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 >최재형, 유연한 원칙주의자… 소신으로 설득해 끌고 나가는 ‘탈권위 리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정치 입문 후에도 다른 후보에 대한 인격적 비난, 세력 과시를 피하는 ‘탈(脫)여의도’ 문법을 구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감사원장 취임 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최 전 원장. 연합뉴스

■ ‘4일 대선출마 선언’ 앞둔 최재형 前 감사원장

- 소신있는 원칙주의
2019년 월성원전 1호기 감사
文정부와 대립 우려 있음에도
내부에 ‘성역 없는 감사’ 강조

- 좌고우면 없는 추진력
사퇴 9일 만에 정치 참여 선언
17일 만에 국민의힘 전격 입당
‘전언 정치’尹과 대조적인 행보

- 따뜻한 탈권위 리더십
필리핀 등 해외 선교봉사활동
한번도 잠자리 불평 안내비쳐
사법연수원 제자 시위도 동참

“돌격대장은 아니다. 그러나 단단한 소신과 원칙으로 타인을 설득해 끌고 나갈 수 있는 탈권위적 리더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10여 년간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왔다는 한 지인은 최 전 원장의 리더십을 이렇게 평가했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직을 떠나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부터 ‘아들 둘 입양’ ‘빈곤국 봉사’ 등 여의도에 미담이 파다한 잠재적 대권 주자였다. 최 전 원장과 인연이 닿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꼬리표처럼 “제2의 이회창이 되는 게 아니냐” “따뜻한 엘리트가 정치에 뛰어들 수 있겠냐”란 우려도 따라붙었다. 최근 최 전 원장의 행보는 이런 정치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그는 감사원장직을 내려놓은 후 속전속결로 국민의힘에 입당, 합리적 보수인 김영우 전 의원·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을 영입해 캠프를 구성하는 등 지지율 상승세 속에 순항하고 있다.

◇소신 있는 원칙주의자=최 전 감사원장이 대중에게 처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월성원전 1호기 감사’ 때다. 2019년 10월 국회가 감사원에 월성원전 1호기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면서 감사원 직원들이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수집하게 됐는데, 당시 산업부 직원이 컴퓨터 내 관련 자료를 미리 삭제하는 등 감사에 대한 저항이 심했다. 최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 상황에서도 “외부압력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며 감사원 내부에 성역 없는 감사에 대한 원칙을 강조했다. 최 전 원장이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현 검찰총장)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라는 청와대 요구를 두 차례나 거부한 사실도 유명하다. 최 전 원장은 김 총장이 여권과 교감이 있는 인사란 생각에 직무상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감사위원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당시 최 전 원장이 헌법상 책무를 지켜야 한다는 강한 소신과 원칙을 보여주면서, 일약 대권 주자 후보군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부부가 지난 7월 17일 부산 해운대구 석대사거리 동천교 인근에서 환경미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심 서면 좌고우면 없는 추진력=최 전 원장은 감사원장직에서 중도 사퇴한 지 9일 만에 정치 참여 의지를 밝혔다. 국민의힘 입당은 사퇴 17일 만에 이뤄졌다. 여권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최 전 원장 측은 “무너진 국정 운영시스템을 헌법 가치에 맞게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입당을 오랜 기간 망설여왔고,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전해 ‘전언 정치’라는 비판이 나오던 때라 최 전 원장의 속전속결 행보가 더 주목받았던 것. 최 전 원장의 지인인 한 법조계 인사는 “감사원장 시절에도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최 전 원장은 월성원전 1호기 감사 당시 “조기폐쇄가 대통령 공약이었기 때문에 이는 국민적 합의”라는 여권의 주장 속에서도 며칠에 걸쳐 감사위원들과 회의, 결국 전원 동의하에 결론을 도출해냈다. 전원이 동의하지 않은 비핵심적인 부분은 결론에서 제외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반드시 지키고자 한 핵심 결론은 관철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의 정치 지향=최 전 원장은 세(勢)과시, 타 대선후보에 대한 인격적 비난 등 ‘구태 정치’는 피하고 싶다는 의견을 캠프 관계자들에게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원장 캠프를 돕고 있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다른 후보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날을 세울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는데도, 누구를 비방함으로써 자신이 돋보이는 정치는 하고 싶어 하시지 않더라”며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최 전 원장의 그런 순수한 면에 반해 돕기를 결심한 만큼 그분의 의지를 따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 전 원장은 캠프가 국민의힘 내 지지의원 명단을 공개해 의원들 사이에 위화감, 계파 갈등을 조성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지침을 내부적으로 내렸다. 또 윤 전 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쥴리의 남자들’ 벽화에 대해 “저질 비방이자 정치폭력이며,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인격 살인”이라며 “우리나라 정치의 품격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앞장서 비판했다.

◇따뜻한 탈권위형 리더=최 전 원장이 다니는 신촌교회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했다는 한 교인은 “필리핀 선교 등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때도 많았는데, 단 한 번도 잠자리나 샤워시설 등에 대해 불편함을 내비친 적이 없다”며 “언제나 함께 간 청년들을 격의 없이 대해 줘 ‘권위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이 사법연수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연수원에 다닌 한 변호사도 지인에게 보낸 글에서 “특별하기는커녕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고, 웃음이 아주 천진난만하다”며 사법연수원 제자가 탈북자 북송 반대시위에 앞장서자 퇴근 후 늦은 밤에 들러 함께 시위에 참여한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모범생 이미지’에 대한 우려=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이라는 최 전 원장 특유의 모범생 이미지는 강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기도 하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두루 흠잡을 데가 없다는 건 딱 하나 떠오르는 인상이 없다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며 “아직 대중에게 노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인지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최 전 원장 캠프와 교류하고 있는 한 정치권 인사는 “윤 전 총장이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 조급해 무리수를 두기보다 현재의 이미지를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명확한 국가운영 비전으로 국민에게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