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역사인식에 갇히고…국가觀에 ‘독립적 사유’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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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李 - 尹 ‘퇴행적 역사 논쟁’

가장 기초적인 국가관 문제
대선 주자로 진영논리 함몰
부동산·일자리 등 과제 산적
철 지난 이념논쟁으로 흘러
이번 대선은 미래 준비할 때

여야 유력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역사 논쟁’으로 20대 대통령 선거 전쟁을 시작했다.

이 지사가 대한민국 출범을 미국 점령군과 친일 세력의 합작으로 규정하며 “깨끗하지 못한 출발”이라고 규정한 데 대해 윤 전 총장은 “대한민국이 수치스럽고 더러운 탄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고 직격하면서 두 후보 간 대권 첫 싸움이 벌어졌다. 이 지사가 윤 전 총장을 비판하며 ‘색깔론’까지 언급하면서 두 후보 간 논쟁이 이념적, 단선적, 편 가르기 진영 논리로 매몰됐던 30년 전 86세대의 운동권 시각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 다른 대선 주자와 주요 정치인까지 논쟁에 가세하고 있지만, 그동안 새롭게 드러난 팩트와 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된 새로운 역사 인식이 반영되지 않은 채 ‘그냥 그렇게 봐야 한다’는 빈약한 역사관과 사유의 고갈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정치권 논쟁은 역사 해석의 문제나 역사 논쟁으로 보기엔 격이 낮다”며 “‘해석’과 ‘논쟁’이 되려면 독립적 사유의 수고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련군이 스스로 해방군이라고 했기 때문에 소련군은 해방군이 되고, 미군이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했기 때문에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인식하는 것에는 우리 스스로의 해석이 들어 있지 않다”며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독립적으로 사유하지 못하는 경박함 이상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최 명예교수는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는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봐야 한다는 틀에 갇혀 있다. 사유의 고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에둘러 수준 높은 문제인 척 꾸미고는 하는데, 사실은 가장 기초적인 국가관의 문제”라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치욕스러운 역사로 보느냐 안 보느냐, 민족적 정통성을 북한에 두느냐 대한민국에 두느냐, 대한민국의 법통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며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을 두고 아직도 국가 자체의 기본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역사 퇴행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역사 논쟁으로 세월을 보낼 시기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코로나19 이후에 경제는 어떻게 살릴 것인지 비전을 제시하고 생산적인 논쟁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복지는 어떻게 할 것이며, 한반도 평화는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지 등을 이야기하기에도 부족한 시점”이라며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어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진보주의 정치학자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통화에서 “사회과학 측면에선 이 지사의 이야기가 맞는다”고 전제한 뒤 “대선 주자는 향후 강대국과 지혜로운 외교를 할 사람”이라며 “자극적인 표현이 학문적으로는 문제가 없겠지만, 대통령 후보로서는 신중해야 한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이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기에도 바쁜데 갑자기 왜 해방 시기의 이야기를 하고,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지금 서로 논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손우성·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