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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10문10답 게재 일자 : 2021년 04월 06일(火)
‘에버 기븐’ 좌초로 본 수에즈운하 역사와 피해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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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3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된 ‘에버기븐’호가 운하를 가로막은 채 멈춰서 있다. 이 사고로 400여 척의 선박이 1주일 넘게 운하에 대기해야 했으며, 29일 부양에 성공한 뒤에도 대기 중이던 모든 배가 통항을 완료하기까지는 닷새가 더 걸렸다. 오른쪽 사진은 거대한 크기의 뱃머리 밑 모래를 파내는 굴착기의 모습. 이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며 수많은 밈(meme)을 탄생시켰다. EPA AP 연합뉴스
佛, 1869년 운하 완공… 이집트, 1956년 국유화로 중동전쟁 촉발
사고뒤 11일간 10.8조 운송피해… SCA “1조원 배상청구 하겠다”

하루 통행량 50척… 좌초사고 뒤 400여척 발묶여
강풍 탓 사고 주장에 기술 결함·운항 실수 반론도
유럽이 가장 큰 피해… 車 부품·원유 등 공급 차질
버거킹, 사고선박 빗댄 햄버거 광고뒤 불매 역풍도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좌초하면서 막혔던 수에즈 운하의 물길이 지난 3일로 정상화됐다. 지난달 23일 에버기븐호 좌초 이후 11일 만이자, 굴착과 예인을 통해 에버기븐호가 부양에 성공한 지 5일 만이다. 하지만 운하가 7일간 막히면서 400여 척의 선박 운항에 차질이 빚어졌고, 선박 1척당 약 6만 달러(약 7000만 원)씩 피해를 입었다. 선주들의 보험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에즈 운하를 운용하는 이집트 정부도 총 10억 달러(1조1280억 원)의 배상금 청구 계획을 밝히면서 이번 사태는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적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또 정권교체나 테러 등이 아닌 선박 자체가 운하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현재 대형 컨테이너선 위주의 물류 운송 체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미 파나마 운하까지 전 세계 ‘물길’ 항행 관행에도 숙제를 던져줬다는 평가도 있다.


1. 선박 좌초로 막힌 수에즈 운하

지난달 23일 세계 해상교역의 핵심 통로 중 하나인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좌초돼 수로를 오가는 선박 운항이 멈췄다. 대만 해운업체 소속의 선박 에버기븐호가 운하 남쪽 끝에 항로를 가로막은 채 멈췄기 때문이다. 에버기븐호는 길이 400m, 폭 59m의 22만4000t 선박으로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 선박이 수에즈 운하 중간에서 좌초해 선박의 뱃머리가 한쪽 제방에 박혔고, 선미는 반대쪽 제방에 걸쳐졌다. 약 280m 폭의 운하를 대각선으로 가로막는 바람에 다른 화물선들의 통과도 차단됐다.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사고 직후 예인선을 투입해 다른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선체를 수로 방향으로 바로 돌리려고 했으나 사고 선박의 규모가 크고 일부가 모래톱에 박혀 이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컨테이너를 2만 개 이상 실을 수 있는 이 선박의 적재량이 100%에 가까울 정도로 꽉 차 있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했다. 예인 작업이 1주일이나 장기화하면서 수에즈 운하에는 400여 척 선박의 발이 묶였다.


2. 좌초 1주일 만에 선박 부양 성공

에버기븐호 선체가 완전히 물에 떠올라 정상 항로로 되돌아오기까지는 약 1주일이 걸렸다. 22만4000t에 달하는 거대한 배를 움직이기 쉽지 않아 에버기븐호를 두고 “해변에 밀려온 거대한 고래 같다”는 비유도 나왔다. 이번 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선원과 예인선 10여 척, 모래 준설기, 인양업체 등이 총동원됐다. SCA와 구난 작업에 합류한 업체들은 수심이 높아지는 3월 29일 만조 때를 선체 부양의 적기로 판단하고 전날 밤늦게까지 준설 작업을 강화했다. 특수 준설선은 2만7000㎥의 모래와 흙을 퍼냈고, 배를 물에 띄우기 위해 18m 깊이까지 굴착을 진행했다. 선박 인양은 밀물이 들어올 때 예인선이 선체를 밀면 준설선이 배 아래 깔려 있는 모래와 흙을 빨아들이는 식으로 진행됐다. 예인선 일부는 에버기븐호의 뱃머리를 왼쪽에서 운하 가운데 쪽으로, 동시에 다른 예인선은 선미를 오른쪽에서 운하 가운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에버기븐호의 부양작업이 성공하자 근처에 집결해 있던 군중은 “신은 위대하다”며 환호성을 터뜨렸고 주변 예인선은 뱃고동을 울렸다.


3. 운하 정상화까지 닷새 더 걸려

에버기븐호가 부양된 후 수에즈 운하 정체가 풀리는 데에는 닷새가 걸렸다. 지난 3일 SCA는 “에버기븐호 좌초 후 수로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배가 통항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항공모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LNG 운반선, 유조선 등 총 85척이 운하를 통과했다. 이 중에는 지난달 29일 에버기븐호가 부양됐을 당시 대기하던 400여 척 중 61척이 포함됐다. 수에즈 운하의 하루 평균 통항량이 50여 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배가 운하를 지나간 셈이다. 최근 운하를 지난 선박 다수는 제한최고속도인 7.6∼8.6노트(시속 약 14∼16㎞)보다 빠른 8∼10노트로 운항했다. 선박들이 정체 해소를 돕기 위해 속도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써 에버기븐호 좌초 사건 발생 후 11일 만에 세계 해상무역 흐름은 완전히 정상으로 복원됐다. 이로써 원유·가스·소비재·가축 등 모든 상품의 선박 운송도 쉬워졌다.


4. 사고 원인은 강풍이냐 운항 실수냐

좌초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강풍 때문이라는 주장과 기술적 결함이나 사람의 실수 때문이라는 주장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정확한 좌초 원인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조사가 최근 시작된 가운데 앞서 선박 기술관리 회사인 버나드슐테선박관리(BSM)는 모래바람 등 강풍을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SCA는 강풍보다는 기술적인 결함이나 사람의 실수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집트 대통령 측도 “이번 일의 책임은 선주에게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사고 원인은 향후 보상 등 문제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원인이 무엇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운하를 운영하는 이집트 정부와 운하 통항 지연으로 손실을 본 해운사와 선주, 그리고 보험사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또 조사 결과에 불복하거나 배상 조정이 불가능해질 경우, 장기간에 걸친 국제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5. 근본 원인은 선박의 초대형화

세계선사협의회(WSC)에 따르면 1997년 당시 가장 큰 컨테이너선의 최대 선적 용량은 8000TEU였지만 2018년에는 2만2000TEU로 늘어났다. 1TEU는 길이 20피트의 표준 크기 컨테이너 1대분이다. 에버기븐호 역시 2만TEU급 선박이다. 이렇게 컨테이너선이 초대형화된 이유는 2000년대 유가가 급등할 당시 무역업체들이 한 번에 많은 상품을 실어나르기 위해 선박 크기를 키웠고, 2009년 금융위기 때 선사들이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강풍 등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사고 위험에도 더 쉽게 노출된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의 경제 에디터 피터 코이는 “크고 넓은 선박이 얕고 좁은 운하를 통과할 때 한 번의 실수나 자연의 작용만으로도 몇 달 동안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고가 보여줬다. 그럼에도 효율성을 이유로 컨테이너선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6.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는

좌초된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은 7일간 운하에는 400여 척이 통과하지 못한 채 대기해야 했다. 이에 일부 선박은 노선거리가 9650㎞나 늘어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돌아 운항하는 우회로를 택하기도 했다. 수에즈 운하보다 약 7∼10일이 더 소요되고 수십만 달러의 연료비 등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지만 꽉 막힌 수에즈 운하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고육책이었다. 이번 사태로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은 유럽으로, 유럽의 자동차 제조·부품업체의 타격이 컸고 로부스타 커피와 화장지 원료인 펄프를 아시아에서 들여오는 만큼 커피와 화장지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또 수에즈 운하는 원유와 LNG 운반선의 주요 항로여서 좌초된 날부터 인양에 성공한 날까지 약 7일간 원유와 LNG 가격도 크게 출렁였다.


7. 피해보상은 어떻게

운하 통행이 막히면서 매일 아시아와 유럽 간 96억 달러(10조8000억 원)어치 화물의 운송이 지연된 것으로 추산됐으며, 대기 선박들은 항행이 지연되는 하루마다 선박 1척당 약 6만 달러(7000만 원)의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운하를 운영하는 이집트는 하루 약 1400만 달러(158억 원)의 손실을 봤다며 이번 사태와 관련해 10억 달러(1조1280억 원) 배상금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로 인한 보험금 청구도 쇄도할 것으로 보이면서 재보험사의 손실도 클 전망이다. 영국 보험사 로이드는 보험금 청구액만 1억 달러(1127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운항 중단된 선박에 실린 화물 소유주들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는 에버기븐호 선주에게 손실 보상을 요구하고, 다시 선주는 보험사에 의존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최악의 경우 선박 회사뿐 아니라 보험사까지 줄도산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8. 수에즈·파나마 운하, 왜 중요한가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는 유럽과 아시아를 최단거리로 연결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까지 돌아가야 했던 것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으로 ‘육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세계 해양 물류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또 수에즈 운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해양국가의 국력을 유지하게 해주는 핵심 지역이다. 현재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12%를 차지하며 하루 평균 51척이 지나는 요충지다. 지난해 1만9000척이 이 운하를 통과했다. 수에즈 운하와 함께 세계 양대 운하로 불리는 파나마 운하는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가지 않으려 만들어졌으며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한다.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6%를 차지한다. 세계 물류의 요충지라는 점에서 양대 운하의 소유권은 곧 세계 지배권을 의미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9. 수에즈 운하·파나마 운하의 역사는

수에즈 운하의 역사는 무려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일강 하류와 홍해를 잇는 고대 운하를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후 프랑스가 나폴레옹 시기에 이집트를 점령한 뒤 1830년대부터 운하를 만들기 시작했고 1869년 오늘날의 수에즈 운하가 완공됐다. 이집트가 현대 공화국으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이 운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취급됐고 이를 둘러싼 부침도 많았다. 1956년 이집트의 운하 국유화 선포가 2차 중동전쟁을 촉발했고,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는 운하가 무려 8년간 폐쇄된 바 있다. 파나마 운하는 1914년 미국이 완공한 것으로,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영토였으나 미국이 운하 완공 뒤 관리권을 행사하다 1999년 파나마에 완전히 넘겼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건설로 더 이상 대서양 국가에 머물지 않고 태평양 국가로 전환됐으며, 20세기 미국의 패권도 파나마 운하 개통에서 시작됐다는 평가가 있다.


10. 버거킹 불매에 각종 ‘밈’도 양산

거대한 에버기븐호 뱃머리의 아랫부분에 쌓인 모래를 파내는 작은 굴착기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며 수많은 밈(meme)을 탄생시켰다. 마치 우리 시대의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킨다는 이도 있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배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은 와퍼의 크기를 에버기븐호에 빗대 크다고 광고했다가 이집트에서 불매운동 역풍을 맞았다. 버거킹 칠레법인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에버기븐호 항공사진에 와퍼 햄버거 이미지를 합성해 ‘와퍼 더블, 어쩌면 우리가 너무 크게 만들었나 봐’라며 햄버거 크기를 강조하는 문구와 함께 올렸고 이에 이집트에선 ‘버거킹 보이콧(#BoycottBurgerKing)’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또 이집트 내에선 이번 사고가 고대 왕실 파라오 미라 이전 계획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나왔다.

박세희·정유정 기자
e-mail 박세희 기자 / 국제부  박세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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