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홍콩보안법 칼에 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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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핑궈르바오(빈果日報) 폐간

2002년부터 中 신랄하게 비판
우산혁명 · 송환법 반대 앞장서
창업주 · 편집국장 잇달아 체포
23일밤 마지막 인쇄 뒤 문 닫아

핑궈르바오가 폐간을 발표한 23일 오후 10시 홍콩 몽콕(旺角) 거리. 신문 가판대 앞에선 사람들이 24일자 핑궈르바오 폐간호를 구입하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다. “내일 오전 1시 30분은 돼야 신문이 도착한다”는 판매원들의 안내에도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신문을 기다렸다. 24일 0시 55분쯤 초판이 도착하자 독자들은 2∼10부씩 신문을 구입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한 구독자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취재진에게 “핑궈르바오를 구입해 행복하지만 오늘은 불행한 날”이라고 말했다.

홍콩과 중국 당국의 탄압을 받아왔던 핑궈르바오는 23일 오후 11시 45분 정관오(將軍澳)에 있는 사옥에서 마지막 인쇄를 시작했다. 1면에는 휴대전화 조명등으로 사옥 전경을 비추는 한 지지자의 손과 함께 ‘홍콩인들과 빗속에서의 고통스러운 작별’ ‘우리는 핑궈르바오를 지지한다’는 글자가 제목으로 뽑혔다. 핑궈르바오는 전체 20개면 중 절반 가까운 9개면을 자사에 대한 단속과 독자들의 아쉬움 등을 담았다. 밍바오(明報), SCMP 등도 이날 핑궈르바오 폐간 소식을 주요 기사로 다루며 퇴장을 아쉬워했다. 사옥 밖에는 폐간 소식을 들은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핑궈르바오 힘내라” “광복 홍콩, 시대 혁명” 등 구호를 외치며 폐간을 슬퍼했다. 이날까지 취재를 계속했던 기자들은 “폐간으로 구속된 동료들이 풀려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신문 인쇄가 끝난 뒤 직원들은 사옥 안에서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지지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지지자들도 화답했다. 핑궈르바오 홈페이지도 마지막 신문 발간에 앞서 23일 오후 11시 59분 ‘구독자에게 알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안내문을 게재한 후 서비스가 중단됐다.

핑궈르바오는 1995년 유명 패션기업 지오다노 창업주 지미 라이(黎智英)가 창간했다. 인류가 먹은 이후 선악을 구별하게 됐다는 ‘금단의 사과’에서 이름이 유래한 핑궈(사과)르바오는 저가 타블로이드 신문 이미지가 강했지만 2002년 둥젠화(董建華) 초대 홍콩 행정장관 취임 이후 정치 보도에 집중하며 중국과 홍콩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시위 때는 종종 대중의 시위 참여를 촉구했고 경찰 폭력 등을 적극 보도했다. 라이 창업주도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에 직접 참여했다. 중국 관영 매체와 홍콩 친중세력은 라이를 외세와 결탁해 홍콩 정부를 전복하고 홍콩의 독립을 선동하는 인물이라고 몰아세웠다. 결국 라이 창업주는 2020년 8월 체포돼 12월 기소됐다. 이후에도 핑궈르바오에 대한 당국의 탄압은 계속됐다. 지난 17일에는 사옥을 압수수색하고 자산을 동결했으며 편집국장 등 간부 5명을 체포해 기소했다. 23일에도 핑궈르바오 수석논설위원이 체포됐다. 당국의 거센 압박에 핑궈르바오는 결국 폐간을 발표했다.

핑궈르바오 폐간에 유럽연합(EU)은 “중국이 국가보안법을 통해 뉴스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고 언론 자유를 심각히 파괴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했고, 대만 대륙위원회는 “홍콩 국가보안법 및 당국의 탄압으로 홍콩 매체가 더는 운영되지 못하게 됐다”며 “매우 큰 유감을 느낌과 동시에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베이징 = 박준우 특파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