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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평 게재 일자 : 2021년 06월 24일(木)
‘북핵 폐기’ 실질적 이정표 세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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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김정은 “대화와 대결 동시 준비”
핵 포기 않고 美 반응 타진 의도
北 경제난은 새로운 기회의 窓

核 사찰-검증-반출 구체안 필요
동맹 영향 없는 반대급부 준비
임기 말 ‘반짝 이벤트’ 피해야


지난 17일 북한 김정은 총비서는 대화와 대결에 대한 동시적 준비,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 강조 등 발언을 했다. 이는 4월 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 완료 후 5·21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력 합의, 6·13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6·14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핵무기 포기 촉구와 제재 유지 재확인 등 외부 움직임에 대한 첫 공식적 반응이다.

통상 한·미 양국에 대한 저급한 욕설과 기만적 허사가 뒤범벅된 성명서가 아닌,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직접 행한 비중 있는 입장 표명이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대화라는 단어에 귀가 솔깃해질 만도 하다. 이번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성 김 대사의 방한 협의 때 이에 대응해 북한에 대화를 촉구한 건 당연하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외교(협상)와 억지(제재)를 병행하면서 동맹국들과 긴밀한 조율 속에 실용적 어프로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향후 미·북 접촉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같은 회의에서 국가의 전략적 지위를 높이자고 한 발언에서 보다시피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난 1월 핵전쟁 억지력과 군사력 강화 강조 발언, 3·25 전술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사실을 함께 감안해 볼 때, 이번 언급은 시간을 벌면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혹시 ‘달라진 계산법’이 있는지 타진해 보기 위한 포석이라고 봄이 옳다. 김정은의 발언에 미측이 흥미로운 신호라고 받자 지난 22일 김여정이 나서서 ‘꿈보다 해몽’이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지난 4년간 훼손된 동맹의 강화 및 북한 비핵화 추진을 위한 전열 재정비라는 측면에서 현 상황은 우리에게 긍정적이다. 미국의 단호한 입장으로 볼 때, 북한도 핵·미사일 도발은 궤멸적 상황으로 이어지고 중국의 지원도 어려워질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경제 면에서도 품귀 현상으로 인해 생필품 가격이 폭등하고 어려운 식량 사정으로 제2 고난의 행군도 회자되지만, 코로나 방역으로 국경은 1년 반 동안 여전히 폐쇄 중이고, 외교관들과 국제기구 요원들도 북한을 속속 떠나는 상황에서 도발 야기 시 마주할 미국과의 대결적 상황을 견뎌낼 여력이 없을 것이란 점도 기회의 창을 제공해 준다.

그동안 미국 내 일각에서 주장해 온 스몰딜(또는 중간단계의 합의)의 목소리도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 재강조로 상당히 수그러들었으나, 완전한 비핵화 달성에 대한 계속되는 어깃장 식 비판을 잠재우고 북한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려면 비핵화의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없이는 제재 완화도 없다는 입장을 추진 가능한 정교한 세부 정책으로 만들어 제시해야 할 때가 됐다.

핵 활동 동결은 그 출발점일 뿐이다. 김정은이 유엔총회에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는 연설을 한다든지, 북한 내부적으로 핵 관련 노동당 규약과 북한 헌법을 수정하는 조치 등은 정치·외교적 도움은 되겠지만 지금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정치적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신고 후 이를 바탕으로 한 사찰과 검증 개시, 일정량의 핵물질 국외 반출 등 초기 단계의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는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또한, 이런 것들이 과욕에 그치지 않으려면 유인책으로서 반대급부도 중요하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지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정치·외교·경제·군사의 모든 부문에서 북한의 요구를 청취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의 단기적인 소생과 정상회담 재개 등 ‘반짝 효과’ 차원에서 현 국면을 봐서는 안 된다. 북한이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면박을 준 방역 지원이나 인도주의적 협력과 같은 저차원적 접근도 뛰어넘어야 한다. 그동안 대북 정책을 조율해온 채널인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한다는 발상은 북한의 악습을 더 키우기만 하는 패배주의적 실착일 뿐이다.

원칙을 단단히 지키되 대담한 상상력으로 전략을 세우고 장기적 호흡으로 북한을 다룬다면 비로소 다음 정부에 넘겨줄 만한 가치가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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