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외교안보 무기 된 반도체…美· 유럽 등 ‘자국내 생산거점 확보’ 사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반도체 수급 대란을 계기로 각국의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한 주도권 경쟁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한 직원이 반도체 설계도에 새겨진 회로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파운드리’ 패권경쟁 치열

파운드리 업체, 개발·설계 않고 위탁생산 주력… 설계만 하는 팹리스 회사가 대부분인 美는 리스크 커
전세계 수급대란에 기업 넘어 외교안보 이슈로 확전…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2025년 1000억달러 전망

‘반도체 수급 대란’ 사태를 계기로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주요국 간 패권경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각국이 4차 산업혁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생산거점 확보에 속속 나서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을 중심으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업체는 크게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종합반도체기업) △팹리스(Fabless) △파운드리로 분류된다. 먼저 IDM은 반도체의 개발부터 설계, 생산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하는 업체를 뜻한다. 대표적인 업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인텔 등을 들 수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팹리스는 반도체의 개발 및 설계만 전담하고, 생산은 파운드리에 맡기는 업체다. 대표적인 업체로 퀄컴, 엔비디아, 아마존 등이 있다. 팹리스 업체 중에는 기술력은 있으나 대규모 생산 공장을 운영할 정도의 자본이나 인력을 보유하지 못한 소규모 기업도 상당수 존재한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위탁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개발 및 설계를 하지 않는 대신 타사에서 개발한 반도체의 설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에만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생산된 반도체는 생산을 의뢰한 고객사의 이름으로 팔린다. 대만의 TSMC가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이며, 삼성전자는 현재 IDM과 파운드리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초창기에는 IDM이 대세였다. 당시에는 정보·기술(IT) 제품 종류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정도 상대적으로 단순했던 만큼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내재화한 기업(IDM)을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이 굴러갔던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IT 제품 종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공정도 극도로 미세화하면서 대규모 설비 투자 비용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업체 형태도 팹리스, 파운드리, 후공정 등으로 분업화하는 양상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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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특히 세계적인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인해 파운드리 업체의 역할이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심지어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촉발된 공급 부족 사태가 전자장비와 IT 기기, 가전 등 글로벌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공급망 확보 경쟁이 기업을 넘어 국가 간 외교·안보 이슈로 확전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파운드리 시장이 주목받는 대표적 이유는 지정학적 원인 때문”이라며 “중국 견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미국의 경우 설계만 주로 담당하는 팹리스 업체가 중심인데 생산은 대부분 아시아권 업체에 위탁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것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인텔은 지난 3월 파운드리 진출을 골자로 한 ‘IDM 2.0’ 비전을 발표했다. 당시 인텔은 200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입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두 개의 신규 공장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파운드리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향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 내 반도체 생산거점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박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율형 전기자동차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며 “이때 가장 중요한 게 역시 반도체인데 최근 미국이나 유럽 등이 코로나19 여파로 반도체 부족 현상을 한 차례 경험한 만큼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체 파운드리 능력을 계속해서 확보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글로벌 시장에서 파운드리 생산시설에 투자할 여력을 가진 기업은 삼성과 TSMC가 거의 유일한 상황”이라며 “각국이 자국 기업을 통해 생산거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두 기업에 대한 투자 압박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738억 달러(85조 원)로 지난해 681억 달러(78조 원) 대비 약 8.4% 증가가 점쳐지고 있다. 이어 오는 2022년에는 805억 달러(93조 원), 2023년 873억 달러(100조 원), 2024년 944억 달러(109조 원)로 예상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가 예상되고 있다. 업계는 오는 2025년까지 파운드리 시장이 1000억 달러(114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장병철 기자 jjangbe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