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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지적 문화 시점 게재 일자 : 2021년 04월 06일(火)
찍히면 망한다? 시청자 주권 내세워 방송·연예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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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자 슈퍼파워시대 브레이크 없는 엔터 컨슈머리즘

역사 왜곡 드라마 퇴출 주도
감시·비판 아닌 간섭·비난 땐
창작자유 침해하는 ‘사전검열’

여론 민감 연예인 사생활 캐고
헐뜯기 등 집단행동 나서기도
전문가 “방송 압박 즐기는 듯”


무한대로 확산하는 엔터테인먼트업계 컨슈머리즘(Consumerism)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역사 왜곡 논란으로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전격 폐지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데 이어 ‘설강화’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 대한 논란 등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K-팝 쪽에서는 국경을 넘어선 거대한 팬덤이 지지와 응원을 넘어 잠재적 리스크가 되고 있다. 전통산업에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따라 소비자의 권리 강화, 생산자·소비자 쌍방향 소통을 위해 시작된 ‘컨슈머리즘’이 SNS 시대, 보다 강력한 ‘대중의 힘’으로 확대돼 드라마를 폐지시키고, 제작에 영향을 미치고, K-팝 그룹을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엔터 컨슈머리즘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시청자 ‘슈퍼 파워’의 시대

엔터업계, 특히 방송 컨슈머리즘의 초기 모델은 시청자 옴부즈맨(Ombudsman)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옴부즈맨 제도는 행정기관에 의해 침해받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구제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19세기 초 스웨덴에서 처음 시작된 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여러 나라에 도입됐고, 방송에도 적용돼 시청자의 불만을 듣고 이를 프로그램 제작에 반영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방송사들은 자체적으로 시청자위원회나 관련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통해 자정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시청자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특히 인터넷과 SNS 시대가 되면서 시청자 게시판 수준에 머물던 시청자 주권은 ‘슈퍼 파워’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껏 높아진 시청자들의 목소리는 ‘조선구마사’(SBS) 폐지에 이어 ‘철인왕후’(tvN), ‘설강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이상 JTBC)에 대한 연쇄적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철인왕후’는 ‘조선구마사’ 박계옥 작가의 전작이라는 이유로 시청자의 비난 대상이 됐다. ‘조선구마사’에서 조선 시대 태종과 세종의 면모를 왜곡했듯 ‘철인왕후’에서도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역사 왜곡이나 시청자 요구에 취약한 방송사와 출연배우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보다는 우선 잡음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부 시청자는 ‘철인왕후’ 주연배우 신혜선이 출연 중이던 광고 제품의 불매운동까지 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것마저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이어 드라마 ‘설강화’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의 경우 역사 왜곡에 반중(反中) 정서까지 더해져 드라마가 시작도 하기 전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제목이 중국어 풍이라는 것, 원작이 중국 소설이라는 것 등이 이유다. JTBC는 “개인이 거대 권력에 맞서는 기둥 줄거리는 원작에서 가져왔으나 나머지는 국내 실정에 맞게 대부분 수정했다”며 “하반기에나 방영될 작품인데 단지 중국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공격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  방송 드라마와 K-팝을 겨냥한 컨슈머리즘의 수위가 우려를 낳고 있다. 지지와 응원, 따뜻한 비판과 견제를 넘어 때론 사전 검열을 연상시킬 정도로 공격적인 집단행동으로 콘텐츠의 다양성과 창작 의지를 짓밟고 있다. 위부터 ‘조선구마사’, 방탄소년단, ‘설강화’.
◇K-팝 팬덤의 역습

가수나 그룹별 팬덤이 강력한 K-팝에서는 방송 드라마보다 훨씬 먼저 팬덤의 지나친 영향력이 문제가 돼 왔다.

처음엔 국내 사생팬(스타의 사생활을 좇는 팬)의 부작용이 컸다. 자신이 점찍은 아티스트를 좋아한 나머지 일상까지 따라붙어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사실상 ‘애교’ 수준이었다. K-팝과 한류 콘텐츠가 점점 국경을 넘고 글로벌화하면서 K-팝 팬덤은 훨씬 거대하고 복잡해졌고, 정치나 경제 논리처럼 관리하고 분석해야 할 ‘리스크’로 다뤄지게 됐다. 특히 미·중 간의 갈등, 한·미·일의 삼각동맹, 동남아 주변국의 문화 성장에 따른 변화로 K-팝을 매개로 한 국제적 마찰과 갈등의 가능성은 더 늘어나게 됐다.

지난해 10월 방탄소년단(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생트집이 이를 방증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무조건 응원하던 팬덤은 가장 믿을 수 있는 후원자에서 시작해 아티스트의 사생활에 관여하고 때론 불만을 표출하며 불매운동을 하거나, 특정 타깃을 정해서 공격하고 훼방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판과 다양성의 공존

시청자의 감시와 비판은 언제나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음악과 영화를 대표하는 시상식인 그래미어워즈와 아카데미 시상식이 백인 중심이라는 비판을 수용해 변화한 것은 엔터업계의 컨슈머리즘이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결과를 맺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시상식은 몇 년 전부터 민족과 인종의 벽을 넘어 문호를 개방하고 있고, 그 연장선에서 방탄소년단의 성공,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윤여정의 ‘미나리’가 탄생했다. ‘조선구마사’의 경우 아무리 판타지 사극이지만 조선 시대 왕들의 실명을 쓰면서 고증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하지만 기획이나 제작 초기 단계부터 이뤄지는 간섭과 비난은 일종의 ‘사전 검열’과 다를 게 없다. 이는 한류 혹은 K-콘텐츠 세계화의 가장 큰 원동력인 다양성과 창의력을 해치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다.

대중문화 또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컨슈머리즘이 지나칠 정도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연예인’이라는 대상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인에 비해 이미지 등락 영향이 절대적인 연예인들은 사소한 논란 하나에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연예인을 포함한 연예 콘텐츠의 경우 대중의 문제 제기에 민감하다. 다른 영역과 달리 즉각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기에 향후 시청자 주권을 앞세운 논란은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SNS를 통한 이미지 복제가 쉬워 전파력이 상상 이상으로 확대됐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부 조직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목적을 가지고 하는 집단행동도 주의해야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몇몇 악의적인 커뮤니티 사이트 활동이 가장 문제다. 이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자기들끼리 편이 갈려 싸우기도 하고, 공공연하게 다음 공격 대상에 대해 ‘좌표’를 찍어주기도 한다”며 “그래서 자신들의 압력이 통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시청자 주권이 일방통행식이거나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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