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가장 먼저” “더 멀리” “오직 화성”… 자존심 경쟁 치닫는 ‘우주 레이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전승훈 기자

■ 갑부들의 ‘스타워즈’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이달 11일 비행… 우주 경계선엔 도달 못해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 “더 높이 날아간다” 20일에 발사
머스크의 스페이스X, 9월 출격… 카르만 라인 넘는 프로젝트

1986년 1월 28일 고교 교사 출신의 샤론 크리스타 매컬리프(당시 37세)는 무중력 상태에서 원격 강의를 하겠다는 꿈을 품고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에 올랐다. 그는 민간인 출신으로 우주 비행사에 뽑힌 최초의 7인 중 1명이었다. 그러나 매컬리프를 태우고 미국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날아오른 챌린저호는 발사 후 단 73초 만에 폭발해 대서양 상공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미 우주과학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꼽히는 이 사고 이후 2003년에도 ‘컬럼비아호’가 귀환 도중 공중에서 폭발해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하자 나사(미 항공우주국)는 2011년 우주왕복선 사업을 끝내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1년 7월, 인류는 뼈아픈 실패를 딛고 또 한 번 우주 공간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엔 나사가 아닌 민간 기업들이, 실험이나 연구가 아닌 단지 관광을 목적으로 우주로 향하는 경계선을 뚫는다. 2000년대 초부터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우주 공간을 탐닉해 온 소위 ‘로켓맨’들의 과열 경쟁은 본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우주여행 계획이 속속 발표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립자가 지난 5일 비행 일정을 확정 지으면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꺾었다”는 평가를 받은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베이조스보다 먼저 우주에 나가겠다고 알린 것. 영국 스카이뉴스는 “20세기 우주 공간은 미국·소련 등 강대국들과 그들의 이념을 시험하는 장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세 갑부의 자존심을 건 경쟁의 장이 됐다”고 했다.

◇9일 시차 두고 떠나는 브랜슨·베이조스…우주 경계선까지만 비행=이들 중 가장 먼저 대기권 밖을 나서게 될 브랜슨 회장은 이번 ‘우주 레이스’에서 일견 먼저 1승을 거둔 듯하다. 특유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으로 여러 사업에서 성공을 거둬 온 영국의 혁신가 브랜슨은 70세의 나이로 우주여행에까지 도전해 ‘우주 관광을 다녀온 최초의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될 예정이다. 2004년 그가 민간 우주여행 기업 버진 갤럭틱을 설립한 지 17년 만이다. 브랜슨은 오는 11일 오전 9시(현지시간) 미 뉴멕시코주의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 발사장에서 버진 갤럭틱의 초음속 제트기인 ‘VSS 유니티’에 몸을 싣고 우주로 향하며, 2명의 조종사와 3명의 버진 갤럭틱 소속 우주 비행사들이 그와 동행할 예정이다. VSS 유니티는 ‘VMS 이브’라는 이름의 발사체에 실려 약 16㎞ 상공까지 날아간 뒤 분리돼 마하 3까지 속도를 높인 채로 약 91㎞ 위 우주 공간에 진입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약 6분간 무중력 상태를 느끼며 지구를 관찰한 후 역시 마하 3의 속도로 이륙 지점에 되돌아오는 여정이다. 총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브랜슨 회장은 버진 갤럭틱이 지난달 25일 미 연방항공국(FAA)으로부터 상업용 우주선에 유료 승객을 태우는 것을 허가하는 면허를 획득했다고 밝힌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트위터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우주에) 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고, 우주비행 경험을 적절히 시험해 볼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때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브랜슨의 비행 일정이 공개되자 앞다퉈 베이조스와의 경쟁 구도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브랜슨은 CNN 인터뷰에서 여행 시점이 맞물린 데 대해 “단지 놀랍고 경이로운 우연의 일치”라고 언급하며 확대 해석을 피했다.

의도가 어땠든 9일간의 시차를 두고 진행되는 두 사람의 비행은 비교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다. 뉴욕포스트는 “머스크와 베이조스, 브랜슨이 맞붙는 우주 경쟁의 주요 동력은 로켓 연료가 아니라 남보다 한발 앞서려는 ‘업맨십’(upmanship)”이라고 짚었다. 지난 5월 ‘아마존 언바운드: 제프 베이조스와 세계 제국의 건설’이라는 제목의 신간을 펴낸 블룸버그 기자 브래드 스톤은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기업가인 이들은 이기는 것에 익숙하다”면서 우주 관광 사업이 이들의 자아와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스페이스X의 역사를 자세히 다룬 책 ‘리프트오프’의 저자 에릭 버거는 “베이조스는 브랜슨을 자신과 머스크처럼 인류의 발전을 고민하지 않는, 단지 ‘버진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우주로 돈을 벌려 하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를 지불하고 5분간 우주 공간에 머무는 버진 갤럭틱의 우주 관광 상품 대기자 명단에는 이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리애나, 저스틴 비버, 케이티 페리, 케이트 윈즐릿 등 유명인들을 포함한 650명이 올라 있다.

무엇보다 브랜슨은 국제항공연맹(FAI)이 인정하고 있는 공식 우주 경계선인 ‘카르만 라인’, 즉 고도 100㎞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제로 우주에 가진 못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미 국방부는 FAI의 정의를 따르지만, 브랜슨은 고도 80㎞를 지구와 우주의 경계선으로 보는 미 공군과 나사의 시각을 따랐다.

반면 베이조스가 탑승할 블루 오리진의 유인 캡슐 ‘뉴 셰퍼드’는 카르만 라인 바로 위까지 비행할 예정이다. 밥 스미스 블루 오리진 CEO는 벌써 “카르만 라인 위를 날지 못하는 브랜슨의 경험은 (베이조스와) 매우 다른 차원”이라며 베이조스가 더 높이 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인류를 달에 착륙시킨 지 52주년이 되는 7월 20일에 텍사스에서 발사되는 뉴 셰퍼드에는 베이조스와 그의 남동생 마크, 1960년대 초 나사의 우주비행사 시험을 통과해 ‘머큐리 여성’이 됐던 82세의 월리 펑크, 2800만 달러(317억 원)를 내고 티켓을 낙찰받은 익명의 고객 등 4명이 탑승한다. 이들 역시 11분 동안 무중력 체험과 지구 관찰 등을 경험한 후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다.

◇‘화성 집착’ 머스크, 여행 계획 없어…9월 카르만 라인 넘는 프로젝트 준비 중=“2050년까지 100만 명을 이주시키겠다”며 화성에 집착해 온 머스크는 아직 직접 우주여행 계획을 밝힌 바가 없다. 그는 지난 4월 한 비영리단체와의 회담에서 “사업 초기엔 탑승자가 꽤 죽을 수 있다”면서 화성 여행은 지원자에 한해서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그가 세운 우주 기업 ‘스페이스X’는 100회 연속 로켓 발사 성공과 이에 기반한 궤도 위성망 ‘스타링크’ 구축 사업, 나사의 달 착륙선 사업자 선정 등 입지전적인 기록을 남기며 우주 공간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오는 9월 15일(예정) 결제처리업체 ‘시프트4페이먼트’의 창업자이자 CEO인 재러드 아이잭먼, 뼈암 생존자로 최연소 우주 여행자가 될 예정인 29세의 헤일리 아르세노 등 4명의 민간인을 우주선 ‘드래건’에 태워 우주로 보내는 ‘인스피레이션4’(Inspiration4)를 준비 중인데, 여기에 머스크는 동행하지 않는다.

스페이스X의 프로젝트는 카르만 라인보다 훨씬 멀리 날아가 3일이라는 더 오랜 시간 동안 머물 예정이라는 점에서 브랜슨과 베이조스보다 한발 더 나아간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