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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1년 04월 05일(月)
이 시대 귀한 싱어송라이터…‘영원히 되감을 순간’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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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라일락’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박완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

솔직히 상아는 알아도 싱아는 몰랐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름을 불러보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먹어본 일도 없다. 무심코 지나쳤거나 그냥 밟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 많던 싱아한테 갑자기 미안해진다.

들녘에 싱아가 있다면 무대엔 싱어가 있다. 옛날 쇼프로그램에선 MC가 인기가수를 ‘톱싱어(Top Singer)’라고 소개했다. 여기 틀어도 그 가수, 저기 틀어도 그 가수. 한동안 채널을 장악하던 가수가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일 때 내 입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그 많던 싱어는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싱어도 있지만 싱어송라이터도 있다. 작사나 작곡을 겸하는 가수다. 음악동네엔 시인이라 불러도 될 만한 가수가 여럿 있다. 그들이 노래로 피운 꽃들은 여전히 향기롭다. ‘찔레꽃’(1972)은 ‘트바로티’ 김호중이 다시 불러 노래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동요 ‘가을밤’의 멜로디에 가사를 입혀 꽃으로 만든 사람은 포크 1세대로 불리는 이연실이다. 나는 밥 딜런의 ‘A Hard Rain’s a-Gonna Fall’보다 이연실의 번안곡 ‘소낙비’를 더 많이 들었다. ‘새색시 시집가네’ ‘조용한 여자’ ‘목로주점’ 등 창작곡도 많은데 제목처럼 어느 날 조용히 사라졌다.

▲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이연실은 내가 연출했던 프로에도 출연했다. 그의 자작곡 ‘민들레’(1989)를 제주도에서 뮤직비디오로 촬영했는데 간주에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의 일부가 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지금 다시 들어보니 새삼 자연과 예술의 힘이 실감 난다. ‘민들레/ 민들레 피어나/ 봄이 온 줄 알았네 (중략) 겨울이 가면/ 봄이 올 줄을/ 잊고 살았네/ 그랬네/ 그 겨울 길고도 추웠음에/ 깜빡 잊고 살았네’.

별이 꽃이라면 하늘은 꽃밭이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를 ‘꽃 한 송이’로 바꿔본 적이 있다. ‘꽃 한 송이에 추억과/ 꽃 한 송이에 사랑과/ 꽃 한 송이에 쓸쓸함과/ 꽃 한 송이에 동경과…’ 가끔은 별을 노래로 바꿔도 무방하다. ‘노래 한 곡에 추억과/ 노래 한 곡에 사랑과/ 노래 한 곡에 쓸쓸함과/ 노래 한 곡에 동경과…’ 나는 노래마다 사람 하나씩을 떠올려본다. 사람마다 노래 하나씩을 연결하는 일도 지루하지 않다.

양희은이 시로 부활시킨 꽃은 ‘하얀 목련’이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이상하게도 이 노래를 들으면 TS 엘리엇의 시가 떠오른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의 제목이 ‘라일락’인 줄 아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정답은 ‘황무지’다. 올봄엔 아이유가 라일락을 피웠다. ‘나리는 꽃가루에 눈이 따끔해 (아야) 눈물이 고여도 꾹 참을래/ 내 마음 한 켠 비밀스런 오르골에 넣어두고서/ 영원히 되감을 순간이니까’ 음악을 자동적으로 연주하는 오르골(orgel)은 국적이 네덜란드다. 어두운 곳에서 오르골 소리가 들려오면 그건 공포영화다. ‘엑소시스트’나 ‘착신아리’를 본 사람은 그 소리에 소름이 돋을 것이다.

사람은 떠나도 꽃은 피고 봄은 오고 비는 내린다. 죽어서 가져갈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내 땅을 만들려고 명예도 자존심도 내다 버린다. 꽃과 나무가 말한다. 땅은 가지는 게 아니라 묻히는 곳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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