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Window >팬데믹이 바꾼 ‘일의 의미’…‘닥치고 열정’ 대신 ‘가치있는 노동’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하안송 기자

英 청년층 중심 자원봉사 급증
팬데믹 기간만 1240만명 참여
“누군가를 도왔다는 기쁨, 벅차”

온몸 바쳐 최선을 다하는 열정
일 중시했던 젊은층에 큰 충격
밀레니얼세대 ‘허슬 문화’ 종말

봉쇄로 친밀감 대한 갈증 커져
비필수적인 일에 대한 회의와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 성찰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지난해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우리의 일상만 바꾼 게 아니다. 예고 없이 찾아와 지난 25일까지 전 세계에서 31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팬데믹은 항상 우리 곁을 맴돌았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죽음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고, 이는 우리 삶을 지탱해온 ‘일’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현대인들은 지금까지 더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받아왔는데, 팬데믹은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바꿔놓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아…英에서 급증하고 있는 자원봉사 = 팬데믹 이전에 투자회사에서 일했던 로라(43)는 최근 회사에 사표를 내고 백신 접종을 돕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20년 이상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샬럿 화이트(47)도 지금은 푸드뱅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샬럿은 “내가 정말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광고 제작을 하면서 해온 입찬소리와는 전혀 다르다”면서 “나는 요즘 내가 정말 누군가를 도왔다는 뿌듯함을 안고 하루를 마감한다. 정말 행복한 하루하루”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영국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한 인구는 1240만 명. 이 가운데 460만 명은 생전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들로, 75만 명이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한 18∼24세 청년들이다.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한 프레야 라일리(18)는 “팬데믹이 닥치고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더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면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봉사활동의 가치는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가르침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영국 시민단체 ‘투게더’(Together)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첫 번째 봉쇄령이 내려진 후 일주일 만에 30만 명이 자선단체 봉사에 참여했고, 같은 기간 75만 명 이상이 영국 국가의료서비스(NHS)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허슬 문화’는 이제 안녕 = 팬데믹이 오기 1년 전인 2019년부터 밀레니얼 세대 전반에는 이른바 ‘허슬(Hustle) 문화’가 크게 유행했다. ‘온몸을 바쳐 최선을 다해 일하자’는 것으로, 젊은이들은 SNS 등에 “‘#ThanksGodIt’sMonday(월요일이라니,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등의 해시태그를 올리며 일에 열정적인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현대사회 움직임에 반하는 허슬 문화는 크게 주목받았다. 허슬은 ‘흔들다’는 뜻을 지닌 1600년대 중세 네덜란드어 ‘hutselen’이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래는 ‘훔치다’ ‘속이다’ 등 부정적인 의미였으나 오늘날에는 ‘추진’과 비슷하게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한길로 나아가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이를 부추겼는데, 머스크는 “누구도 일주일에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며 “통찰을 가진 사람들이 80시간 혹은 그 이상씩 일하며 열정과 비전으로 산업을 발전시킨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어스투 게임스(Ustwo Games)’라는 게임회사는 자사를 ‘가족 같은 회사’라는 의미의 ‘팸퍼니(Family+Company)’로 부르기도 했다. ‘시프트 : 40 이후 잃었던 나를 찾은 방법’의 저자 샘 베이커는 “1980년대엔 양복을 입고 양복이 해질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었고, 지금은 티셔츠를 입고 티셔츠가 해질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팬데믹이 일깨운 ‘세상에 의미 있고 필수적인 일을 하라’ = 하지만 팬데믹은 ‘허슬 문화’의 구조적 문제점을 들춰냈다. 주변에 가까운 가족·지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충격 속에서 일에만 매진해온 청장년층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 것. 특히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록다운(봉쇄)’은 연애·결혼보다 일을 중시해온 ‘싱글’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가족 외에는 누구와도 만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외로움이 짙어졌고, 친밀감에 대한 갈증도 커졌다. 동시에 죽음을 목도하면서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욕구도 강해졌다.

특히 팬데믹 동안 크게 성장한 배달업과 의료보건업 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직업이 가진 비필수성에 직면했다. 정말 필수적인, 즉 안 하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깨우침이었다. 가까운 사람들이 생사를 달리하는 수많은 순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조 윌리엄스는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일과의 사랑에서 빠져나오게 됐다”면서 “이 같은 성찰은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성찰이자 발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