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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논단 게재 일자 : 2021년 07월 30일(金)
힘의 오만 경고한 풀브라이트의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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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마음을 사야 한다. 힘만으론 안 된다. 당연한 말이나 쉽진 않다. 특히, 정부의 정책이나 사업이 하향식 힘이 아니라 상향식 공감으로 장기적 성과를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러 국가를 가로지르는 대외 정책이나 국제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힘을 바탕으로 반짝 꽃피다가 두루 마음을 얻지 못해 흐지부지 사라지는 경향이 대세다. 그래도 다행히 예외가 있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와 장학생을 교환하는 정책 사업인 풀브라이트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오는 8월 1일은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풀브라이트 법안을 승인한 지 75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렇게 긴 기간, 이 교육사업을 통해 미국과 각국은 순수한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혈로를 뚫을 수 있었다. 긍정적 효과는 외교·문화·사회 분야로 파급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눈부신 범세계적 문명 발전을 이루는 데도 일조했다. 그리 요란하지 않고 당장은 별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인적 교류사업이 장기간에 걸쳐 탄탄한 토대를 다져준 것이다. 한·미 관계도 군사동맹과 경제 협력을 넘어 긴밀한 가치 공동체로 승화되는 과정에서 이 사업의 낙수효과를 톡톡히 봤다. 양국 장학생 출신 인사들의 역할이 컸고, 양국 간 공공외교의 표상으로서 이 사업의 상징성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풀브라이트 사업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지속성을 쭉 견지해 왔다 △최고의 영예를 의도적으로 부여했다 △정파성이나 이념성을 배격한다 △국가 이익보다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 등. 그러나 핵심 비결은 사업의 호혜적·수평적·자발적·분산적 운영 방식에 있다. 이런 방식이 수혜자와 양국 정부 관계자는 물론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는 데 크게 공헌했다. 여타 정책 사업이 주로 하향식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런 장점은 이 사업을 입법화해 뿌리내리게 한 풀브라이트(1905∼1995) 미 상원의원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철학은 그의 책 제목인 ‘힘의 오만’(1967)만 봐도 알 수 있다. 강자는 자기가 세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심리적 욕구, 즉 오만함에 빠지기 쉬우니 끊임없이 견제받아야 하고, 힘보다 법과 규범을 통해 평화와 협력을 향한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자는 국가뿐 아니라 정권·정당·집단·사람 등이 해당한다. 이런 철학을 지닌 풀브라이트는 매카시즘에 용감하게 맞섰고, 상원 대외관계 위원장직에 앉아서는 힘 일변도의 개입주의 정책들, 특히 베트남전 확전을 반대했다. 풀브라이트 사업이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힘의 오만을 경고한 통찰력이 반영된 덕이다.

풀브라이트 사업의 잔잔하나 지속적인 성과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밀어붙이기식 정책은 단기에 가시적 효과를 내나 오래가기 힘들다. 반면, 마음을 움직이는 정책은 효과를 금방 내지 못하더라도 오래가며 두텁고 근원적인 성과를 낸다. 정말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요란하게 반향을 일으키기보다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효과를 쌓는다. 국내외적으로, 독선·강제·강행·대립·교착이 일상화한 오늘날 모든 강자, 특히 권력을 쥔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모두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이 국정 운영에 깃들어야 한다. 힘만으론 안 된다. 풀브라이트 의원의 통찰력은 오늘을 위한 예지로 주목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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