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식물학자의 노트’를 쓴 신혜우 작가가 지난 20일 서울 노원구 자택 앞에서 개망초를 들고 이 식물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문화일보·예스24 -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 기쁨’
2차 공모 책 ‘식물학자의 노트’ 저자 신혜우
“먹이피라미드 맨아래 지키며
충실한 ‘지구의 생산자’ 역할
동물 등 어떤 種보다도 강해
화분에 식물 가둔채 즐기는 건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식 아냐
인간중심주의에 반성 있어야”
“식물을 그저 ‘치유’와 ‘힐링’의 대상으로만 소비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도, 들판의 강아지풀도 동등한 하나의 종(種)이니까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신혜우는 ‘식물학자의 노트’(김영사)를 쓰는 동안 줄곧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생각했다고 한다. 동물에 대한 인식은 눈에 띄게 개선됐으나 식물을 보는 관점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안타까웠다. 그는 “식물을 화분에 가둔 채 베란다에 두고 즐기는 건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은 장(章)마다 8~9쪽에 걸쳐 개별 식물의 특성과 생존방식을 설명한 뒤 인간 삶에 대한 성찰을 짧게 덧붙이는 구성으로 이어졌다.
신혜우는 문화일보와 예스24가 공동 기획한 ‘국민 서평 프로젝트-읽고 쓰는 기쁨’의 서평 대상 도서인 이 책에 수록된 일러스트도 직접 그렸다. 식물분류학 박사인 그는 학창 시절부터 학술용 식물 도해도에 관심을 보이며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로 경력을 시작했다. 세계적 권위의 영국 왕립원예협회 보태니컬 아트국제전시회에서 세 차례나 금메달을 따며 이름을 알린 덕분에 요즘은 ‘글’ 못지않게 ‘그림’ 마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만난 그는 “한 식물을 그리려면 문헌 조사부터 관찰까지 최소 1년 이상 필요하다”며 “식물 그리기는 식물의 입장에서 식물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식물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일이기도 해요. 일러스트 작업을 하다 보면 강아지풀, 금강아지풀, 가을강아지풀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돼요. 그런데 겉모습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다 같은 강아지풀이지’라고 하면 식물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웃음)” 이런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예를 들어 흔히 울창한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 향을 이로운 물질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피톤치드는 ‘식물을(phyto) 죽이는(cide)’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나무 아래에서 다른 큰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소나무에서 나온 피톤치드라는 화학물질이 다른 생명의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에요. 삼림욕을 즐기며 ‘향기가 좋다’고 감탄하는 건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입니다. 반대로 ‘시체꽃’처럼 우리에겐 부패한 냄새를 풍기지만 다른 식물과 곤충한테는 향기로운 꽃인 경우도 있고요.”
책은 식물의 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의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서식지를 벗어나 다른 땅에 정착한 ‘귀화식물’을 설명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신혜우는 “주변에서 쉽게 보는 토끼풀, 달맞이꽃, 코스모스 등은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들어온 외래종”이라며 “물자 교역과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상황 속에서 역사의 격랑을 헤쳐온 이들 식물은 갑작스레 바뀐 환경에 맞게 자신을 변형시키며 번식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이처럼 식물의 눈으로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고자 노력한 작가는 “뇌도, 마음도 없이 생존하는 식물이야말로 인간보다 더 진화한 존재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감정의 동물인 인간은 늘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리잖아요. 하지만 식물은 어떤 ‘마음의 동요’도 없이 먹이 피라미드의 맨 아랫부분을 지키며 ‘지구의 생산자’ 역할을 할 뿐이죠. 효율적으로 생존하고, 개체를 늘려가는 식물이 다른 어떤 종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작가는 최근 독자로부터 들은 감상평이 서평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힌트’가 될 거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 매일 밤 한 챕터씩 읽고 평온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하더군요. 대화하듯 알기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정보량이 많고 내용도 전문적이라 한달음에 읽긴 쉽지 않아요. 마음을 훔친 두세 가지 이야기만 골라 자기 생각을 풀어낸다면 훌륭한 서평을 쓸 수 있을 거예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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