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코노미>달러 vs 위안…‘디지털’로 옮겨붙은 ‘美·中 통화패권 전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전승훈 기자

■ 앞서가는 中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때
디지털 위안화 시범도입 선언
런민銀, 선전·청두 등서 테스트
국제무역·결제 적극 활용 의지

■ 추격하는 美
1년새 입장바꿔 도입논의 시작
파월 “내달초 CBDC 보고서”
‘미래 통화’ 주도권 사수 의지
달러 영향력덕 中 추격 가능성

베이징 = 박준우 특파원

최근 몇 년간 계속 세계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정부 주도 디지털 화폐(CBDC) 분야에서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해왔던 중국이 최근 시범 시행에 나서며 이 분야에 대한 본격 개척에 나서자 미국도 이를 본격적으로 검토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양국의 CBDC 개발에는 그 효용성과 필요성보다도 향후 세계 금융시장 패권을 둘러싼 우월적 지위 선점을 위한 전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양측의 본격적인 개발 속에 다른 국가들도 일제히 관련사안 검토 및 개발에 나서고 있다.

◇CBDC 개발 앞서가는 中, 추격하는 美 = CBDC 개발 및 상용화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오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올해 초 광둥(廣東)성 선전(深) 시민 5만 명에게 각각 200위안(약 3만4000원)씩, 총 1000만 위안(약 17억 원)의 법정 디지털 화폐를 추첨을 통해 뿌리는 등 ‘베타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다. 런민은행은 선전을 시작으로 슝안(雄安), 쑤저우(蘇州), 청두(成都) 등지에서 CBDC의 시범 사용을 진행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블록체인 기술 기반 디지털 결제가 일상화된 만큼, CBDC 사용에도 큰 거부감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CBDC는 실물 현금 중 일부를 대체하는 것으로 우선은 소액 현금 거래 일부를 대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미국은 최근에서야 CBDC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 7월 15일 “오는 9월 초 CBDC 연구보고서를 발행할 예정”이라며 “이는 디지털 달러 발행 진전을 위한 핵심 단계”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먼저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개발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서 다소 바뀐 셈이다. 현재 Fed는 매사추세츠공대(MIT)와 관련 사안을 공동 연구 중이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CBDC 개발에 늦었던 것은 중국과 달리 달러화 통용이 국제적으로도 안정적이고, 여전히 CBDC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5일 크리스토퍼 왈러 Fed 이사는 “CBDC가 미국의 지급제도에 직면해 있는 주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미국 가구의 1%에 달하는 미국 은행가들 중 극히 일부만이 CBDC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킴 쇤홀츠 미국 뉴욕대 경영대 교수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지금 CBDC 개발의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CBDC 개발이 아니더라도 이룰 수 있는 목표”라며 “오히려 CBDC가 재정 안정과 개인 사생활을 위협하며 금융 신용에서의 국가 개입을 증대시킨다”고 지적했다.

◇세계 금융 패권에 도전하는 中, 방어하는 美 = 미국이 방침을 바꿔 CBDC 개발에 나선 것은 미래 주도권을 중국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중국은 대내적으로는 예산 집행의 효율성과 투명성 강화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위안화’를 해외에 유통해 달러화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려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런민은행도 향후 국제 무역과 결제 업무에서 법정 디지털 화폐 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위안화 국제화를 촉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특히 중국은 미·중 갈등이 격화하자 위안화 국제화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팡싱하이(方星海) 증권감독위원회 부주석(차관)은 지난 6월 공개 포럼에서 “위안화 국제화는 향후 외부 금융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리 계획을 마련해야 하고, 우회할 수 없는 과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이야 그 영향력과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향후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권역 내에서 디지털 위안화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충칭(重慶) 시장을 지낸 황치판(黃奇帆)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은 지난 6월 “일대일로 관련국과의 위안화 스와프, 청산결제 시스템 구축을 바탕으로 이들 국가와의 무역·투자 추진 시 가능한 한 위안화로 가격 책정 및 지불·정산 등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위안화 국제화를 더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중국 관광객이 많이 가는 지역의 상점마다 알리페이나 유니온페이 결제 시스템이 깔렸듯이 향후 중국인이 많이 가는 곳마다 법정 디지털 위안 결제 시스템이 널리 보급될 가능성도 크다.

이 때문에 미국도 디지털 화폐 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지난 6월 더 와이어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가상화폐를 막 내놓았다”며 “당신은 지금 당장 뜨거운 전쟁(hot war)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달러의 영향력을 감안했을 때 중국이 앞서 있는 만큼의 격차를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투기자산으로 지나치게 과열됐다는 평가를 받는 개별 가상화폐들이 난무하면서 공신력 있는 디지털 화폐의 개발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명분이 되고 있다.

◇미·중 따라 각국도 CBDC 개발 추진 중 = 이들 국가 외에도 이미 유럽과 일본 등은 물론 개발도상국들도 저마다의 CBDC 개발에 나서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7월 14일 “디지털 시대에 시민들과 기업들이 가장 안전한 형태의 통화인 중앙은행 통화에 계속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디지털 유로화 발행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CB는 디지털 유로화 설계를 위한 2년간의 조사작업에 착수한다.

미국 애틀랜틱 카운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81개국이 CBDC에 관심을 갖고 있다. 바하마 등 5개국은 실제 상용화됐고, 중국·한국·스웨덴 등 14개국은 시범 운영을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과 캐나다, 러시아 등은 관련 모델을 개발 중이며, 미국·인도 등 32개국은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가, 개발도상국들은 예산 집행의 투명성 강화 및 자국 화폐에 대한 신용도 개선이 그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