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가는 인연, 오는 인연… “미련일랑 두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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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원 ‘시절인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마음을 깨끗이 한다면 우리 세상은 더 아름답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큰스님의 법어 같지만 실은 천주교에서 발표한 부처님 오신 날 축하 메시지다. 불교계도 지난 4월 정진석 추기경 선종 때 정중히 조의를 전했다. ‘포용하라’. 백 마디 설교보다 몇 줄 덕담이 신도들을 가나안, 룸비니 동산으로 인도한다.

고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민태원의 수필 ‘청춘예찬’에 부처님에 관한 질문이 나온다. “석가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에서 고행을 하였는가.” 부처님 오신 날이 내일모레(5월 19일)인데 정가에선 설산 대신 설전이 한창이다. 느닷없이 여러 산의 이름도 등장해서 이목을 끈다. ‘에베레스트를 가려면 동네 뒷산만 다녀선 안 되고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중간 산들도 다녀봐야 한다’고 훈수를 두자 곧바로 ‘팔공산만 다니던 분들은 수락산과 북한산, 관악산 아래서 치열하게 산에 도전하는 후배들 마음을 이해 못 한다’며 응수했다. 꽃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시든다’고 선배가 콕 찌르자 ‘시든 꽃잎에는 열매가 맺지만 시들지 않는 조화에는 오직 먼지만 쌓인다’며 후배가 훅 질렀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배웠는데 지금은 미쳐야 본전이라는 말이 더 실감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봄은 무르익어 가는데 산이며 꽃들이 고생이 많다. 이심전심의 염화미소는 마스크 뒤로 숨고 가시 같은 눈길이 독을 내뿜는다. 그러나 까맣게 태우는 ‘직화(直火)구이’식 언쟁보다 자연을 매개로 주고받는 비유 화법이 꼭 나쁘게만 들리진 않는다. 만약에 음악동네 주지 스님께 청한다면 진흙 속에서 다투는 이들에게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까.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렇게 시작하는 가곡의 제목은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고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다. 서정주의 시에 김주원이 곡을 붙였다. 만나러 가는 때와 만나고 가는 때의 심정은 깊이와 넓이가 다를 것이다. 시인은 이별에 대해서도 낙관의 시선으로 ‘아주 영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을 권고한다.

부처님 오신 날 선곡 리스트에 올릴 만한 곡으로는 이찬원의 ‘시절인연’도 있다. 2020년 MBC연기대상에서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드라마, 연기대상(박해진), 수목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김응수)을 휩쓴 ‘꼰대인턴’의 OST다.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인연은 대체로 소중한 것이지만 개중엔 악연도 있다. 우리말 ‘연연하다’는 애틋하게 그립다(형용사)뿐 아니라 집착하여 미련을 가진다(동사)는 뜻도 있다. ‘오고 갈 때가 있으니/ 미련일랑 두지 마세요’(‘시절인연’ 중). 하늘빛이 연연하다처럼 자연을 마음에 담으면 자유를 벗하게 되지만 벼슬에 연연하다처럼 자리에 마음을 뺏기면 여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간다.

‘시절인연’은 사랑에 연연하고 ‘꼰대인턴’은 권력에 연연한다. 노래 제목은 연꽃 향기를 풍기는데 드라마 제목은 진흙 바닥을 연상시킨다. 기획의도에 ‘꼰대와 요즘 것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판타지 소통극’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두의 성장극’이라 씌어 있다. 영국 BBC는 2019년 9월 23일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늘의 단어’로 꼰대(kkondae)를 소개한 적이 있다. 거기선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 풀이했다. 그런데 사실 젊은 꼰대도 존재한다.

좋은 인연을 모아 좋은 인생을 만들려면 ‘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시절인연’ 중) 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찬원이 즐겨 부르는 ‘오늘이 젊은 날’(원곡 김용임)엔 ‘인생이란 다 그렇지/ 청춘엔 기준이 없는 거’란 부분이 나온다. 제목만 들으면 마치 꼰대찬가 같은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원곡 서유석)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가사도 청춘의 기준을 제시하긴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