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새들은 이유가 분명할 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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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새벽마다 ‘호로롱’ 우는 호반새
잠 깬 뒤엔 꾀꼬리 울음 뒤이어

구애·과시…상황 따라 다른 소리
넋 놓고 듣게 되는 한가한 울음도

스텔스기처럼 비행하는 파랑새
남의 집 빼앗으려는 ‘전투 울음’

호반새는 새벽 4시 반쯤 호로롱호로롱 운다. 집 가까이에 있는 뒷산에 500년쯤 된 당산나무에서 운다. 그 당산나무 수종은 느티나무다. 호반새가 당산나무에서 우는지, 그 부근에 있는 밤나무 숲에서 우는지 정확하지 않다. 언젠가 호반새가 당산나무에 앉아 우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다.

호반새는 우리 마을에 두 마리가 사는 것 같다. 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어떤 때는 강 건너에서 한 마리가 울고, 마을 쪽에서 한 마리가 우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그렇게 나 혼자 생각할 뿐이다. 호반새는 꾀꼬리만 하다. 황토색에 가깝다.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내 생에 호반새의 전신을 두 번 보았다. 나는 호반새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새벽을 시작한다.

호반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눕는다. 그때쯤 꾀꼬리가 운다. 꾀꼬리는 철새다. 샛노란 색이다. 크기는 호반새와 비슷하다. 동네 사람들은 꾀꼬리가 울면 참깨를 심고, 보리타작 하는 도리깨소리를 듣고 토란이 난다고 한다. 내가 사는 전북 임실군 덕치면 꾀꼬리는 이렇게 운다.

“덕치 조 서방, 삼 년 묵은(먹은) 술값 내놔!”

덕치면에 조 서방이란 사람이 살았단다. 그 조 서방이 어느 술집에서 3년이나 술을 외상으로 먹다가 다른 술집이 생기니, 그 집으로 술을 마시러 가버렸단다. 그간 정든 그 술집 주인이 배신감에 못 이겨, 어떻게 되어 버린 모양이다. 그렇게 죽은 그 술집 여인의 혼이 소쩍새가 되었단다. 그래서 지금도 덕치면 꾀꼬리는 술값을 갚으라고 그렇게 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꾀꼬리는 그렇게만 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아니 듣기로 꾀꼬리가 우는 소리는 한 서너 가지쯤 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짝을 구할 때 앞산 뒷산에서 울음을 주고받으며 우는 소리, 사랑하는 한 마리를 가까이 두고 서너 마리가 모여 자기를 과시하며 우는 소리, 사랑을 이루고는 안심하고 우는 소리, 둥지에 위험이 닥쳤을 때 우는 소리, 특히 새끼를 기를 때 다른 새들의 접근을 막으며 사납게 우는 소리, 한가하게 나무 위에 앉아 마을 사람들을 위해 울어주는 소리들이 있다.

나는 마을을 위해 울어주는 한가한 꾀꼬리의 소리를 안다. 그 울음소리는 평화로워서 무슨 일을 하다가 일손을 놓고 꾀꼬리가 우는 그곳을 바라보게 한다. 7월을 넘기는 지금이 그때다. 꾀꼬리 사진을 찍으려고 애를 쓰지만, 꾀꼬리는 자기를 잘 보여주지 않아 나를 애태운다. 꾀꼬리에게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꾀꼬리는 나를 아는 것 같다. 아니 그것은 분명하다. 꾀꼬리가 자주 날아와 우는 곳은 이환이 어른댁 뒤꼍의 오래된 그 당산나무다. 꾀꼬리는 이환이 어른 부부가 마당에서 무슨 일을 할 때 낭랑하게 울다가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순식간에 울음을 멈춰 버리는 것이다. 강 건너 길을 걸을 때 어딘가에서 새끼를 품고 있던 꾀꼬리가 강하게 울며 내 쪽으로 날아들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런 모습을 찍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그들을 방해하며 사진을 찍기는 미안하고 또 그러면 안 되니까, 알을 품고 있거나, 새끼를 기를 때는 그 부근에 가지 않는다.

꾀꼬리와 나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썼다. 약간 늦은 봄, 우리 마을로 파랑새가 온다. 파랑새는 정말 짙은 파랑이다. 파랑새가 마을로 날아오면 마을이 온종일 시끄럽다. 파랑새가 마을을 찾아와 우는 곳도 꾀꼬리가 우는 곳이나, 호반새가 우는 마을 뒷산 그 당산나무다. 꾀꼬리나 호반새는 자기 몸을 잘 보여주지 않는데, 파랑새는 나무 꼭대기에 앉기를 좋아한다. 파랑새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자유자재로 잽싸게 날면서 크게 운다. 파랑새는 우리나라에 와서 집을 짓고 알을 낳아 품고 새끼를 기를 시간이 짧아서 남의 집을 빼앗는다. 그래서 마을 뒷산 당산나무에 앉아 자기가 뺏을 까치집을 물색하고 까치들을 제압하기 위해 그렇게 사납게 울며 마을의 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다. 지난해도 올해도 파랑새는 마을 앞 강 언덕에 있는 까치집을 빼앗아 그곳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고 있는 모양이다. 알을 품고 있을 때 파랑새는 조금 얌전하게 전깃줄에도 앉고, 뒷산 당산나무 죽은 가지에서 제법 품위 있게 앉아 있다가 얌전하게 날기도 한다.

그 밖에도 많은 새가 운다. 나와 1년 내내 가까이 지내는 참새, 이따금 우리 집 창틀에 앉아 우리 집 고양이를 애태우는 딱새, 1년 내내 마을을 시끄럽게 떠들며 날아다니는 물까치, 가끔 날아와 까만 점처럼 사라지는 굴뚝새, 참깨와 콩을 심어놓으면 귀신같이 알고 땅에서 콩을 빼 먹는 비둘기, 깊은 산 속의 쑥국새(뻐꾸기), 밤이면 나의 애간장을 녹이며 우는 소쩍새, 강변 풀숲에서 떼로 살며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도 털지 않고 풀숲에 날아드는 뱁새, 뱁새는 콩같이 작다고 해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콩새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새의 정식 학명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어느새 원고 분량이 다 찼나 보다. 새들이 우는 사연은 저마다 다 다를 것이다. 다만 그들은 다 근거와 이유가 분명할 때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