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개미는 작게, 지렁이는 길게… 동물 형태 결정한 ‘물리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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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물리학 | 찰스 S 코켈 지음, 노승영 옮김│열린책들

세대 따른 무한한 다양성 불구
‘압력=힘÷면적’ 원리 따라 진화

땅속 동물의 짧은 앞발은 필연
외계 물고기도 ‘유선형’ 가능성
기괴한 형체 외계 생물은 불가

환경 따른 물리적 원리에 순응
번식 성공해야 겨우 도태 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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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신비롭다. 주변의 온갖 생물을 들여다보자면, 수많은 질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왜 잠수함처럼 물고기에는 프로펠러가 없을까? 찌르레기는 왜 떼를 이뤄 하나처럼 움직일까? 벌레들은 어떻게 벽을 기어오를까? 코끼리만 한 개미는 왜 존재하지 않을까? 자동차처럼 바퀴 달린 동물은 왜 없을까?

우주생물학자인 찰스 코겔은 ‘생명의 물리학’에서 이 오래된 의문을 몇 가지 물리 법칙을 통해 명료하게 설명한다. 흔히 생물학과 물리학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생각하면, 간단한 방정식 몇 줄로 생명을 설명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진 한 장 없는 책이지만, 저자는 문학작품처럼 느껴지는 세밀한 묘사를 통해 생생히 생명 현상을 그려내면서, 방정식 한 줄로 표현되는 간단한 법칙들로 생명의 비밀을 알려준다. 분자 몇 개가 세포가 되고, 세포가 생물 종이 되는 생명의 모든 단계마다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 생물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물리적 원리에 순응하고, 번식에 성공했을 때만 비로소 도태를 피할 수 있다.

물리 법칙으로 보면, 생물은 단순하다. 개미는 개체가 한 톨씩 흙을 날라, 일개미 3억 마리, 여왕개미 100만 마리, 개미집 4만5000개로 이뤄진 도시를 홋카이도(北海道)에 형성했다. 아무 지휘도 없었다. 기적처럼 보이지만,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는 단순한 방정식인 멱법칙이 작용했을 뿐이다. 멀리 떨어진 오렌지를 향해 개미들이 긴 줄을 형성하려면 더 복잡한 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법칙은 A가 발견한 케이크 맛집이 맛집 순례자 사이에 성지가 되는 데도 적용된다. 모든 생물의 먹이 찾기 방정식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수천 마리 새가 하나처럼 행동하는 데도 물리 법칙이 있다. 찌르레기는 군무를 이룰 때 서로 충돌을 피하고 방향을 맞추고 속도를 일치시킨다. 디즈니 영화사는 세 가지 규칙만 갖고, 무리 이동하는 누영양, 물고기 등을 시뮬레이션으로 창조한다.

크기가 작은 무당벌레에는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무당벌레는 얇은 액체막을 분비한 후 생기는 표면장력에 발바닥 가시털로 달라붙으면 벽 위를 이동할 수 있다. 거미, 도마뱀, 딱정벌레 등도 벽을 기어오를 때는 같은 법칙을 이용한다.

곤충은 일정 규모 이상 커질 수 없다. 표면적을 늘린 허파를 호흡에 이용하는 인간과 달리, 기관을 사용하는 곤충은 몸집이 커지면 적절한 시간 안에 산소를 몸 한가운데까지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피크의 제1법칙이라 한다. 코끼리만 한 개미가 없는 이유다. 기록된 가장 큰 곤충인 자이언트웨타는 몸무게가 71g에 불과하다. 바퀴 달린 동물이 없는 것은 바퀴가 반지름보다 높은 수직 장애물을 넘지 못하는 등 장애물이 널린 지형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다리보다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생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압력(P)은 힘(F) 나누기 면적(A)과 같다(P=F/A)는 물리 법칙이다. 두더지는 흙을 밀어내고 땅속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선택압을 받는다. 이 일을 잘하려면 앞다리가 짧고 힘세고 억센 발톱이 나 있으면 좋다. 또 구멍 속을 쉽게 이동하려면 길고 둥근 몸통이 적합하다. 땅파기 동물들은 지렁이든, 벌레든, 까나리든 모두 같은 법칙에 따라 비슷한 생김새로 진화했다.

이 책의 메시지는 한 줄로 요약된다. 물리 법칙과 생명 법칙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를 좇아서 생명의 모든 단계를 들여다보면,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는 문턱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구상 생물이 대부분 탄소 생명체가 된 것은 탄소가 복잡한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서 생명체 구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은 우주 어디든 풍부하기에 생물의 용매로 적합하므로 생명은 모두 물을 품고 있으며, 단백질 사슬은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를 향해 접히는 경향이 있어서 몇 가지 형태로밖에 발현되지 않는다. 이처럼 어떠한 진화도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유전자 차원에 내재한 필연적 변이에 따라, 세대마다 사소하지만 무한한 다양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땅속을 이동하면서 사는 두더지는 결국 짧고 단단한 앞발, 길쭉하고 둥근 몸통 등을 가진 형태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외계 생명체도 똑같다. 지구와 달리, 규소 생명체라 할지라도, 땅속 생물이라면 지구의 땅파기 생물과 닮았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은 똑같기 때문이다.

유체 속을 헤엄치는 외계 물고기 역시 지구 물고기처럼 날렵한 유선형일 것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다면 지구의 새처럼 생겼을 가망이 높다. 별도의 물리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 한, 다양할 수는 있어도 과학소설(SF)에 나오는 것 같은 이상야릇한 외계 생물체는 존재하기 힘들다. 생명은 물리학과 결혼해야 자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물리 법칙을 선명히 드러내는 29가지 방정식을 우리 눈앞에 제시한다. 복잡한 생명 현상을 한 줄로 요약하는 이 방정식들은 무척 우아해서, 때로 풀어보고 싶은 무모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아마도 이런 충동이 저자의 의도 중 하나였을 듯싶지만, ‘문과라서 죄송한’ 나는 당연히(!) 수식을 무시하고 책을 읽었다. 다행히 수식을 건너뛰어도, 좋은 과학 교양서의 법칙에 들어맞는 친절한 서술 덕분에 내용을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독자들도 나와 똑같을 것이다. 488쪽, 2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