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닷새만에 아프간 州都 9곳 점령…탈레반 ‘20년만의 권좌 탈환’ 눈앞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규군과의 교전 끝에 쿤두즈주의 주도 쿤두즈를 점령한 가운데 현지 주민들이 불타버린 상점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 美 철군후 영토 65% 장악

反탈레반 북부 지역까지 뻗어
수도 카불 함락도 멀지 않아

정부 부정·부패로 통제력 상실
군벌 배반에 특공대도 힘 못써
게릴라戰 택한 탈레반 파죽지세

美 2003년 병력축소부터 실책
바이든 정부는 ‘강건너 불구경’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탈레반의 파죽지세가 심상치 않다. 탈레반은 단 닷새 만에 현지 34개 주 가운데 9개 주의 주도를 점령했고, 수도 카불마저도 위태로워졌다. 지난 5월 미군의 철수 이후 소규모 군(郡)지역을 포함해 이미 영토의 65%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레반의 위력에 아프간 전역 함락 가능성이 예상보다 빠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점령된 도시 대부분이 북부 지역으로 이는 전통적인 반(反)탈레반 지역인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정부의 통제력이 완전히 상실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AF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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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들의 ‘삽시간’ 함락은 예정된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규군의 무능과 지역 정규군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군벌의 배반,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특공대의 와해 등이 예정된 결과의 원인이다. 더 근본적 이유도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장장 20년간이나 주둔했지만 탈레반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군의 끈질긴 공세에도 탈레반은 불사조처럼 되살아났으며, 2001년 미군에 의해 축출된 이후 20년 만에 권좌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파죽지세 탈레반, 속수무책 정부군은 ‘예견된 결과’ = 아프가니스탄 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정규군은 육군, 공군, 경찰, 특공대 등을 포함해 30만 명이 넘는다. 이에 비해 탈레반 병력은 8만5000명 규모로 추산된다. 병력 규모는 훨씬 크지만 아프가니스탄 정규군은 탈레반의 공세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형국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잇따른 패배로 사기가 크게 떨어진 정규군이 정부의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외신들은 지적한다. 정부의 고질적인 부정과 부패가 군인들이 돌아선 원인이다.

아흐마드 왈리 마수드 전 영국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아슈라프 가니(아프가니스탄 대통령)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군대가 부패한 정부와 정치인들을 위해 싸울 동기는 없다”면서 “특히 정규군은 제대로 급여나 식량을 지급받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오히려 탈레반과 더 잘 지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역 정규군을 지배하고 있는 군벌의 배반도 문제다. 탈레반이 지난 9일 점령한 사망간주의 주도 아이바크가 대표적이다. 지역 군벌의 배반으로 탈레반은 아이바크에 무혈입성했다. WSJ는 해당 지역 군벌의 수장 아시프 아지미 전 상원의원이 자신을 따르는 병사 300명과 함께 탈레반에 가세하자 나머지 정규군이 모두 도망쳤다고 보도했다. 아지미 전 상원의원은 “우리는 이슬람 정부를 원한다. 현 정부는 미국의 괴뢰”라고 탈레반에 가세한 이유를 설명했다.

미군이 철수하며 심어놓은 최후의 보루, 특공대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며 창설한 1만1000명 규모의 특공대는 미군 주둔 당시 미군과 협력해 탈레반은 물론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소탕작전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미군 철수 후 독자 작전 수행에 맹점을 드러낸 상태다. CNN은 “특공대일지라도 미국의 항공 지원이 없다면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지난 7월 22일 탈레반이 교전 중 항복한 특공대 22명을 처형하는 동영상을 공개, 특공대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전 집중하다가 탈레반 소탕 실패한 美 =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근본적인 문제는 미군이 탈레반을 소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군이 처음부터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미군은 탈레반 정권을 성공적으로 붕괴시킨 듯 보였다. 특히 2004년 뜨거운 열기 속에 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도 치러냈는데 당시 유권자로 등록한 1053만 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41.4%에 달할 정도였다. 이듬해 열린 총선에서도 선출된 여성 하원 의원은 전체 의석의 28%를 차지했다. 여성의 교육과 경제활동을 금지하고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던 탈레반 정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판단한 미국은 2003년 시작한 이라크 전쟁에 병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라크에 15만 명이 투입된 반면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은 1만∼2만 명 수준이었다. 때를 틈타 2006년, 전열을 가다듬은 탈레반이 반격을 시도했다. 대규모 전투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탈레반은 게릴라전과 자살폭탄 테러로 전술을 바꿨고 이 전략은 크게 주효했다. 이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투입 미군을 2011년 11만 명까지 늘렸으나 게릴라전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베트남전과 같은 양상으로 전황이 바뀐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이 미군을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도 탈레반의 게릴라전을 수월하게 했다. 이들은 수도 카불에 세워진 정부를 외세와 손잡은 세력으로 규정했다. 퍼리드 저카리아 전 포린어페어스 편집장은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실제 많은 아프가니스탄인은 외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에 탈레반과 손을 맞잡았다. 이것이 막강한 전투력이나 경제 지원, 심지어 좋은 정부보다 훨씬 중요한 (탈레반의) 성공 요인이다”라면서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인종 그룹인 파슈툰족은 탈레반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수주 내에 탈레반이 카불까지 탈환 가능성…예상보다 빨라지는 시간표 = 탈레반의 거센 반격이 이어지며 카불 함락도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북부 아이바크의 경우 동부에 위치한 수도 카불과 북부지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지나는 요지로 평가되는 지역이다. WSJ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 세력이 공통의 전쟁 계획 아래에 단합하지 않는다면 카불은 수주 내로 함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강 건너 불구경’ 태도도 이 같은 우려를 짙게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들은 자신을 위해 싸우고 그들의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한다”면서 “나는 (철군)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 역시 기자회견에서 아프가니스탄 치안 상황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있다”면서도 “전장에서 큰 변화를 만들 능력이 아프가니스탄군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의 카불 점령 이후 아프가니스탄 통치에 대한 여러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지난 20년간 미군 치하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적폐청산’에 나설 가능성을 점친다. 이미 미군의 입이 돼준 아프가니스탄 국적 통역사가 최근 탈레반에 살해당했다는 CNN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탈레반이 적폐청산에 나설 경우 과거 집권 당시 자행한 여성 억압, 인권 유린 등의 행위가 재연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인접국 주둔 계획을 밝힌 미국의 눈치를 보며 적어도 당분간은 과거와 같은 철권통치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