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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게재 일자 : 2021년 04월 02일(金)
능금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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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줄다 보니 ‘홍동백서(紅東白西)’와 ‘조율이시(棗栗梨枾)’는 책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말이 됐다. 제사상을 차릴 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되 대추, 밤, 배, 감 순서로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과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과가 없다. 제사상에 올리기는 하는데 이 목록에 없고 심지어 다른 과일과 달리 이 과일을 가리키는 한 글자짜리 한자도 없다.

사과를 한자로는 ‘沙果, 砂果’로 쓰지만 본디 한 단어가 한 글자로 나타나는 한자의 일반적인 흐름에도 안 맞는다. ‘빈파(瀕婆)’ 또는 ‘평과(평果)’라고도 쓰지만, 이 역시 두 글자다. 이 과일을 가리키는 한자도 없지만, 우리 고유어에도 없다. 어찌 된 일일까? 사과의 원산지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이니 꽤 일찍 들어왔을 것 같은데 19세기 말에나 도입된다. 17세기에 이미 뉴턴의 머리 위에도 떨어진 사과가 이토록 늦게 전래됐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사과 비슷한 과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과의 또 다른 말, 혹은 사과의 고유어라고 알고 있는 능금이 그것이다. 사과와 능금은 생물학적으로는 다르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는 능금은 야생이고, 사과는 과수용으로 개량된 것으로 이해된다. ‘능금’도 고유어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한자를 붙이기가 애매하다. 문헌에 능금은 ‘임금(林檎)’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능금이 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어쩌다 보니 이 과일의 영어 단어를 회사명으로 쓰는 이들이 정보통신기술의 선도자가 됐다. 우리는 일반명사 사과, 배, 대추 등을 고유명사로 쓰는 일이 드물어 어색하지만, 중국에서는 이 회사를 사과의 중국어 ‘핑궈’라고 부른다. 높은 기술력과 세련된 디자인은 인정받지만, 친절과 거리가 먼 서비스 때문에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들판의 능금은 만인의 것이고 과수원의 사과는 돈 주고 산 사람들의 것임을 되새겨볼 일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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