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與 선심정책 쏟아내고 野는 정치선동 이용… 일그러진 ‘페미니즘 논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젠더갈등 조장하는 정치권 ‘안티 페미니즘’

이준석·진중권, 보궐선거후 여성할당제까지 거론하며 설전… 2030 표심에 놀란 민주당, 남녀평등복무제·군가산점 법안

여성계 “청년 처한 현실을 언쟁 소재로 써”·안티 페미니즘 진영도 “지적 겉멋일 뿐”… 정치권 일각 “성별 갈등 부추겨선 안돼”


“더불어민주당이 페미니즘(Feminism)에 올인한 결과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정치인의 안티페미니즘(Anti-feminism) 저질 선동.”(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문재인 정부, 여성할당제 때문에 최고의 장관들을 임명하지 못했다.”(이 전 최고위원)

“국민의힘은 여성할당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재확인해야 한다.”(진 전 교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연일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설전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030 남성의 표심을 잡기 위해 군 가산점제 부활론부터 가상화폐 대책까지 설익은 정책들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모양새다. 그동안 진보냐 보수냐, 영남이냐 호남이냐를 놓고 싸우던 정치권에서 이른바 ‘페미니즘 논쟁’이 새로운 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野는 페미니즘 논쟁, 與는 선심성 정책 폭주=서울시장 보선에서 2030 남성의 표심을 적극 공략한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9일 “민주당이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했다”며 논쟁에 불을 댕겼다. 그러자 이 전 최고위원과 돈독한 친분을 과시해 온 진 전 교수가 “아주 질 나쁜 포퓰리즘.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게 만들어주겠다”고 받아쳤다. 이들은 “페미니즘이 성경이냐”(이 전 최고위원), “이해가 안 되면 외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진 전 교수)며 온라인 설전을 이어갔다. 2030의 표심이 내년 대선으로까지 이어질 것에 화들짝 놀란 민주당은 남녀평등복무제, 군 가산점 관련 법안 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모병제 전환, 남녀 모두 100일간 의무적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게 하는 남녀평등복무제 정책을 발표했다. 전용기 의원은 15일 공기업 승진 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군 가산점 법안을 발의했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상의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군 가산점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슬그머니 부활한 셈이다.

◇여성계는 정치권 논쟁에 ‘불쾌’=그러나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 양 진영에선 두 남성과 정치권이 주도한 이 논쟁에서 정작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통화에서 이를 “안티페미니즘 정서를 이용한 반정치”라며 이 전 최고위원을 비판했다.

권김 소장은 “실제 기득권은 주류 남성 집단이고, 이 전 최고위원도 여기 속해 있는데도 기득권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없이 무책임하게 성별 갈등을 조장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계는 오히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돌봄 노동 등에서 도드라진 여성 위주 성별 편향 문제와 20대 남성이 많이 종사하는 배달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30 청년들이 처한 문제를 단순한 언쟁의 소재, 흥밋거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다. 권김 소장은 “진 전 교수는 자신을 향한 주목도를 높이고, 이 전 최고위원은 존재감을 얻는 데 페미니즘을 소비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안티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진 전 교수와 이 전 최고위원의 논쟁에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 작가는 통화에서 “2030세대의 다수 남성 시각에선 페미니즘을 들이미는 진 전 교수가 가증스러울 것”이라며 “586세대 남성들이 지적 겉멋으로 페미니즘을 거론한다”고 비판했다.

◇갈등을 악화하는 논쟁 구도 바꿔야 =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페미니즘 논쟁을 성별 간 갈등 원인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갈등을 부추긴 것은 우리 세대 책임”이라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윤 의원은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과 함께 해왔던 페미니즘과, 21세기 한국에서 새로운 권력으로 떠올라 남녀 편 가르기로 세력을 유지하는 페미니즘은 같지 않다”면서 “젊은이가 맥락을 모른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간 쌓여 온 맥락을 잘 설명하고 공감대를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현 정권 실정의 원인을 여성할당제에서 찾은 이 전 최고위원 주장에 “나라를 둘로 갈라놨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사임한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여자였나, 남자였나”라며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고 싶다면 그냥 전문성이 없다고 하면 되지, 성별 문제를 가져올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젠더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정치권이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며 “그러나 선거에서 졌다고 남녀평등복무제를 들고나오는 걸 보면 정치권에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