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지식카페>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들’…개인의 자유가 무기가 될 때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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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⑥ 코로나와의 전쟁… 규제와 자유

명령따라 움직인 페르시아군
자유민인 아테네인들에 패해

충분한 합의통한 참여 없다면
통제만으로 실효거둘 수 없어

가히 전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감염에 대응하는 방역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전쟁처럼 보인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이나 심각성은 충분히 입증된 것 같진 않지만, 그 엄청난 감염률만큼은 ‘좀비영화’처럼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는 쉽게 완화되지 않고, 일부 국가는 봉쇄령이라는 극단 조치까지 취한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자유를 구속당하고, 많은 사람은 생계에 위협까지 느낀다. 저항이 없을 수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 한강공원 운동기구에 이용을 제한하는 테이핑이 돼 있다. 코로나19로 강력한 방역조치가 이어지면서 ‘공동체를 위한 규제’와 ‘시민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도 확산하고 있다. 뉴시스

겨울마다 감기에 걸리고 1년 내내 계절에 따라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게 우리의 일상인데,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과장하면서 방역을 이유로 규제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잦아들지 않는다. 시민들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속셈이 깔린 것 같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전쟁에서든 승리하려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필요하고, 소속원은 그에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현 상황에서도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을 이겨내려면 강력한 지도력과 통제가 필요하다.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구성원 모두 희생을 감수하며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무작정 강요할 수는 없다. 현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규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한 입증과 공감이 필요하며, 규제에 따른 희생에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리라는 믿음도 있어야 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도 있는 마당에 강압적인 통제가 실효성을 거두리라고 믿는 것은 무모하다. 무턱대고 밀어붙인다면, 사회적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죽음 아니면 자유를 달라’는 외침은 그 어디에서도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는 페르시아 대국의 엄청난 군사적 공격을 받았다. 적군의 원정로에 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에 굴복했다. 두 번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도시국가는 아테네였다. 첫 번째는 마라톤에서, 두 번째는 살라미스에서 아테네인들은 스스로도 믿기 힘든 승리를 일궈내며 단숨에 그리스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테네의 시인 아이스킬로스도 두 번의 전쟁에 모두 참전해 그 감격적인 승리를 맛보았고, 그 경험은 죽는 순간까지 그의 자부심이 됐다. ‘나의 묘비에 내가 마라톤의 전사였음을 새겨다오’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군사력에서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그리스가, 아테네가 승리를 거둔 비결을 ‘페르시아인들’이라는 작품에 담아 무대에 올렸다.

승리를 확신하던 페르시아의 왕궁에 패배의 소식이 전해졌다. 아들 크세르크세스 왕이 개선 행진을 하리라 기대하던 어머니 아토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원로들에게 묻는다.

“도대체 누가 그들의 목자로서 군대를 이끄는가?” 원로의 수장이 대답한다. “그들은 어떤 사람의 노예라고도, 시종이라고도 불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적군이 쳐들어올 때, 어떻게 대항하는가?” “페르시아의 잘 훈련된 대군도 그들에게 패할 정도입니다.”(241-244행) 패전을 알리는 사자가 도착해 정황을 설명한다. “수만 따져본다면, 우리 함대가 틀림없이 이겼을 것이옵니다.”(337행)

그런데 왜 패배했단 말인가. 아이스킬로스는 모든 아테네인이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는 자유민인 반면, 페르시아의 병사들은 군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노예 같은 존재들이라고 봤다. 자유민과 노예가 싸운다면, 자유민이 이길 수밖에 없다. 자유민은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알고 싸우는 반면, 노예는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전쟁터에 끌러나간 터였다. 아테네인들은 자유를 지키려는 결의로 필사적인 반면, 노예는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니 싸움이 될 리가 없다.

전쟁과도 같은 현재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가 무기가 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반면 정부와 방역 당국이 제시하는 조치에 관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참여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규제만으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