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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1년 04월 08일(木)
봄날의 도시락, 끼니 해결 옛말…뚜껑 열면 새로운 ‘맛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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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사진은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의 피크닉 도시락. 감태, 나물 등을 동백기름으로 버무려 맛을 낸 주먹밥과 감귤 빵에다 제주 돼지로 만든 소시지를 넣은 버거 등으로 구성된 도시락이다. 아래 사진 왼쪽부터 은대구 조림과 고기 경단, 생선회 등으로 차려진 연희동 카덴의 도시락. 충북 제천의 약채락 식당에서 내는 비빔밥 도시락. 워커힐 일식당 ‘모에기’의 일식 프리미엄 도시락.

■ 봄날의 도시락

중장년들에겐 ‘추억의 도시락’
분홍 소시지·콩자반·장조림…
80∼90년대 학생 단골 반찬

학교나 소풍때 먹던 도시락
집밥·외식‘틈새 간편식’성장
전문식당에 특급호텔도 가세

연희동 카덴 원거리 퀵서비스
제천 약채락은 비빔밥·한정식
워커힐 일식당 참치회 곁들여


봄날 하면 자연히 도시락이 떠오른다. 전두엽에 박힌 ‘소풍의 추억’ 탓이다. 소풍과 피크닉, 야유회 아침엔 어김없이 도시락을 쌌다. 김밥 도시락이기도, 찬합도시락이기도 했다. 과거 도시락은 학교나 야외 등 어딜 떠날 때나 먹었지만, 요즘은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주문해 먹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으로 생겨난 의외의 인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도시락이지만 예전에는 보자기에 싸서 제가 들고 다니던 형태였던 것이, 이젠 남의 손으로 배달해온 것을 받아먹는 식이라는 점이 다르다.

최근 레스케이프 호텔, 롯데호텔, 시그니엘, JW메리어트 서울, 워커힐호텔앤리조트 등 특급호텔가에선 북경오리부터 프랑스 코스 요리까지 다양한 메뉴로 구성한 ‘도시락’을 일제히 출시했다. 호텔 셰프의 솜씨와 고급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피크닉 장소나 자신만의 공간에서 즐길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도시락은 외식, 그러니까 ‘바깥에 나가서 먹는 음식’의 기본이다. 도시락이란 본래 용기를 부르는 이름이지만, 내용물까지 규정한다. 오래된 말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재발견된 단어다. 당시의 도시락 내용물은 요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다. 그저 밥을 싸 가지고 다녔다. 식당 등 외식 산업에 대한 개념도 형성되지 않았을 당시에 집밥을 가져다 밖에서 먹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도시락의 기원이다.

도시락은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이다. 옛말은 ‘도슭’이다. 일제강점기에 ‘벤토(べんとう)’에 대항하고자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찾아낸 우리말이다. 밥동고리, 도슬박, 단사(簞食)라고도 불렀다. 북한에선 곽밥이라 한다. 찬합에 밥과 반찬을 담아 꽃놀이를 떠나기도 했지만 보통은 보부상이나 어부, 과거를 보러 길을 나서는 선비들의 주먹밥 정도가 도시락의 기원이었다. 간을 한 밥을 뭉쳐 다니다 밥때 먹었다. 그 외엔 필요가 없었다. 주거지가 노동현장과 가까운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일을 하면서 도시락을 싸가기보다는 새참을 가져다주거나 집에 돌아와 밥을 먹으면 됐다.

일본어로 도시락을 뜻하는 벤토는 편리하다는 뜻의 중국어 비엔땅(便當)에서 나온 말이지만 바로 현지화됐을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많은 나라에서도 도시락의 공용어가 됐다. 일식에서 벤토는 꼭 밖에서 먹는 이동식을 의미하지 않고 요리의 형태로 인정받는다. 정찬을 작은 용기에 빼곡하게 담아낸 것을 벤토라 총칭하는 것이다.


현대적 개념의 도시락이 탄생한 미국과 유럽에선 그저 글자 그대로 ‘런치박스(lunch box)’라 부를 뿐이다. 샌드위치나 빵과 치즈, 샐러드 등을 담아 출근한 것이 런치박스의 시작이었다. 이 역시 산업혁명 이후 공장이 줄줄이 생겨났고 노동자는 먼 노동현장으로 출퇴근해야 했기 때문에 발생한 식문화다.

급식 세대 이전 한국의 중장년들은 학교 도시락을 먼저 떠올린다. 학생뿐 아니라 회사원들도 도시락을 들고 다닐 때라 도시락(용기) 자체도 전성기였다. 법랑과 일제 보온도시락도 등장했지만, 조개탄 난로에 데워먹을 수 있는 양은 도시락이 표준이었다. 하교 때면 달그락 달그락 빈 도시락 소리가 요란했다.

당시 주부들은 늘 도시락 반찬거리를 고민했다. 주부 잡지는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도시락 반찬’을 소개하기 바빴다. 처음엔 보리밥에 김치 일색이었지만 당시는 대한민국 경제의 급성장기. 세상에 뭔가 새로운 식재료가 등장하면 바로 도시락을 타고 학교로 들어갔다. 분홍색 소시지 부침이나 오징어채, 김치 볶음, 꼬막, 김, 맛살, 콩자반, 계란 장조림 등이 1980∼1990년대 단골 도시락 반찬이었다. 마른반찬 종류가 많은 것은 등하교 도중 양념이 새기라도 하면 가방 속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었다. 가끔 레트로 감성의 주점에서 파는 ‘추억의 도시락’ 메뉴는 예전 양은도시락의 구성을 거의 그대로 갖추고 있다. 멸치볶음과 김치 볶음, 계란프라이를 밥에 섞어 넣고 흔들어 먹는 방식 또한 여전하다.

한국인 특유의 습식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국이라 요즘은 도시락에 따로 챙겨주기도 한다. 예전 보온도시락에도 국 통이 딸린 것이 있었다. 다만 용기 특성상 국물만 담아야 하고, 그 크기 또한 작아 효용 가치가 떨어졌다. 보통 구내식당이나 매점에서 라면을 곁들여 먹든지, 따로 파는 국물을 사다 말아먹기도 했다. 1980년대 말 공립 도서관 매점에는 도시락을 먹는 이들을 위해 국수 국물을 50원 받고 팔았다.

도시락 천국인 일본에서는 벤토의 개념이 무궁무진하다. 열차 안에서 먹도록 역에서 판매하는 에키벤(驛弁)은 지역별로 수천 종이 넘는다. 역에서 판매하니 그 지역의 로컬푸드를 상징해 특별한 에키벤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열차를 타는 이도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항에서 파는 소라벤(空弁), 야구장 관중석의 다마벤(球弁), 파친코에서 먹는 파치벤(パチ弁) 등 어디서나 도시락을 볼 수 있다.

일본의 벤토는 정통 일본요리인 화식(和食)의 구성이 축소돼 그대로 담겨 있기도 하고, 간단하게 김밥이나 덮밥 등으로 나오기도 한다. 가격이 몇만 원이 넘는 건 보통이고 10만 원이 넘는 건 수두룩하며 심지어 100만 원이 넘는 도시락도 있다. 도부선 닛코(日光)역에서 판매하는 닛코우마이조우벤토는 무려 16만2000엔(약 180만 원)이다. 홋카이도(北海島)산 대게와 단새우, 도치기(회木)산 와규, 채소, 쌀 등을 수제 옻칠 나무 도시락에 담고 금박 젓가락까지 넣어준다. 도시락의 끝판왕이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학습과 근로 생활이 치열하게 이뤄지던 근대에 생겨나 식당에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보장한 음식, 도시락은 현대에 들어 새로 주목받고 있다. 여럿과 함께라도, 때론 혼자라 할지라도 프라이빗한 식사를 한층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더욱 각광받는다. 바쁜 현대인에게는 집밥과 외식의 중간 형태인 가정간편식(HMR)으로도 도시락이 좋다. 시중 맛집에서 따로 만드는 도시락은 가져가거나(Take away), 배달시키기에 딱 좋은 구성과 형태다. 금액도 직접 가서 먹는 것보다 대체로 저렴하다는 이유로 도시락을 주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아무래도 식당 테이블에 앉으면 제공해야 할 것도 많고 일손도 더 가니, 같은 메뉴라도 도시락은 테이블 메뉴보다 헐하다. 끼니 해결에서 식도락으로 범위를 넓힌 도시락. 조심스레 뚜껑을 열면 그 안에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또 어떤 이에겐 새로운 맛의 세계가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카덴=“중구가 시키드나.”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정청) 대사처럼 연희동에 있는 카덴에서는 중구 다동까지 퀵서비스로 배달해준다. 원거리 도시락 배달 시스템이다. 생선을 썰고 고기를 튀겨 담은 네모난 화원(花園)을 꾸민 곳은 정호영 셰프의 ‘카덴’이다. 식어도 맛이 좋게 밥을 짓고 찬의 양념을 조절했다. 도시락은 푸짐하다.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카레 돈가스, 은대구 조림, 채소절임, 계란말이, 튀김, 고기 경단 등을 담고 따로 된장국과 밥, 생선회를 내준다. 곁들일 참치회를 따로 주문하면 금상첨화. 02-3142-6362. 2만5000원.

△약채락=‘건강한 미식도시’를 선언한 충북 제천시에는 미각과 영양을 함께 충족시키는 약채락 도시락이 있다. 황기간장, 당귀고추장, 양채페스토, 뽕잎약초소금 등 약초로 만든 양념 4종을 사용한 비빔밥과 일품, 한정식 등 3가지 도시락을 판다. 황기육수밥에 곤드레, 뽕잎, 건가지, 취나물, 브로콜리순을 넣은 비빔밥에는 약(藥)고추장을 넣는다. 일품도시락에는 양채페스토 샐러드에 약고추장을 재워 구운 제육이 들어간다. 한정식 도시락에는 월악산 산나물과 약간장 보약수육, 당귀떡 등 제천의 산과 들에서 나는 맛을 모았다. 궁전 뷔페 043-651-3000, 밥벗 043-648-8779. 6900∼8900원.

△워커힐 모에기=워커힐 정통 일식당 ‘모에기’는 일식 상차림을 그대로 축소했다고 할 만큼 알차게 구성한 프리미엄 도시락을 출시했다. 특별한 날에 집에서 즐기는 것도 좋고, 들고 피크닉을 떠나기에도 좋은 도시락이다. 테이크아웃 전용 도시락 ‘미야비 벤토’에는 참치회, 전복, 단새우, 문어, 어란, 장어 등 해산물에서부터 일본된장 양념 샐러드, 초밥, 튀김, 소고기 스키야키, 매실 장아찌 밥과 장국, 과일까지 담았다. 방문해도 되고 퀵서비스로도 받아볼 수 있다. 최소 주문 수량은 4개부터.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 02-2022-0222. 10만 원.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피크닉세트를 빌려주며 도시락(런치박스)을 준다. 일명 ‘해녀바구니 브런치’라 불리는 세트에는 감태, 나물 등과 동백기름으로 버무려 맛을 낸 주먹밥, 감귤빵에 제주 특산 돼지로 만든 소시지를 넣은 버거, 감귤 워터 등을 넣어준다. 직접 만든 감귤 아이스티와 디톡스 워터가 청량하다. 최고의 진정한 경험은 바로 건물 앞 정원에서 즐기는 피크닉이다. 돗자리를 펴고 나른한 봄볕 아래서 정성껏 마련한 도시락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064-794-5351. 3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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