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빼갈과 고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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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중국요리에는 독한 고량주를 곁들여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고량주가 기름기를 씻어낸다는 비과학으로 술에 대한 집착을 포장하기도 한다. 독주를 과음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고량주가 요리의 맛을 더해 준다면 적당히 즐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가끔 고량주가 아닌 ‘빼갈’을 마시는 이들이 있다. 고량주는 뭐고 빼갈은 또 뭘까?

고량주는 ‘고량(高粱)’으로 빚은 술인데 고량은 수수를 가리키는 한자어다. 수수는 고유어인지 한자인지 조금 헷갈리는데 중국어 ‘촉黍’에서 온 말로 본다. 우리의 한자음 발음으로는 ‘촉서’지만 중국식 발음으로는 ‘슈슈’이고 옛 문헌에도 ‘슈슈’로 나온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중국어 제목은 붉은 수수밭을 뜻하는 ‘紅高粱’이다. 영화의 배경인 만주벌판을 기차로 달리며 끝없이 펼쳐지는 수수밭, 아니 고량밭을 보면 중국에 그토록 많은 고량주가 있는 것이 이해가 된다.

‘빼갈’은 중국어에서 온 것인데 꽤 많은 변화를 겪은 말이다. 한자로는 ‘白乾, 白干’을 쓰니 우리식 발음으로는 ‘백건’이나 ‘백간’이 돼야 하고 중국어 발음대로라면 ‘바이간’이 돼야 한다. 그런데 한자 ‘白’에 이끌려서인지 ‘배’로 읽는 것도 모자라 된소리로 바꾼다. ‘간’은 중국어에 흔히 나타나는 ‘얼화’를 적용해 받침의 ‘ㄴ’을 빼고 ‘ㄹ’을 붙여 발음한다.

고량주를 만드는 방법만큼이나 복잡한 변화를 겪은 것이 빼갈이다. 중국어 발음 습관과 우리말 음운변화가 모두 반영된 발음이 바로 빼갈이다. 중국에서는 흰 술이란 뜻의 ‘白酒(바이지우)’를 쓰는데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이마저도 ‘빼주’라고 하니 그 이름이 고량주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뭔가 진한 것이 그립다면, 그리고 독한 것이 당긴다면 오래된 영화 ‘홍고량’을 보며 고량주 한 잔 머금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