ‘수원 더페이퍼’… 강원살이 인터뷰 ‘고성 온다프레스’


저 멀리 경남 통영에 있는 출판사에서 수만 부 이상 팔리는 책을 만들었다길래 전화를 걸었더니, “강원도에도 좋은 출판사가 있지요” 한다. 강원 고성에 연락했더니, 이번엔 전남 순천으로 가란다. 순천에서는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천에, 그냥 다 살펴보기로 했다. ‘책 덕후’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힙’한 로컬 출판사 10. ‘그곳’이어서 만들 수 있었던 책과 출판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른바 작은 출판사 전국 지도. 로컬이 대세인 시대. 도시화, 세계화로 인해 비슷비슷해진 취향들 사이에서 오히려 빛나는 ‘지역 감성’을 만나본다.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 서울에서 10여 년 잡지 기자로 일했던 고선영 대표가 제주에 내려와 만든 출판사. ‘살아보는 여행’을 주제로 한 라이프스타일 잡지 ‘인(iiin)’을 발행한다. “제주 고씨이긴 한데, 정작 고향은 서울이에요. 그래도 성씨 덕인지 제주와 인연이 깊은 것 같네요.” ‘재주상회’라는 이름 때문에 출판 외 다른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출판이 메인이고, 모든 것이 잡지로부터 출발한다. 고 대표는 “제주의 가치 있는 것을 매거진에 담은 후, 그 콘텐츠를 다시 오프라인으로 이끌어 낸다”고 했다. 그것은 제주 작가들의 전시가 되기도 하고, 제주의 맛을 담은 음식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되기도 한다. 책방과 레스토랑 등이 자연스럽게 재주상회의 공간이 된 이유다. 과월호를 찾는 이가 있을 정도로 잡지는 이미 힙스터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단행본 형태로 출간하는 특별판도 인기인데, 절판된 ‘제주의 특벨헌 맛’은 2만 부가 넘게 팔렸다.

◇남해의 봄날 = 서울에서 오랜 편집자 경력을 쌓은 정은영 대표가 이끌고 있는 곳. 사실 ‘남해’라 이름 붙였지만 통영에 있다. 신생 작은 출판사들에 길잡이가 돼주고 있으며, 발간하는 책은 수도권 대형 출판사들의 책만큼이나 화제 몰이를 한다. 아니다, 전국구를 넘어 글로벌하게 ‘논다’. 해외 언론에도 소개된 책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대표적. 폐업 위기 출판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책으로,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 가장 ‘힙’한 ‘로컬’ 출판사 하나를 잃었을지도. 지역에 대한 기록이자, 지역만의 감성을 살린 로컬북스도 꾸준히 펴낸다. 최근 나온 ‘통영 백미’의 반응이 좋다. 함께 운영하는 서점 ‘봄날의 책방’은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통영의 명소. 무엇보다 정 대표는 타 지역 작은 출판사, 책방들과의 연대를 늘 모색하고 있는데, 그래서 나온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도 남해의 봄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상추쌈출판사 = 편집자로 일하다 경남 하동으로 귀농한 부부가 농사일을 하며 천천히 자신들만의 속도로 책을 만드는 곳. 로컬 출판사라 해도, 이런 시골은 드물다. 전화 인터뷰 중 경운기 소리에 잠시 멈춰야 했다. 관심사는 자연, 교육, 그리고 마을. 전광진 대표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매일 마주하는 풍경도 아름다운데,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까지 받는다. “아이가 있는 집이 우리 집밖에 없는데, 이웃 어른들이 모두 함께 챙겨 줍니다.” 절판됐던 니시오카 쓰네카즈(西岡常一)의 ‘나무에게 배운다’를 상추쌈이 복간했다. 전 대표는 “처음 와서 좌충우돌하던 시절, 잠든 아이를 옆에 두고 부부가 소리 내어 이 책을 읽어주었다”고 했다. 서정홍 시인의 시집 ‘그대로 둔다’도 상추쌈의 철학을 닮은 책이다. 농사짓는 하루하루의 기쁨, 마을 공동체의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데, 농사짓는 시인의 시를 농사짓는 출판사가 펴냈으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올해는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를 출간한다. 전 대표는 “진정한 대안은 자연으로 돌아가는(귀농)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책이에요. 상추쌈이 지역 자치나 마을의 교육, 농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펴내는 것이 자연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열매하나 = 일상과 가까운 거리에 순천만, 와온해변, 국가정원이 있는 곳. 서울에서 시작한 ‘열매하나’는 첫 북토크를 순천의 작은 책방에서 했다. 조용한 도심과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에 반해, 연고도 없는 순천으로 바로 달려왔다는 천소희 대표. 작은 열매 하나가 청년들의 삶에 새로운 씨앗이 된 이야기를 읽은 후 출판사 이름을 열매하나로 지었다. 그런 ‘시작의 열매’ 같은 책을 내고 싶어서. 생태환경 분야와 자립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책을 출간한다.

천 대표가 애정하는 책은 열매하나를 순천으로 향하게 한 첫 북토크의 책 ‘이파브르의 탐구생활’이다. 서울에 살던 저자가 강원도 시골로 이주해 친환경 삶을 실천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담았다. 가장 잘 팔린 책은 센쥬 히로시의 그림책 ‘별이 내리는 밤에’. 몇 해 전 일본의 책방에서 발견한 책으로, 저자는 방탄소년단의 RM이 좋아하는 걸로도 알려진 유명 작가다. “출판사를 하게 될지 전혀 몰랐던 때에 만난 책인데…열매하나에서 가장 사랑받은 책이 됐으니, 책의 인연은 참 신기하지요.” 천 대표는 순천 독자들로부터 이곳에서 계속 책을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말을 듣곤 한다면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천천히 담아내려 한다. 이곳의 문화가 풍성해지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유출판 = 책을 좋아하는 건축가 남편과 디자이너 아내가 ‘1인 출판’의 가능성을 믿고 무작정 시작했다. 서울에서 문을 열었지만, 이제는 ‘대전의 출판사’다. 대전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이기도 한 유정미 대표는 10년 넘게 서울-대전 출퇴근을 하다가 언제까지 ‘아웃사이더’ 입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역의 문제를 외면할 수 있을지 자문했고, 거주지와 함께 출판사 이전을 결심하게 됐다. 5년째 학생들과 대전 원도심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묶은 기록집 ‘오! 대전’을 펴내고 있다. 유 대표는 “지금 사는 곳이 세상의 한복판이고 출판이야말로 이런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분야”라고 했다. 이유를 대표하는 책으로는 헨리 플러머의 ‘건축의 경험’과 군터 숄츠의 ‘바다의 철학’. 전자는 철학의 영역에만 머무르던 개념들을 건축을 통해 일상적 행위와 연결하며, 후자는 칸트, 헤겔, 니체 등 여러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을 ‘바다’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딸기책방 =‘글과 그림이 어울려 즐거운 책’을 모토로, 그림책, 어린이 책, 만화책, 그래픽노블 등을 만든다. 푸른숲, 휴머니스트 등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위원석 대표가 프리랜서로 독립하며 인천 강화에 집을 지은 게 연이 됐다. “좋아하는 지역에서 일할 수 있어서 즐겁죠.” 출판사 첫 책인 문승연 작가의 ‘노랑, 파랑, 빨강, 세상을 물들여요’를 대표 책으로 꼽았다. 또,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노블 ‘기다림’은 강화도 작가와 강화도 출판사가 만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곧 영어와 프랑스어로도 출간된다고 하니 ‘로컬’에서 탄생한 ‘글로벌’ 그래픽노블인 셈이다. 함께 운영하는 하늘색 책방은 강화여행 필수 코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단골 어린이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에 “심심하진 않다”는 위 대표. 곧 어린이들과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책을 준비 중이다.

◇더페이퍼 =“수도권으로 묶이면서 오히려 자기만의 기록문화 콘텐츠가 빈약해지는 곳이 경기도 같아요.” 10여 년째 수원의 골목잡지 ‘사이다’를 발행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최서영 대표는 “서울이랑 가깝다고 색깔이 없는 게 아니다”며 “내 근처에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야 진짜 ‘로컬’문화 콘텐츠다”라고 말했다. 계간 무가지 사이다는 이미 유명하다. 수원의 골목골목에서 마주치는 외국인 관광객들 손에는 늘 이 잡지(영문판도 나온다)가 들려 있다. 대표적인 단행본으로는 ‘이제 안녕, 도룡마을’로,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돼 사라지게 된 경기 의왕시 도룡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을 기록한 것이다. 최 대표는 이렇게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남길 수 있는 기록자들을 늘리기 위해 ‘마을기록 학교’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프로젝트 결과물이 담긴 ‘누구나 마을 아카이브’는 골목 문화의 의미와 가치, 취재 방법까지 담긴 일종의 교과서다.

◇온다프레스 = 서울살이를 접고 느슨한 마음으로 귀촌했다가, ‘이야기’를 발견하고 말았다. 출판 일을 다시 안 할 재간이 없었다. 서울에서 편집자로 오래 일한 박대우 대표는 고성 지역만의 독특한 지역색을 책에 담는다. 고성 주민들 말씨에서 영감을 얻은 ‘북한 여행 회화’와 속초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작가가 펼쳐 보이는 ‘동쪽의 밥상’.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이 많은데, 그중 출판사를 가장 대중적으로 알린 대표 책을 꼽으라면 역시 ‘온다 씨의 강원도’다. 박 대표처럼 강원도 살이에 나선 사람들의 인터뷰집으로, 서울 밖 지역 이주 그리고 로컬 출판사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중증 화상 사고를 겪은 일곱 사람이 사고 당시의 기억, 치료 과정, 그리고 그 뒤의 일상을 돌아본 인터뷰집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는 박 대표의 출판 철학, 출간 방향성 등을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산지니 = 산지니는 2015년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란 책을 통해 지역 출판사로 생존해온 10년간을 회고한 바 있다. 일찌감치 ‘로컬’ 정체성을 바탕으로 설립된 산지니 출판사는 1990∼2000년대 출판이 수도권에 집중되던 시기에 부산에 둥지를 틀면서 화제가 됐다. 지역 기반 작가나 학자를 발굴해 꾸준히 책을 발간했다는 점에서 로컬 출판의 정석, 모범을 가장 잘 보여준 곳이다. 주로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다루며, 서울의 대형 출판사들이 조명하지 못하는 지역의 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강수걸 대표는 지역별로 자발적 출판인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 “로컬 출판사들은 자연스럽게 지역 문화를 기록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왜소해졌던 지역출판이 활기를 되찾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물코 = 장은성 대표가 꽃 농사를 지으며 느릿느릿 생태 관련 책을 내는 곳. 해마다 5∼6권은 낼 정도로 꾸준하다. 다만, 전국 서점으로 유통하지 않으니 다소 눈에 덜 띈다. 마을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다시 지역의 장소를 이용해 책을 판다. 장 대표는 “요즘 늘어나는 지역 출판사가 정말 지역 특색을 갖고, 지역 문화에 기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예쁜 책방과 SNS를 활용한 홍보 등 지리적 위치만 시골일 뿐, 모두 전국구 출판사를 향해 가고 있다는 의미다. 충남 홍성으로 이주한 지 벌써 16년. 책방은 무인으로 운영하다가 닫았고, 요즘은 농장의 형태를 갖추는 데에 힘쓰고 있다. 그 와중에 그물코의 대표 책이자 첫 책인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는 여전한 스테디셀러. 대안적 소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초창기 책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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