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항상 링에 오르듯 무대 선 ‘거장 듀오’… 勝敗 대신 ‘음악’만 있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사이먼 & 가펑클 ‘The Boxer’

마치 변덕스러운 날씨 같다. “사람이 달라진 건가.” 옆에서 누가 영화 대사같이 말을 보탠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기어이 영화 ‘봄날은 간다’(2001)의 그 장면을 찾아본다. 버스에서 내린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에게 통보한다. “우리 헤어지자.” 상우가 다짐한다. “내가 잘할게.” 은수는 단호하다. “헤어져.” 상우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너 나 사랑하니.” 침묵이 흐른 후 문제의 대사가 나온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지금 내게 묻는다면 대답 대신 노래를 부르겠다. ‘우리가 사랑했을까/ 그게 사랑이긴 했을까’(하림 ‘무언가’ 중).

은수(라디오 PD이자 DJ)가 상우(녹음실 소리채집자)에게 건네는 첫 대사도 의미심장하다. “근데 좀 늦으셨네요.” 늦어서야 깨닫는 것들이 영화에만 있을까. 포스터를 보니 제목 앞에 작은 글씨들이 적혀 있다.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아지랑이처럼 노래 하나가 스쳐간다. ‘내님의 사랑은 철따라 흘러간다/ 봄바람에 아롱대는 언덕 저편 아지랑이’(양희은 ‘내님의 사랑은’ 중). 이 노래의 작사·작곡가는 ‘따로 또 같이’로 활동한 이주원이다. 노래 속엔 여러 계절이 등장한다. ‘가을바람에 떨어진/ 비에 젖은 작은 낙엽 (중략) 새하얀 눈길 위로/ 남겨지는 발자욱들’. 그리고 마지막 탄식 하나가 여운을 남긴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사랑과 외로움을 한 바구니에 담을 순 없다. 그래서 나온 지혜의 말씀이 ‘따로 또 같이’다. 같이 있을 땐 몰랐다가 따로 떨어지면 소중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래가 대략 4분이라면 빙상은 2분 50초의 쇼트 프로그램과 4분 10초의 프리 스케이팅을 합해서 7분이다. ‘김연아의 7분 드라마’는 그래서 나온 제목이다. 김연아는 자서전에 “세상에 뭐 저런 애가 있나 생각했지만 누가 물으면 아사다를 이기려고 피겨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게 가능할까. 둘은 똑같이 1990년 9월생이다. 아사다 마오 역시 나중에서야 진심을 밝혔다. “예전에 질문을 받으면 저는 저 자신만 이기면 된다고 말했죠. 사실은 연아를 이기는 게 목표였어요.”

비교하는 건 쉽지만 비교당하는 건 고역이다. 두 선수 중 누가 우월하냐는 질문에 비교 대신 비유로 답했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이를테면 한 사람은 수선화에, 한 사람은 장미에 비유하며 각자의 향기가 다를 뿐 둘 다 최고라고 추켜세웠다. 지혜로운 처신이다. 어떤 분야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놓고 누가 더 훌륭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사람은 비처럼 시원하고, 한 사람은 음악처럼 달콤하다’고 말하며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부르겠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목요일은 4월의 시작이다. 사랑은 철 따라 흘러가도 봄비는 대지와 입을 맞춘다. 사이먼 & 가펑클의 ‘에이프릴 컴 쉬 윌(April come she will)’도 선곡 리스트에 포함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지만 둘이 늘 다정하진 않았다. 팀 이름도 처음엔 톰과 제리(Tom & Jerry)였다. 링 위에서 싸우다가 감정이 상했다고 악수도 안 한 채 헤어진다면 팬들도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사이먼 & 가펑클의 ‘권투선수’(The Boxer)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린다(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불멸의 히트곡 제목처럼 ‘침묵의 소리’(Sounds of Silence)에도 귀를 기울인다면 세상이 험해도 우정의 다리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Bridge Over Troubled Water)

평생을 사이먼과 비교당한 가펑클은 2015년 2월 내한공연 때 이런 말을 했다. “듀엣 활동이 버드나무(willow tree) 같았다면 솔로 활동은 참나무(oak tree) 같았어요.” 두 나무 중 어느 나무가 더 비싼지 되묻는 기자는 없었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