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바이든은 우리 받아줄 것”… ‘나홀로 월경’ 아동 등 캐러밴 폭증

  • 문화일보
  • 입력 2021-04-1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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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사람들은 왜 목숨 걸고 美국경 넘나

바이든 ‘포용 정책’ 기대감에
3월 불법이민자 15년來 최고

온두라스·과테말라·엘살바도르
마약조직 폭력 고질적 문제에
코로나 이후 실업·생활고 심화

“아무것도 먹을게 없어서 왔다”
미성년자 수용소 과포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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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서 죽임을 당하느니 미국으로 가는 데 목숨을 걸겠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면 누가 집과 가족, 모국을 떠나 이런 여행을 감수하겠나.”

최근 온두라스에서 임신한 아내,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이민 길에 오른 라이오넬이 BBC에 전한 말이다. 라이오넬은 다른 중남미 이주민들처럼 빈곤과 마약 카르텔의 폭력, 살해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미국행에 나섰다. 강을 헤엄쳐 건너다 목숨을 잃을 수 있지만, 고향에 남는다고 안전한 삶이 보장되진 않기 때문이다.

무작정 무리를 지어 국경으로 향하는 ‘캐러밴’이 다시 폭증하고 있다. 2018년 절정을 이뤘다가 미국의 국경 단속이 강화되면서 다소 사그라들었던 캐러밴은 지난해 중남미 국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올해 되살아났다. 이민·난민 정책에 유화적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대한 기대 심리도 커지면서 지난 3월 국경에서 붙잡힌 불법 이민자는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다. 또 이번에는 보호자 없이 길을 나선 ‘나 홀로 이주 아동’도 상당하다. 과테말라에서 출발해 미국·멕시코 국경지대인 리오그란데 계곡에 도착한 오스카(12)는 AFP통신에 “나 혼자 왔다.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서 왔다”면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삼촌 집에 머무르면서 엄마를 데려올 방법을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다시 촉발한 캐러밴…‘아메리칸 드림’ 이전에 “그저 살고 싶다”=중남미 국가에서 고질적인 실업과 생활고, 불안한 정치와 치안, 범죄 조직의 인신매매와 브로커 사업 등 사회·경제적 이유로 조국을 등지는 인파가 이어지고 있다. 미성년자들마저도 범죄조직에 동참할 것을 강요당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자녀들만은 이런 위험과 굶주림에 처하지 않길 바라는 부모들은 가족 단위로 캐러밴 행렬에 오르고 있다.

캐러밴의 재유행은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여파 때문이다. 중남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 허리케인까지 겹치면서 삶의 기반이 사라졌다. 빈곤과 함께 조직적 폭력도 심화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이들이 증가한 것이다. 특히 중미 ‘북부 삼각지대’(Northern Triangle)로 불리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는 세계 최대 위험 국가로, 캐러밴 행렬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지난해 이 세 나라에서 살해된 사람들은 인구 10만 명당 각각 38명, 20명, 15명이다. 한국(0.6명)은 물론 세계 평균(6명)을 압도한다. 온두라스는 중남미에서도 최빈국 중 하나로 불평등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은 범죄 조직의 마약 미국 밀반입을 돕고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호아킨 구스만)로부터 100만 달러(약 12억 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까지 받고 있다. 과테말라는 마약 밀매 조직, 엘살바도르는 폭력 갱단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집단 탈출 행렬의 근본 원인은 마약 카르텔…미국의 반공 정책이 만든 ‘괴물’=중남미 사회 불안과 이주민 발생의 근본 원인은 마약 산업이다. 중동과 아프리카가 내전으로 난민이 양산된다면, 중남미는 마약과 이를 유통하는 갱 조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시장인 미국에 공급되는 마약은 대부분 중남미 지역에서 생산되고 유통된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 육로를 통해 마약이 이동하는 지역은 마약 조직의 거점이 됐다. 이들 조직은 경제적 이권이 집중되는 지역을 강탈했고 그 결과 무고한 시민들은 희생당했다. 마약 카르텔은 정치권력과 밀착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 부패를 조장하고 국가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캐러밴 행렬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사실 중남미 국가들의 사회 불안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중남미 국가의 반공 활동을 도우며 마약 조직의 활동을 사실상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반공 게릴라를 지원하고 이들의 마약 밀매를 묵인하는 이중적 정책을 취했는데,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하고 있는 이란에 미국제 무기를 비밀리에 판매한 뒤 판매대금을 니카라과 좌익 정부에 대항하는 콘트라 우익 반군에 지원한 사건이다.

◇바이든 당선되자 캐러밴 급증, ‘나 홀로 월경’ 아동도 증가=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을 펴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주춤했던 캐러밴 행렬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뒤 다시 본격화됐다. 미국 국경보호국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체포된 이주민 수는 17만1000명으로, 15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지막 임기를 보낸 1월보다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이민 문제에 강경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이 온건한 이민 정책을 펴겠다고 공약을 내자 너도나도 불법 월경을 위해 고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캐러밴의 또 다른 특징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월경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지난달 보호자 없이 홀로 국경을 넘은 미성년자는 1만8800명으로, 한 달 전보다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가족 동반 입국자는 본국으로 돌려 보내지지만, 혼자 온 미성년자는 수용시설에 머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성년 밀입국자를 국경 밖으로 추방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 정책을 뒤집었는데, 현재 미국의 미성년자 국경 수용소는 과포화 상태다. 현지 언론들도 캐러밴 일행이 가족입국을 시도하다가 부모가 동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아이 혼자 국경을 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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