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분식의 ‘분식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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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의 격은 맛으로 결정돼야겠지만 규모와 치장,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로 결정되기도 한다. 이런 기준으로 따지면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는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이고 그 위에 분식집이 놓일 것이다. 분식집은 말 그대로 가루음식, 즉 밀가루 음식을 파는 집인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다들 인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싼값에 간편하게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각인돼 있을 것이다.

사실 분식이 곧 밀가루 음식인 것은 아니다. 쌀을 갈아 가루를 낸 후 쪄서 떡을 빚기도 하는데 떡은 분식으로 치지 않는다. 그런데 가래떡을 고추장 양념으로 비벼낸 떡볶이는 분식집 대표 메뉴다. 밀가루가 주재료지만 갈색으로 구워낸 빵은 분식 취급을 받지 않는데 흰색 찐빵은 분식집 메뉴가 되기도 한다. 밀가루로 부친 전은 분식집이 아닌 막걸리 집에서 찾아야 하니 분식과 아닌 것의 경계가 그리 분명한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분식집’에서 분식이란 말을 배웠겠지만 나이 지긋한 세대들은 ‘혼분식’이란 말에서 이 말을 배웠다. 1970년대 쌀이 귀하던 시절 어떻게든 쌀을 아끼고자 쌀밥에 잡곡을 섞어 먹는 것이 혼식이고 쌀밥 대신 밀가루 음식을 먹는 것이 분식이다. 이 둘을 합쳐 혼분식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으니 이 시대를 경험한 이들에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 분식집이 어느 순간 엄청난 분식회계를 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분식회계는 남을 속이기 위해 장부를 조장하는 것이지만 분식집의 그것은 밀가루 음식뿐만 아니라 온갖 음식을 파는 것이다. 김밥과 덮밥은 밥이니 분식이 아니고 찌개와 탕은 밥과 어울리는 것이니 역시 분식과 거리가 멀다. 여기에 양식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돈까스’나 고깃집에서 먹어야 할 것 같은 냉면 등도 추가된다. 주머니가 가볍고 바쁜 이들은 이 분식회계가 고마울 따름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