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2.10.7 금요일
전광판
Hot Click
인물일반
[인물] 그립습니다 게재 일자 : 2021년 03월 30일(火)
가족위해 희생했던 작은 누님… 시신 기부로 마지막까지 헌신해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정진희(1955∼2005))

작은 누님은 우리 형제 중 유일하게 야간 실업계 학교를 나왔다. 7남매의 치열했던 등록금 전쟁 속에서 흔쾌히 야간 학교를 택했고 낮에는 매점에서 일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고달픈 여정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남매 중 가장 명랑하게 집안 분위기를 이끌어 가신 것 같다.

그 당시 라디오 연속극에 ‘남궁동자’라는 억센 여자 주인공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작은 누님을 자주 남궁동자라 부르셨다. 그만큼 발랄했고 야간 학교에 다니면서도 어두운 그림자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산과 부기를 잘해서 최고 등급인 1급 자격을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대표로 주산 경연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늘 자랑거리였다. 고졸임에도 고등학교 실기교사가 됐고 꾸준히 노력해 기어코 정규교사로 임용되는 쾌거도 누리게 됐다. 교직에 있으면서 틈틈이 공부해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자책감에 빠져 계시던 아버지와 엄마는 물론이고 온 가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던 누님에게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조카를 임신했지만, 병원에서는 ‘출산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신장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서 ‘아기를 출산할 경우 산모가 위험해진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누님은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리해서 기어코 조카를 출산했다. 조카가 태어나서부터 힘들게 투석을 이어가던 중 기적같이 신장을 제공하겠다는 천사가 나타나 이식수술을 받으며 정말로 오랜 고생 끝에 건강을 회복하게 됐다.

잠시 행복한 순간이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자궁암에 걸린 것이다. 의사에게서 이제 신장보다는 자궁암으로부터 번진 암 치료에 전념하라는 포기 선언을 듣게 됐다. 치열한 투병이 시작되자 머리털도 빠지며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교직도 내려놓고 그야말로 살기 위한 마지막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치료가 진행되던 어느 날 누님은 자신이 죽으면 치료해주던 병원에 시신을 기증해서 의사지망생들의 연구 교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놀랍고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도 누님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 처절했던 병마와의 싸움을 내려놓고 멀리 떠나가셨다. 장례식이라고 해야 병원 장례식장에서 의대로 시신을 옮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제자들을 마지막까지 챙겨주지 못하고 병마와 싸우느라 그만두게 된 것을 무엇보다 아쉬워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제자가 찾아와 작은 누님의 가는 길을 눈물로 환송해 줬다.

죽어서도 아낌없이 자신을 연구 교재로 사용토록 하고 떠난 작은 누님의 희생정신은 의사의 만류조차 뿌리치고 어렵게 태어난 하나뿐인 조카의 성장에 큰 자극제가 됐다. 조카는 이제 어엿한 공학박사가 돼 연구원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훌륭한 인재가 됐다. 늘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을 돌봐야 했던 작은 누님의 지나온 과정은 애틋하게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바로 위 누나라서 소꿉장난하던 시절과 함께 더욱 그립기만 하다.

바로 아래 동생 정희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 많이 본 기사 ]
▶ 민주, “근무시간 중 뻘짓거리하다 사고나면 공상?”...서해..
▶ [단독] 구속 기간 만료 박수홍 친형, 석방되나? … 검찰 기..
▶ ‘내후년 총선출마?’...박지원 “대선 나오라는 사람이 제일..
▶ ‘인구절벽’에 대한민국 침몰 위기… 성장 모멘텀 상실 징후..
▶ 우크라, 2014년 러시아에 뺏긴 크름반도도 탈환 가능?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필로폰 팔아 2500만원 번 병장 … ..
‘내후년 총선출마?’...박지원 “대선 나..
‘국정농단’ 최서원, 악성댓글 누리꾼 ..
SSG 승리의 부적 … ‘족발집 회식’
부산 서면지하상가 여자 화장실서 영..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7.15 | 회장 : 이병규 | 발행·편집인 : 김병직 | 발행연월일 : 1991.11.1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