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인 걸그룹 에스파는 K-팝에서 메타버스와 아바타를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한 그룹으로 꼽힌다. 멤버 4인 외에 ‘아이(ae)’라고 불리는 아바타 멤버 4인이 더 있다. 이들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따로 또는 같이 공연한다.
■ 메타버스 열풍
걸그룹 ‘에스파’, 증강현실·인공지능 등으로 아바타와 결합 또다른 존재로 확장… 그룹마다 독창적 세계관 내세우기도
K-팝 넘어 쇼핑·레저·교육 등 가상경제 활동 무한진화중… 메타버스 글로벌 시장규모 2030년엔 1742조원 추산
가공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Metaverse). 모든 사회적 활동이 현실처럼 이뤄지는 확장된 가상 공간인 메타버스 열풍이 일고 있다. 공연, 게임부터 교육, 행정, 의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메타버스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29년 전 미국 과학소설(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장편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1992)’에서 이 신조어가 처음 등장한 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초고속 네트워크, 블록체인 등 시대의 새로운 기술이 복합·연결돼 지금에 이르렀다. 다만 메타버스가 최근 주목받는 것은 범용 기술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메타버스 세계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데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환경적 요인이 변화를 빠르고 강하게 견인한 결과다. K-팝, 게임을 선두로 교육, 마케팅, 쇼핑, 의료 등 일상의 영역에서는 이미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에스파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는 K-팝에서 메타버스를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한 예로 꼽힌다. SM은 지난달 중순 유튜브 채널에 ‘에스파 에피소드1 ‘블랙맘바’, SM 컬처 유니버스(SMCU)’라는 제목의 10분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싱글 ‘블랙맘바’를 발표한 에스파를 통해 SMCU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활동하는 에스파 4인과 그들의 데이터를 근거로 만든 아바타 ‘아이(ae)’ 4명, 그리고 그 안에 깃든 놀라운 세계관을 보여준다.
SMCU 영상은 하나의 단편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멤버 지젤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이’와 교감하며 그 존재에 눈뜨게 된다. 화자의 입을 빌리자면, ‘아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올리는 모든 데이터로 형성되며, 인격을 지닌 또 다른 존재’다. ‘아이’와 함께 멤버들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한다. 윈터는 아바타와 함께 영화 속 여전사처럼 총격전을 벌이고, 닝닝은 탁월한 예술적 감각으로 전시물을 창작해 갤러리들을 놀라게 한다. 또 카리나는 ‘아이’의 호출을 받고 ‘포스(P.O.S)’를 지나 가상세계의 아바타와 도킹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가 이 세계관의 밑바탕이다. 에스파는 4인으로 출발했지만 메타버스 속 아바타 4명과의 결합을 통해 8인의 또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초고속 네트워크에서 VR, AR, XR, AI, 블록체인 기술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보다 현실감 있는 가상세계의 구현과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통신시장 격돌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글로벌 메타버스 시장은 VR와 AR를 포함해 2030년 1조5429억 달러(약 1742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비대면 시대 엔터테인먼트, 게임 분야를 넘어 쇼핑, 레저,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모델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업체들은 이미 시장 선점에 나섰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K-팝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이 프로젝트는 K-팝 스타들의 디지털 콘텐츠, 메타버스 기반의 뮤직비디오와 콘서트 제작 등을 통해 K-팝 문화를 혼합현실 공간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걸그룹 스테이씨, 위클리 등과 협업 중이다. 첨단 기술로 촬영한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디지털 콘텐츠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또 지난해 말 조직을 개편하면서 메타버스와 같은 개념을 지닌 혼합현실서비스컴퍼니 조직을 만들었고, 지난 4월엔 이 조직의 이름을 아예 메타버스컴퍼니로 바꿨다. LG유플러스는 SM과 손잡고 아티스트의 콘텐츠를 가상공간에 꾸미는 메타버스 기반의 ‘온라인 전시관’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세계를 보여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AR 웹툰, VR 애니메이션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현재 이용자 수가 2억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K-팝 팬클럽의 근거지 역할을 하면서 커졌는데 지난해 제페토에서 블랙핑크가 개최한 팬사인회에는 4600만 명이 넘는 이용자들이 몰렸다. 제페토는 이용자의 셀카 사진에 AI와 AR 기술을 활용해 이용자와 닮은 3D 아바타를 만들어준다. 아바타는 사람을 대신해 콘서트를 가고 아이돌의 굿즈를 사며, 팬사인회에 참석해 아이돌 아바타를 만난다. 언뜻 들으면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겠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미팅 부재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팬들에겐 큰 위안이 됐다.
AI 작곡을 제안한 엔터아츠는 가상의 작곡가 에이미 문을 제페토에 공개하기도 했다. 에이미 문은 AI 음악 생성 기술을 탑재한 작곡가 캐릭터다. 엔터아츠가 운영하는 AI 음반 레이블에서 제작하는 모든 음악과 영상 콘텐츠의 작곡,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명상과 힐링을 위한 내용으로 40곡 이상을 만들었다. 현재 보유한 팬만 SNS상에 1만 명 이상이다. 메타버스 내 AI가 창작한 음악에 대한 저작권과 소유권에 관한 새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누적 조회 수 32억 뷰의 인기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은 AR 콘텐츠로 독자를 만났다. 덱스터스튜디오가 LG유플러스와 손잡고 웹툰을 AR로 제작했다. 모두 5개의 쇼트폼으로 ‘출출이 세포’ ‘응큼 세포’ 등이 일상 공간에 3D로 나왔다. 지난 3월엔 CJ ENM 애니메이션사업부가 ‘신비아파트 미디어 어드벤처: 내가 구하리!’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VR 패키지로 선보였다. 이 패키지는 8K 고화질로 구현돼 실제 전시장에 방문한 듯한 몰입감을 줬다.
SAMG엔터테인먼트(구 삼지애니메이션)는 메타버스와 K-팝이 만난 신개념 디지털 아이돌 ‘룰루팝(Lulupop)’을 제작했다. ‘룰루팝’은 AR 및 모션 캡처 등을 적용한 기술이다. ‘룰루팝의 세계로 초대한다’는 판타지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며 시즌별로 각기 다른 콘셉트의 인형과 음악, 뮤직비디오를 보여줄 계획이다.
◇미술과 메타버스
K-팝이나 웹툰, 게임 못지않게 활발하게 메타버스의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가 미술이다. 미술에선 메타버스에서 유통될 수 있는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가 먼저 구체화됐다. NFT는 토큰화된 디지털 자산이다. 유·무형자산의 토큰화가 가능하며, 상호 대체 불가능하기에 디지털 영역에서 진위나 소유권을 증명하는 데 활용된다. 바로 이 점이 미술작품과 만나는 지점이다. 복제가 어려워서 희소성을 보장할 수 있고 위조품이 나올 위험도 낮아 예술시장 유통에 편리하다. 최근 세계적 경매업체 크리스티가 진행한 NFT 예술품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윙클만의 작품이 최초 100달러 수준에서 시작해 최종 6930만 달러(약 785억 원)에 낙찰됐다. 제프 쿤스와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생존작가로는 세 번째로 높은 경매가였다.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NFT 미술품 경매가 이뤄졌다. 마리킴의 NFT 작품 ‘미싱 앤드 파운드(Missing and found)’가 최초 5000만 원으로 시작해 경합 끝에 한 컬렉터에게 약 6억 원에 낙찰됐다. 게임 머니에서 예술품 경매까지 NFT는 메타버스를 여는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메타버스의 미래… 그리고 삶의 변화
그렇다면 메타버스로 인해 우리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우선은 지난 3월 충남 아산 순천향대에서 진행된 새로운 시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순천향대는 SK텔레콤과 협력해 대면 입학식 대신 가상의 입학식을 열었다. SK텔레콤의 점프 VR 플랫폼을 통해 학교 대운동장과 거의 흡사한 입학식 공간을 구현하고, 신입생들은 아바타로 참여했다. 코로나19 때문이었지만 게임과 영화에서 보던 게 실제로 벌어진 셈이다.
메타버스 세계를 담아낸 SF 소설과 영화에선 그 모습을 보다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메타버스 개발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소설 ‘스노 크래시’에도 메타버스와 아바타, 가상 세계가 등장한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아바타를 빌려야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로 들어갈 수 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현실에선 마피아에게 빚진 돈을 갚기 위해 피자를 배달해야 하지만, 메타버스에선 뛰어난 검객이자 해커다. 29년 전 소설인데도, 지금의 게임에서 가상의 ‘부캐’를 활용하는 스토리와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메타버스 세계를 가장 쉽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2045년의 미래, 암울한 현실과 달리 VR 오아시스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가 돼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펼쳐지며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경제·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기술이 사회적·법적 대응 속도를 넘어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려할 지점도 많다. 개인정보, 가상투자로 인한 수익, 새로운 유형의 노동은 물론 특히 현실 세계의 법과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대비가 필요하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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