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에 등단해 50회 개인전… 이번엔 ‘나만을 위한 전시’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백원선 작가는 자신의 그림 ‘멈춤-pause’에서 포즈를 취하며 “해외시장에서 인정하는 것은 한국 정체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사진은 전시 관객으로 온 윤지현 CNA Company 대표가 찍었다.

■ 자택 작업실서 회고전 여는 화가 백원선

미공개 작품 500여점으로 꾸며
상·하반기 두 차례 나눠서 전시
서양화 바탕에 한지·닥나무 등
동양의 물성 결합한 작품 창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백원선 작, ‘한지의 선(禪)’.

작가는 두 아들을 키운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비쳤다. 8남매의 맏며느리 역할을 하며 자식 뒷바라지를 했던 세월이 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각기 법조인과 공대 교수로 살아가는 두 아들에 대한 자랑을 감추지 않았다. 두 아들이 작가의 전시 도록에 쓴 글을 보면, 자식들에게도 어머니가 자랑인 모양이다.

“어머니를 존경하는 것은 저희 형제가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깊고 넓게 이해해서 당당한 삶을 누리는 사회인이 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장남)

“옛 작품들을 돌아보면서 삭히고 삭힌 뒤에 또 새것에 몰입하시는 열정이 보기 좋습니다. 분야가 다르지만 보고 배운 모습 그대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차남)

회고전을 열고 있는 백원선(76) 작가 이야기이다. 백 작가의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니 그의 두 아들이 왜 저렇게 말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50세 늦깎이로 화단에 등단해 50회의 개인전을 쉼 없이 열어 국내외 인정을 받은 작가의 저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백 작가의 회고전이 특별한 것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작품 500여 점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979년부터 작년까지 만든 것들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있지만 드로잉, 에스키스(esquisse·밑그림) 등의 습작이 주류를 이룬다. 그는 왜 이렇게 자신의 속살 같은 작품들을 내보이는 것일까.

“감염병 사태로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집안에 갇혀 있게 되자,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두루 찾아보니 참으로 많더군요. 거기에 바쳤던 열정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나만을 위한 전시’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는 상·하반기 두 차례로 나눠 작품들을 전시하고, 각기 100여 쪽 분량의 관련 도록도 만들었다. 상반기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진행한다. “이런 시기에 걸맞게 외부 전시장이 아닌 집의 작업실을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서울 남가좌동에 있는 작업실은 각종 작품들로 빼곡했다. 그는 그 작품들을 일일이 보여주며 설명했다. 대학과 시민문화센터 등에서 미술 이론과 실기를 강의한 사람답게 “예술은 열정을 받쳐주는 기초가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기초에 해당하는 인체 소묘 작품의 생동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이 작품들은 작가가 되려고 그린 것이 아니라 수집가로서 좋은 작품을 구입하기 위한 안목 키우기용이었다”고 했다.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뒀던 그는 두 자식이 성장해 품을 떠나자 미술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인체를 해체해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동안 내재돼 있던 창작욕은 1993년 첫 전시를 한 이후 폭발해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 때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작품이 초대될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미주리대 등 국내외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가 됐다. 이런 과정을 묵묵하게 지켜봐 준 남편이 최대 후원자였다.

그는 서양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한지, 먹, 닥나무라는 동양의 물성을 결합한 작품을 창조했다. “동서양이 결합된 3D 작품을 가장 먼저 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런 작품들이 외국에서 다 팔렸는데요, 화면 어딘가에 한글 모양을 넣어서 꼭 정체성을 표현했어요.”

백 작가는 동양철학을 공부한 후에 그것을 미술 작업과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한지를 손으로 찢어서 달항아리를 만드는 등의 형식 실험도 했다. “작가는 끝없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제가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도 청년의 열정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나만을 위한 전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이 찾는다면 환영이란다. 관람은 예약제. 02-309-0009.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