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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1년 04월 02일(金)
김영민이란 무엇인가…“칼럼니스트? 소설가? 내 정체성은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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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은 안 나왔으면…지인들이 전도연 닮았대, 하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서울 마포구 사회평론아카데미 인근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다. 김 교수는 “(얼굴이 알려져) 유명해지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자유가 침해당하는 등 부담스러운 부분도 많다. 아주 잘생긴 사람이라면 ‘대국민 서비스’의 의미라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무슨…”이라며 ‘옆모습’ 사진을 요청했다. 얼굴 얘기가 나온 김에 “에세이집과 페이스북 등에 적은 ‘배우 전도연을 닮았다’는 말은 뭔가”라고 묻자 “서울대 모 학장님을 비롯해 여러 지인이 한 얘기다. 한국 중년 남성이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신기하지 않나. 내가 직접 명시적으로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껄껄 웃었다. 김낙중 기자

■ ‘질문하는 학자’ 김영민 서울대 교수

많은 글 쓰기 위해 시간 관리
동창회·골프·술자리 멀리해
차 관리하기 싫어 운전도 안해

흔히 수단화된 입시공부 익숙
목적없이 공부하면 지적 성장

소설 구상 위해 산책때 잡생각
차마 입에 담지못할 구상·메모

내 연구 관심사는 ‘모순적 대상’
한국 사회선 다스리는 사람이
비판·저항의 언어 많이써 흥미


명절 밥상에서 날아드는 불편한 질문에 대처하는 요령을 일러준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통쾌한 해방감을 안겨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에겐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공부란 무엇인가’를 펴낸 에세이스트인 동시에 지난 2월 ‘중국정치사상사’를 출간한 정치사상 연구자다. 지난해 말 창간한 서평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엔 ‘김영민의 먹물 누아르’라는 시리즈 문패를 걸고 두 편의 단편소설을 실었다. 그는 학자인가, 소설가인가, 칼럼니스트인가.

최근 서울 마포구 사회평론아카데미에서 만난 그에게 물었다. “김영민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글쓰기는 ‘연구자 김영민’으로 통합·수렴된다.” 칼럼도, 에세이도, 소설도 결국은 ‘더 나은 연구’를 위한 마중물이라는 얘기일까. 한 번의 만남과 추가로 진행한 짧은 서면 문답으로 ‘김영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온전한 답을 구하진 못했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연구자 김영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TV 출연 같은 외부 활동에 기대지 않고 오직 ‘글’만으로 이름값을 쌓아 올린 ‘연구자 김영민’과의 대화는 봄학기 캠퍼스 풍경에서 시작했다.

―온라인 수업엔 좀 적응이 됐는지.

“적응이 안 됐을 뿐만 아니라 적응되면 안 될 것 같다. 온라인 수업을 ‘뉴노멀’이라고 포장하는 것에 반대한다. 영원히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지만, 온라인 수업을 너무 쉽게 수용하면 ‘만남’을 통해 이뤘거나 배운 것들을 잊게 될 공산이 크다. 학교로 오며 떠올리는 생각부터 수업에 들어오기 전 친구·선생님과 나누는 얘기들까지 여러 제반 상황에서 얻어지는 진짜 ‘배움’이 있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뼈대가 수업인데, 온라인 수업엔 ‘뼈’만 있고 ‘살’이 없다. ‘인터넷 강의’는 보다 나은 것을 하지 못해서 할 수 없이 하는 차선책이라는 의식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칼럼과 학술서에 소설까지 매우 많은 글을 쓰는데 시간이 모자라진 않나.

“글 쓰는 건 연구자로서 평생 해온 일이라 다른 사람보단 시간이 덜 걸린다. 또 남들이 쓰는 시간을 안 쓰면 ‘시간 관리’를 잘할 수 있다. 경조사를 드물게 가고, 한국 중년 남성들이 흔히 하는 동창회·골프·술자리를 다 멀리하는 편이다. 차 수리나 관리에 시간을 뺏기기 싫어 운전도 하지 않는다. 오늘 인터뷰 장소에도 택시를 타고 왔다.”

―‘좋은 글’은 어떤 글인가.

“에세이·논술문·논문·보고서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니 모든 종류의 글에 적용되는 공통점을 찾기는 힘들다. 다만 한 가지만 꼽자면 ‘비문’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문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詩)가 아니라면 말이다.”

―‘쉬운 글’ ‘어려운 글’ ‘흥미로운 글’ 중에 어떤 글을 지향해야 하나.

“너무 쉽게 느껴지는 글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나 편견을 확인하는 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좀 어렵긴 해도 흥미로워 자꾸 읽고 싶어지는 글이 좋지 않을까.”

―에세이집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공부라는 행위를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이라고 표현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공부는 수단화된 공부 아닌가. 대표적인 예로 ‘입시공부’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기적’을 바라지 않고 특별한 목적 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공부하다 보면 뭔가가 일어난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그렇지 않나. 목적이 있는 만남도 있지만, 목적 없는 만남이 반복될 때 사람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다.”

―학창 시절 ‘목적 없는 공부’의 재미를 어떻게 찾았나.

“고등학교 때 매주 시립도서관의 독서회에 나가 싼값으로 구할 수 있던 삼중당 문고를 읽었다. 돌이켜보니 입시공부보단 그런 독서가 ‘지적 성장’에 더 도움이 됐다.”

그는 최근 ‘서울리뷰오브북스’ 창간 준비호(0호)와 창간호에 단편 ‘이것은 필멸자의 죽음일 뿐이다’ ‘불타는 전두엽의 최후’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각각 ‘PDF 파일로 변한 책’ ‘노벨문학상을 목표로 K-팝 아이돌처럼 육성되는 노벨돌’을 소재로 통렬한 유머 감각과 까칠한 반골 기질을 드러낸다.

―지성과 예술의 종말에 대한 씁쓸한 블랙 코미디로 읽었다. 우리 시대에 대한 풍자인가.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문학적 형식을 사용한 이유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다. 소설을 써놓고 ‘지금부터 내가 해설해 줄게’라고 말하는 소설가는 별로 없을 것이다.”

―소설 구상은 어떻게 하나. 앞으로도 계속 쓸 건가.

“산책할 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잡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메모해뒀다가 적당한 시점이 되면 소설을 쓴다. ‘김영민의 먹물 누아르’라는 시리즈로 꾸준히 쓰려고 한다.”

―지난 2월 국내 학자의 첫 중국정치사상 통사인 ‘중국정치사상사’를 냈다. 왜 하필 중국인가.

“한국을 잘 이해하려면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된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한국인들의 생각과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언어’ 자체가 중국에서 발달한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계를 모르면 한국의 역사도, 사상도 이해하기 어렵다.”

책은 2017년 나온 영어판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을 수정·보완한 920쪽짜리 대작으로 중국을 전제국가로 보는 기존 패러다임에 반기를 든다.

―‘유교를 단일한 덩어리로 여기면 중국정치사상의 복합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건 어떤 뜻인가.

“소위 말하는 ‘유교 전통’은 한두 해 만에 생긴 게 아니다. 2000년 이상의 긴 전통이 있고, 그 속에서 변화가 없을 수 없다. 그 복합적 의미를 제거한 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교를 단순화시켜 설명하는 건 실체 파악에 도움이 안 된다.”

―기존 중국학자들이 반복한 ‘중국 역사는 세기를 걸쳐 내려온 연속체’라는 관념에도 이의를 제기하는데.

“사실이 아닌 그 주장을 받아들이면 인간이 역사적인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중국 정부가 강조해온 ‘통일성’이란 아슬아슬한 균형 상태에 불과하고, 청나라·대한제국·한국·일본·베트남은 각기 다른 관념으로서의 ‘중화’를 주장했다. 중화를 제대로 살피려면 중국 민족사의 틀에 갇혀선 안 된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정치사상으로 방향을 튼 계기는.

“(철학이나 정치사상이나) 다 비슷하지만, 정치사상은 순수한 관념적 주장만 다루지 않고 현실 속에서 작동하고 수용되는 사상을 둘러싼 역동적 과정을 공부한다. 정치사상이 현실과의 교섭 안에 있는 것이라면, 어떤 정치공동체의 사상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정치에 가장 관심이 있으나 한국만 공부한다고 잘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동아시아로) ‘우회’하는 것이다.”

―우회를 통해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지점은.

“학문적으로는 한국정치사상사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먹는다고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니 장담할 순 없다.”

―에세이집부터 ‘먹물 누아르’ ‘중국정치사상사’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정체성을 묻는 작업이 왜 중요한가.

“대상이나 상황을 무비판적 태도로 받아들여 문제가 없다면 괜찮지만, 어떤 문제가 감지된다면 당연해 보이는 것, 당연시하던 것을 재고하는 데 이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뭔가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유효하다.”

―학자로서, 칼럼니스트로서,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다른가.

“부분적으로 다를지 몰라도 궁극적으론 질문하고 탐구하는 존재, 즉 연구자의 정체성으로 통합·수렴된다. 미국 정치사상 연구자인 마이클 왈저가 명료하게 얘기했듯, 비평 활동은 정치사상의 핵심적 행위다. 칼럼 쓰기도 비평 활동의 일종이다. ‘학자가 쓰는 소설’은 일견 낯설 수 있지만, 과거 정치사상가들도 자신의 사상을 표현할 때 소설이나 희곡 같은 예술 장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도 ‘만드라골라’라는 희곡을 썼다.”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내 연구의 관심사는 권력자도, 하위 주체도 아닌 ‘모순적으로 보이는 대상’”이라고 했다. 요즘 주목하는 ‘모순적인 대상’은.

“일반적으로 ‘통치자’와 ‘저항하는 사람’의 관점·어투는 다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선 다스리는 사람이 여전히 비판과 저항의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게 일견 모순인 듯해 흥미롭다. 비판자 역할을 오래 하다가 권력을 손에 쥐면서 생긴 현상 같다. 다만 연구자로서 이런 모순에 지적 흥미를 느낀다는 것일 뿐 ‘그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공존과 협력은 힘들어지고, 냉소와 적대가 만연한 세상을 보는 정치학자의 마음은 어떤가.

“협력은 늘 잘 안 됐으니 특별히 과장할 필요는 없다. 다만 ‘촛불 정권’이 시민들의 기대수위를 한껏 높여 놓았는데 적절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냉소주의가 퍼질 개연성은 있다. 냉소나 실망은 높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반응 아닌가.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냉소’는 추천할 만한 태도가 아니다. 본인 정신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냉소를 당한 사람도 냉소에 담긴 비판을 수용해 개선되길 기대하긴 힘들다.”

―냉소주의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시민들 각자가 무임승차를 하지 않고, 중요한 정치·사회 이슈에 참여하는 ‘성숙한 정치적 주체’가 돼야 한다. 참여 자체가 어느 정도의 행동을 전제한 말이지만, 행동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생각과 성찰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부터 ‘공부란 무엇인가’까지 ‘○○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장으로 늘 질문을 던져온 김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요즘 품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래도 한 마디만…’이라는 표정으로 간절한 눈빛을 보내도 “지금 막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지는 않다”는 답만 돌아왔다.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한 건 아닌가’라는 불안을 안고 돌아오는 길 그와의 대화를 찬찬히 복기했다. 어떤 사회현상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결정적인 인과관계와 시원한 처방을 얘기해주길 기대하지만 학자들은 대부분 잘 모른다. 연구자의 자세를 견지한다면 할 수 있는 얘기보다 할 수 없는 얘기가 더 많다.” 이 답변을 떠올리자 마지막 말의 의미가 달리 다가왔다. ‘막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지는 않다’는 얘기를 뒤집으면 ‘약간’ 던지고 싶은 질문이 ‘없지는 않다’는 뜻도 되지 않나. 이 예민하고 신중한 연구자에게 당장 ‘꺼낼 수 있는 질문’은 없어도 아마 머릿속엔 여러 물음표가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는 이 가운데 하나를 낚아채 다시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렇게 당도한 질문은 거울처럼 우리 민낯을 비추고, 뒤통수를 때리는 망치처럼 우리를 각성시킬 것이다. 추석에 대한, 공부에 대한, 아침에 대한 물음이 그랬듯이.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 김영민 교수는 누구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브린모어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등 허를 찌르는 유머와 통찰이 담긴 글로 ‘칼럼계의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달콤한 연대(sweet solidarity)’가 필요하다며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다닌다. 휴식이 필요할 땐 방바닥을 뒹굴며 ‘만화’를 읽는다. 현재 영화·그림 평론 등 다양한 형식의 칼럼을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지난해 말 창간한 서평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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