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 음악동네>불멸의 노래 만든 사랑의 힘…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당신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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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되어’

음악동네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1991)에선 베토벤이 자신의 가곡(‘Ich Liebe Dich’)으로 친히 문을 열어준다. 독일어로 ‘이히 리베 디히’가 ‘난 널 사랑해’란 뜻이라는 것도 덤으로 알려준다. 모차르트도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이십일 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주며/ 아침햇살 눈부심에 나를 깨워줄/ 그런 연인이 내게 있으면’(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중·1994).

심지어 바흐가 등장하는 노래도 있다. ‘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먼지가 되어’ 중). 사실 오랫동안 ‘바하’로 존재했지만 외래어표기법 때문에 개명(?)을 한 ‘음악의 아버지’시다. 베토벤은 바흐를 가리켜 ‘Bach(실개천)가 아니라 Meer(바다)라고 불려야 한다’며 존경심을 표한 적도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음악은 기억을 꽃피우고 마침내 소리로 돌아온다. ‘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 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먼지가 되어’ 중). 그러니 간밤에 노래를 만들어놓고 새벽에 노래가 바람과 강물에 떠내려갔다고 지레 한숨 쉴 필요는 없다. 노래에는 날개가 있다. 하이네가 지은 시에 멘델스존이 곡을 붙인 ‘노래의 날개 위에(Auf Flugeln des Gesanges)’가 유명하지만 한국에선 1973년에 윤지영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을 발표한 적도 있다.

‘먼지가 되어’는 처음부터 먼지가 아니었다. 명동 쉘부르에서 노래하던 스무 살 청년 이대헌(KBS 2TV ‘이하나의 페퍼민트’ 진행자였던 이하나 부친)은 어느 날 친구 송문상에게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송문상은 다음 날 ‘바하의 선율에 젖은’ 가사를 지어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사를 쓰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단다. 명곡의 탄생은 이런 것이다. 이 노래의 나이는 올해 45세다. 오래된 영감으로 누군가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원곡 가수는 ‘이상의 날개’로 데뷔한 이미키였다. 본명은 이소연인데 디즈니 캐릭터를 닮아서 별명이 예명이 됐단다. ‘젊은이여 이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 보자’로 시작하는 이 건전가요는 한때 스포츠화 광고음악으로도 쓰였다. 이 노래의 작사·작곡자가 바로 남편 송문상이다. ‘먼지가 되어’는 이미키의 2집(1987)에 실림으로써 비로소 음악시장에 합류한다. 노래가 악보가 되고 음반에 실리는 데 꼭 11년이 걸린 셈이다. 그 후 이윤수가 1991년, 김광석이 1996년에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2002년에는 작곡자인 이대헌이 직접 취입했다. 2012년 ‘슈퍼스타K4’(Mnet)에서 로이킴과 정준영이 듀엣으로 불러 화제를 모았는데 가수로서의 끝이 좋지 않았다. 결국 노래는 돌고 돌아서 이미키가 데뷔 32주년(2018)에 낸 기념음반에 다시 실렸다.

인생은 짧지만 일생은 길다. 쌓이는 게 인생의 먼지 같지만 실은 일생의 추억이기도 하다.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리네’(‘먼지가 되어’ 중). 사랑이란 이름으로 100편의 시를 써도 그를 움직이지 못하면 시는 부러진 날개에 불과하다. 먼지가 되어서라도 당신 곁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먼지가 되어’ 중).

세상엔 듣는 노래도 있고 보는 노래도 있지만 결국 최고는 부르는 노래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건 ‘칵테일 사랑’이건 명곡을 탄생시키는 건 사랑의 힘이다. TV에 안 보이면 사라지는 것 같아도 좋은 음악은 날개가 되어 먼지가 되어 오늘도 우리와 동거한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