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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1년 04월 02일(金)
혐오로 먹고사는 ‘나쁜 관종’… 세상을 분열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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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보커터 | 김내훈 지음 | 서해문집

‘좋아요’·‘구독’ 늘수록 돈이 되는‘주목경제의 시대’
관심받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않아
이슈 될 만한 인사들 상대로 모욕·도발·음모론 난무
끼리끼리 소통·사유의 외주화 경향과 결합해 공동체 위협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아동 성착취와 인신매매를 즐긴다는 내용의 음모론이 떠돌았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의 이메일이 해킹돼 공개됐는데, ‘아동 포르노(Child Pornography)’와 이니셜이 같은 ‘치즈 피자(Cheese Pizza)’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했다는 게 근거로 제시됐다. 설마 이런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 거라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겠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셀프 희화화’로 사람을 불러모으던 앨릭스 존스라는 유튜버가 이 음모론 퍼 나르기에 합류, 힐러리와 민주당 인사들이 아동 성착취를 일삼는 악마 숭배자들이며 워싱턴DC 어딘가에서 인신매매 시장을 운영한다는 식으로 살을 붙여 나갔다. ‘피자 게이트’라고 명명된 이 사건은 결국 한 28세 남성이 ‘인신매매 시장’으로 잘못 알려진 피자 가게로 쳐들어가 총기를 난사하는 데 이르렀다. 끝이 아니었다. ‘피자 게이트’는 미국 내 최대 음모론 네트워크로 불리는 ‘큐어논(QAnon)’ 탄생의 계기가 됐고, 큐어논은 2021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패배를 부인하는 연방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의 주도 세력으로 지목됐다. 가히 ‘악(惡)의 나비효과’라 할 만하다.

새 책 ‘프로보커터’(서해문집)의 저자 김내훈은 이 사건이 주목받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프로보커터(Provocateur)가 공동체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그 실체를 파헤친다. ‘(특정한) 반응을 유발하다’ ‘화나게(짜증나게) 하다/도발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영어 단어 ‘provoke’에 뿌리를 둔 프로보커터는 “인터넷 등에서 글이나 영상으로 특정인이나 집단을 도발함으로써 조회 수를 끌어올리고, 그렇게 확보한 세간의 주목을 밑천 삼아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도발자’로 부를 만한 이들은 한마디로 ‘나쁜 관종(관심종자)’인 셈이다.

저자는 10대의 나이에 인터넷 시대의 영웅으로 승천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아모스 이의 사례를 통해 프로보커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경로를 걷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싱가포르 태생의 아모스는 불과 11세에 직접 기획·촬영·연기·편집한 단편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으나, 이는 관심병으로 이어졌다. 세인들의 관심이 사그라들 때마다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통해 ‘대형 사고’를 이어갔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사망을 조롱하는가 하면 그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성관계를 갖는 모습의 짜깁기 사진, 이슬람 경전 쿠란을 깔고 앉아 자위하는 듯한 영상 등을 올리기도 했다. 강한 비난이나 수사 당국의 체포는 오히려 그의 망동을 부추기는 연료가 됐다. 아모스의 기행은 결국 17세에 소아성애와 아동 성착취를 옹호하는 주장을 펴는 ‘자폭’으로 막을 내렸다.

저자는 아모스와 같은 프로보커터가 “하늘에서 떨어진 별종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주목과 관심에 환금성이 부여되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 조회 수에 자아를 동기화하는 관종의 시대, ‘좋아요’와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상상 밖의 추태를 불사하고, 사회적 금도를 넘나드는 무질서의 시대가 그것이다.”

주목 경제의 시대는 정보 공급자들을 격한 경쟁으로 내몬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 ‘부고란만 아니면 무조건 언론에 나오는 게 좋다’는 우스개는 더 이상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선 양질의 콘텐츠는 밀려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만 남는다. 사회적 금도는 ‘선 넘기’에 형해화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남의 판단을 좇는 ‘사유의 외주화’ ‘사유의 밈(Meme)화’ 경향, 초연결된 사회에서 오히려 끼리끼리만 소통하는 ‘반향실 효과’ 등이 프로보커터 현상과 결합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프로보커터들은 ‘우리’와 ‘그들’을 편 가르고, 구조적인 문제를 ‘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의인화가 얼마나 손쉬운 장사 수단인지 간파했다. 긴 생각이 필요 없는 이들의 직관적인 퍼포먼스가 공론장을 유린하면서 이성적인 담론과 토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이슈가 될 만한 인사를 상대로 한 모욕적 도발, 음모론을 무기로 한 선동, 마구잡이식 배설 등만 난무한다.

저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서민 단국대 교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강용석 전 국회의원 등을 진보·보수 상관없이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프로보커터로 규정하고 가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들의 말과 글을 인용해 온 언론에 대해서도 “‘대안 언론’을 표방하는 프로보커터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저자의 이런 프로보커터 분류법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도 있을 법하다. 다만, 프로보커터들이 무기로 쓰는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보통 사람들의 언어에 스며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흘려듣기 어렵다.

저자의 이력이 이채롭다. 작곡을 공부하다 접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영상·문화·사회·정치·철학을 두루 익히기 위해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있다고 한다. 1992년생으로, 이번에 처음 책을 냈다. 주목해야 할 새로운 저자가 나타난 것 같다. 232쪽, 1만5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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