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 남용 막아 국민 기본권보호 실현이 헌법정신의 法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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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핵심 ‘법치’

‘법에 의한 지배’는 형식적 법치
독재 등 국가 폭력 정당화 위험
법률에 근거한 ‘법의 지배’여야

과거 검찰을 권력 도구로 악용
文정부 들어 檢개혁에 나섰지만
정치검찰 없애려다 정치공수처

법치의 보루 사법부도 정치화
대통령 임명 대법원장이 좌우
독립성 위해선 인사 개혁 절실

민주주의 혁명은 인치(人治)의 시대를 법치(法治)의 시대로 바꿔놨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치다. 그런데도 주권자인 국민에게 법치는 ‘양날의 검’과 같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해주는 안전장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통제장치다. 정의로운 국가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자유와 권리를 누리며 공존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상. 이를 실현하는 첫걸음이자 공고화하는 수단이 ‘법치 바로 세우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치, ‘법에 의한 지배’ 아닌 ‘법의 지배’ 지향 = 근대 이후 법치주의는 두 가지 개념으로 이해됐다.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와 ‘법의 지배(Rule of law)’다.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21세기북스)의 저자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법에 의한 지배’는 “법치를 국가에 권한을 부여하고 정치권력을 실현하는 기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법치는 국가권력이 법에 의해 행사된다는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정당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형식적 법치’라고 부른다. 이는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이와 달리 ‘법의 지배’는 국가권력이 반드시 법에 의해 행사돼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둔다. 법치가 국가권력의 폭주를 막는 통제장치인 셈이다. 이 교수는 “법치는 본래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법의 지배’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에 ‘법치’라는 표현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 판례는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헌재 1992.4.28. 90헌바24)고 밝히고 있다.

◇갈 길 먼 법치 = ‘법의 지배’라는 헌법 정신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 법치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은 여전히 들려온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거의 모든 정부에서 ‘정치 검찰’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검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내겠다며 집권 후 검찰 개혁을 ‘적폐 청산’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왔으나, 벌써부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수사 개시권과 1차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 넘기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으로 요약된다.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은 이 과정에서 제1야당과 검찰 내부의 강한 반대는 물론 전문가들의 우려도 묵살하고 법안 처리를 강행, “법치를 ‘법에 의한 지배’로 착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했다.

많은 전문가는 “‘정치 검찰’의 폐해를 없애려면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게 중요한데, 현 정부는 검찰의 힘을 빼는 데만 집중했다”며 개혁 방향의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다. 검찰이 약해지는 대신 경찰 권력이 비대해졌고, ‘정치 검찰’의 자리를 ‘정치 공수처’가 차지하게 됐다는 얘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권과 갈등을 빚다 임기도 못 채우고 사퇴하며, 공수처가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윤 전 총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들어간 것은 이런 부정적 평가에 기름을 부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7일 “검찰권을 분산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검찰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경찰이 너무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기존 검찰의 가장 큰 문제가 ‘정권의 시녀’ 역할에 그친 것이라면, 공수처도 처장이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여야 추천 인사로 구성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위원회 정도로 추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권 견제와 공수처 독립성 보장이 향후 수사기관 개혁의 핵심 과제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사법부 독립도 요원, “핵심은 인사” = 삼권분립의 한 축이자 법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 역시 여전히 ‘사법부의 정치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사법 농단’ 혐의로 재판받는 데 이어 문 정부에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도 정치 예속 논란에 휩싸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부하처럼 행동할 때 국민이 뭘 느끼겠느냐”면서 “법치는 법적 판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게 핵심인데, 그 1차 전제조건이 삼권분립이며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많은 전문가는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인사 개혁’을 꼽는다. 현재 법무부 장관은 물론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대법원장이 모든 법관의 인사를 좌우할 수 있어 법관들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사법권의 독립성을 확립하기 위해선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신분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법의 지배’가 실현되려면 사법권 독립이 필수적”이라며 “각 재판부가 외압 없이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도록,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현재 6년 연임으로 돼 있는 대법관 임기를 9년 단임으로 바꿔, 대통령과 여당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은 대법관 임기에 종신제를, 독일은 12년 단임제를 적용하고 있다.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은 민주화 열망을 반영한 ‘무혈의 사법혁명’으로 일컬어진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사법부 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 등과 같이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