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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1년 05월 07일(金)
법관 꿈 접고 가수의 길 “79세 현역, 나에겐 은퇴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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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국연예인한마음회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상희 이사장. 그는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수라는 직업으로 60년간 한 길을 걸어왔다”며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 특히 지금까지 보살펴 준 남편 유훈근 씨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현역이고, 앞으로도 은퇴란 없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 여성 ‘학사가수’ 1호·여성MC 1호 김상희

고대 법대 다니며 가수 오디션
‘삼오야 밝은달’로 데뷔후에도
엄격한 부모님-학교에 숨기려
수년간 얼굴없는 가수로 지내

남편이 DJ 공보비서란 이유로
1980년대 TV출연 못하기도
나는 고대 동창 MB 유세 참석
‘괘씸죄’로 찍혀 한때 활동제약

연예인 봉사단체 이사장 맡아
이젠 어디든 달려가 노래 위로


데뷔 60주년을 맞은 국민가수 김상희는 세월이 비껴간 듯 우리 나이 79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에 열정이 넘쳐 보였다. 비결은 “늘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5일 ‘2021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한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휴대전화 연결음을 통해 경쾌한 리듬의 그의 히트곡 ‘괜찮아’가 울려 퍼졌다. ‘괜찮아 괜찮아/다시 시작하면 돼/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면 돼/괜찮아 괜찮아/멈춰 서면은 안돼/한 번 더 해 보는 거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힘들고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16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국연예인한마음회 사무실과 5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자랑스러운 고대인상’ 시상식장 등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난향(蘭香)을 품은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김상희에게 붙는 수식어는 참 많다. 여자 학사 가수 1호, 여성 MC 1호…. 그러나 그는 “이런 호칭보다는 노래하면서 공부도, MC도 열심히 한 가수로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울 풍문여고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 했던 수재였다. 법관이 되기를 희망했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1961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노래가 좋아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처음부터 가수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대학에 입학했던 해 서울 중앙방송국(현 KBS)에서 합창단을 모집한다기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덜렁대는 성격 탓에 실수로 동시에 공모한 전속가수 부문에 신청하는 바람에 가수 시험을 보게 됐어요.(웃음)” 그것도 당당히 1등으로 합격했다. 가수가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데뷔곡은 1962년 발표한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다. ‘삼오야 밝은 둥그런 달이/둥실둥실 둥실 떠오면/설레는 마음 아가씨 마음/울렁울렁 울렁거려요’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요즘도 심심찮게 들린다. 1980년 6인조 혼성 밴드 ‘들고양이들’이 ‘십오야’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해 더욱 널리 불렸다. 그러나 수년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해야만 했다. “가수 활동을 집과 학교에 모두 숨겨야 했어요. 당시 고려대에서는 재학생이 가수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거든요. 부모님도 가수가 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어요. 그래서 본명인 ‘최순강’ 대신 가장 흔한 김 씨 성에 친구 이름을 한 글자씩 조합해 예명으로 활동했어요.” 대중에게 얼굴을 드러낸 것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다.

이후 해마다 주옥같은 히트곡이 터져 나왔다. ‘코스모스 한들한들/피어 있는 길/향기로운 가을 길을/걸어갑니다’로 시작하는 불후의 명곡 ‘코스모스 피는 길’은 초가을 코스모스만 피면 김상희와 이 노래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다. 이 외에도 대표적인 히트곡은 ‘울산 큰 애기’ ‘경상도 청년’ ‘대머리 총각’ ‘즐거운 아리랑’ ‘빨간 선인장’ ‘참사랑’ 등 수두룩하다. 트로트가 대세인 시절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 초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연말 빅쇼 때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을 불렀는데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어요. 당시 그 감동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요.”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홍콩 등으로 진출한 원조 한류 가수로도 평가를 받는다. 1966년 한국 뮤지컬의 효시인 ‘살짜기 옵서예’에서 애랑 역을 맡아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했다. 그동안 상도 많이 받았다. 2004년 문화훈장을 비롯해 제1회 대한민국방송가요대상, 제1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그러나 시련도 있었다. 데뷔 후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매년 히트곡을 선보였지만, 1980년대 갑자기 TV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것이다. 남편 유훈근(82) 전 KBS PD가 김대중 전 대통령 공보비서를 맡았다는 이유였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탄압이 시작됐다. 결국 남편은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야 했다. 김상희는 그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방송 출연 금지뿐만 아니라 가수활동을 일절 할 수가 없었다. 관계기관으로부터 사찰도 받았다. “막막하더라고요. 생계를 위해 이화여대 앞에서 햄버거 장사를 하기도 했어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기동창으로 친분이 있어 대선 유세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언젠가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당당히 살았다”고 회고했다.

지금까지 발표한 300곡이 넘는 노래 가운데 금지곡도 2곡이 있다. ‘단벌 신사’와 ‘어떻게 해’다. “단벌 신사 노랫말에 ‘주머니가 텅텅 비어 데이트를 못 해도/단벌 신사 노총각님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노래를 북한이 궁핍한 남한사회를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한다는 게 금지곡 사유였어요. ‘어떻게 해’는 당시 유신반대 시위자들이 이 노래를 불러 금지곡이 됐어요.”

김상희를 얘기하면서 남편을 빼놓을 수가 없다. 53년 함께 사는 동안 싸운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이름난 잉꼬부부다. 60년 음악인생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가수에서 MC로 발탁한 것도 그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이 MC를 하는 것은 꿈도 못 꿨어요. 방송국 윗선에서도 반대했었고요. 당시 남편은 KBS ‘당신의 멜로디’라는 프로그램 담당 PD였는데, 김상희가 MC로 성공하지 못하면 사표를 내겠다고 했대요.” 결국 MBC와 TBC 등 방송국을 넘나들며 MC로 맹활약했고, 그와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결혼 성사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양쪽 집안이 뒤집어질 정도로 반대가 심했어요.” 서울에서 극장을 3개나 소유하며 꽤 부유하게 살았던 김상희 부모는 딸을 종갓집 맏며느리로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 집안에서도 600년 전통의 종갓집 종손 며느리로 가수를 맞으면 망한다며 극렬히 반대했어요.” 남편이 양쪽 부모들을 찾아가 설득했으나 여의치 않자 ‘반대를 해도 할 수 없다. 우리 둘이서라도 결혼하겠다’며 일방적으로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알려주고 집을 나왔다. “그 모습에 존경심을 가졌어요.” 막상 결혼식에는 양가 부모가 참석해 결과적으로 유 씨의 고집이 성공한 셈이다.

결혼식장에서 사건도 있었다. 신랑·신부 퇴장 직후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결혼을 위해 양가 부모를 설득하고 예식 준비 과정에서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신랑은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으나 다행히 바로 깨어났다. 신혼 여행도 못 가고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밤새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첫날 밤을 보냈다. “멋있고 능력 있는 남자지만, ‘김상희 남편’이라는 그늘에 가려 조용히 지낸 할아버지(남편)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다”고 몇 차례에 걸쳐 말했다. 그러면서 “고난의 길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그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에게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희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가수가 되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더군요. 법관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약속드렸어요. 집안 망신시키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하겠다고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도 애쓰고 있어요.”

그는 요즘 8년 만의 신곡 ‘초등학교 운동장에서’(김병걸 작사·곡) 발표 준비에 한창이다. “중년 이후 세대가 고향을 방문해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과 교실을 둘러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에요.” 수년 전까지 라디오 프로도 진행하다가 지금은 KBS ‘가요무대’ 등에 가끔 출연하며, 전국 곳곳에서 강연과 공연요청이 오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어르신들과 소외 계층을 위한 소규모 위문공연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가수라는 직업을 늘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전 지금도 현역이고, 앞으로도 노래를 계속할 거예요. 나에게 은퇴란 없어요.”

김상희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있는 인생의 가을 길에서 더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었다. 그의 육성 노래를 들을 기회가 오랫동안 자주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e-mail 박현수 기자 / 인물·조사팀 / 부장 박현수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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