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김춘순 >“경륜·경마 등 여가가 도박 돼선 안돼…法안에서 즐기도록 울타리 될 것”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춘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위원장이 지난 8일 경기 과천정부청사에서 문화일보 취재진에게 사감위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김춘순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

韓국민 도박중독 유병률 5.3%… 선진국은 2% 안팎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재산 탕진·범죄 등 사전 예방
사행산업은 국가·지자체 재정 기여 긍정적 측면있어

코로나시대 온라인 발매따른 매출 총량 규제는 당연
전국 중·고교 ‘청소년 도박중독 예방교육’ 확대·운영

김춘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위원장은 ‘조 (兆)’ 단위 돈만 감독하는 자리를 거치고 있다. 30년 넘게 일한 국회에선 국회 예산정책처장 등 재정 업무만 10년 이상 맡으며 수백 조 단위 국가 예산의 타당성과 적정성을 분석·심의했고, 사감위원장으로 있으면서는 20조 안팎의 사행산업을 감독하는 일을 맡고 있다. 액수도 액수지만 그는 정권 교체기 등 주요 국면마다 국회에서 재정 업무를 맡으며 정치인·이익단체와 마주했고, 사감위에선 사행산업 관계자들을 상대하고 있다. 조 단위 돈만 계산했을 김 위원장의 보수는 ‘0’이다. 회의비 등 소정의 활동비와 차량 등이 제공되는 것 외에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돈은 없다. 카지노·경마·경륜·복권·스포츠토토 등 수조 원대 사업이 즐비한 사행산업 업계를 감독하는 위원회의 수장인 것을 고려하면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는 지난 8일 경기 과천정부청사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히려 “국회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회계연도별로 주요 이슈를 정리하고 여야 사이에 중립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힘들었다”며 “국회를 나와서 대학교수로, 그리고 무보수인 사감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오히려 보람을 느끼고 공무원 시절과 비교해 볼 때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비교적 자유롭다”고 말했다.

―국회에서의 생활이 힘드셨다고 했는데 공직을 떠나온 소감은.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통상 1∼2년 하는데 저는 4년 동안 했고 전문위원도 2년을 지냈다. 예산분석실장 2년과 예산정책처장 2년까지 합쳐 10년을 재정 분야에서만 일했다. 여야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중립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많아 힘들었다. 2019년 3월 공직에서 퇴임하고 동국대 석좌교수를 거쳐 순천향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특임부총장 업무까지 수행하고 있다. 교수 일을 하다 보면 용역, 자문, 평가업무 등으로 분주하지만, 사회에 봉사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 행복하다.”

―사감위원장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나.

“주무부처들이 사감위원 후보를 추천하는데, 거시재정과 체육·관광사업 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던 것이 사감위원으로 추천된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행산업 매출 총량을 결정할 때 거시재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감위원으로 봉직하던 중 사감위원장이 궐위됐는데, 위원 중에서 제가 운 좋게 위원장에 위촉됐다. 위원회 명칭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란 다소 낯설고 긴 이름이다 보니 덜 친근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비서실에 모부처 관계자에게 연락을 부탁했더니 내 소개를 ‘부총장님’으로 한 경우가 있었다. 위원회 이름이 길어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이다. ‘사행성감독위원회’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오류다. 사감위는 그 명칭에서 풍기는 느낌과는 다르게 사행산업이 법에서 정한 틀 내에서 건전하게 운영되도록 관리·감독하는 중요한 행정조직이다.”

―조 단위 돈을 감독하는 자리를 계속 맡는 것에 부담이 클 텐데.

“직접 돈을 만지는 자리는 아니지만 감독하는 자리에서는 항상 부담을 갖는다. 국회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심의하는 권한이 있는데, 재정 업무를 하다 보니 심의에 필요한 각종 보고서를 많이 썼다. 완벽을 기한다고 하지만 정당마다 입장이 다르고 당사자들이 있다 보니 보고서에 대한 관점도 다르기에 이를 조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감위는 매출 총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업계의 총량을 각각 규제한다. 특정 업계의 매출 총량을 규제하지 않으면 국민이 사행산업에 빠지고 총량이 끝없이 늘어날 수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 매출 총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업계와 관련 부처의 입장을 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한 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학교수로서의 활동이 행복하다고 했는데 이유가 있다면.

“강의와 연구 외에 대학원장과 부총장직도 수행해야 하기에 분주한 편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주말에도 줄곧 늦게까지 일하며 ‘책임’과 ‘성과’를 앞세우곤 했다. 30년 동안 그렇게 살았는데, 교수로 와보니 ‘자율’과 ‘봉사’의 의미가 더 커짐을 느낀다. 물론 교수생활도 책임과 성과가 중요한 가치이긴 하지만, 자율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사행산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이를 감독하는 곳에선 어떻게 보나.

“도박과 여가, 여가와 도박 사이 관계를 생각해 본다. 국민이 피곤할 때 게임도 하면서 여가를 즐기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그에 빠져서 재산을 탕진하고 중독되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도박은 중독과 연결돼 그 비용이 알코올 의존증보다 더 크다. 도박으로 가지 않도록 사감위가 만들어진 거다. 법에서 허락해 준 사행 행위 즉, 경륜·경마·복권 등을 ‘사행산업’이라고 하는데, 적정한 선에서 국민이 여가를 즐길 수 있게 일종의 울타리를 쳐주고 법에 따라 운영하도록 하는 게 사감위의 역할이다. 도박과 여가 사이 적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제다. 사감위가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도박 중독 유병률이 5.3% 정도다.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은 2% 안팎이다. 이나마 사감위가 출범하던 2008년 9.5% 선에서 줄어든 것이다.”

―사행산업이 정부 재정 측면에서 무시하지 못할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인데.

“도박중독으로 인한 개인·사회적 부담, 그리고 강력범죄와 연결되기도 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지만, 국민 여가활동과 국가·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재정 기여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의 사행산업은 국가가 제한적으로 허가하고 관리·감독하는 체제를 마련하고 있으며, 사감위는 사행산업 관리·감독의 최전선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사감위의 정책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진심 어린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을 바란다.”

―국회에서 재정 전문가로 통했는데, 국회에서 했던 일과 사행산업은 관련이 있나.

“여기 와서 일하다 보니 관련점이 많다. 사행산업 관련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큰 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종합 계획을 수립해 매출 총량을 정하고 분배하는 일이다. 거시경제와 국내총생산(GDP) 흐름을 보고 정하는 과정이다. 국회 경험을 통해 거시 재정에 대한 이해를 높인 것이 사감위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워낙 큰돈이 움직이다 보니 온라인 발매 등 사업 관계자들의 이해관계도 치열해 보인다.

“코로나19 시대에 사행산업에 대한 온라인 발매 규제가 과제다. 경륜·경정의 경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온라인 발매를 허용했지만, 경마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온라인 발매의 허용은 사행성을 키운다는 우려를 불러온다. 따라서 온라인 발매에 따른 매출 총량의 규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를 오히려 사행산업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행산업자별 매출규모에 차이가 발생한 부분이 있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 경마·카지노 매출은 크게 줄었지만, 복권과 스포츠토토 매출은 늘었다. 인터넷 불법 도박도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불법 도박에 대한 단속과 규제는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다.”

―청소년 도박 문제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청소년 도박은 인터넷 불법 도박과도 연계돼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사감위는 청소년들에게 도박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전국 17개 시·도 및 교육청과 함께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교육 조례’를 제정해 협력·지원하고 있으며, 교육부·여성가족부 등 각 부처와 연계해 전국 중·고등학교에서 도박중독 예방교육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관련 교사 대상 연수 등을 확대·운영하고 있다.”

―향후 사감위에서 추진할 중점과제가 있다면.

“앞으로 사행산업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등으로 비대면 사회·경제적 활동이 확대될 것이며, 이로 인해 도박중독·자살 등의 사회적 폐해 또한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사행산업 건전화를 통한 건강사회 구현’이라는 정책목표 실현을 위해 사행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불법도박 등으로 인한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더 강력한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국회를 나온 지 2년이 됐는데 국회와 국가 예산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지.

“예산과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로 ‘지속가능’이란 용어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이란 주제는 유엔에서부터 이야기해 온 것이고 국제적인 이슈라는 것은 모두 다 안다. 지속가능발전법에 보면 ‘지속가능성’을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사회·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低下)시키지 아니하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책과 예산 또한 지속가능에 맞는지를 염두에 두고 가야 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재정지출 규모와 방향이 적정한 것인지 지속가능의 잣대를 옆에 두고 재보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