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김길후 화백 ‘혼돈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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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1-08-1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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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작품에 작가의 개입이 빠져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自我)를 지우는 일이다. 내가 그리는 게 아니라, 붓이 그린다고 생각한다. 구름이 바람결에 움직이면서 형상이 바뀌듯이, 작품도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기를 바란다”. 한국과 중국의 화실을 오가며 창작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김길후(60) 화백의 말이다. 그는 노자(老子)·플라톤·사르트르·들뢰즈 등 동서양의 사상을 두루 깊이 섭렵했다. 그가 ‘어둠’을 그린 작품 속에 ‘빛과 희망’이 깃들어 있다고도 한다.

1988년 계명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정체성의 완전한 재확립을 위해, 김동기였던 이름을 2013년 개명하기에 앞서 분신에 해당하는 작품 전체이던 1만6000여 점을 1999년 불태워 없앴다. “그때까지 내가 추구했던 것들은 사라져야 할 대상이었다. ‘성공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욕망을 없애야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동양의 일필휘지와 서양의 표현주의를 아우른 작품 세계’를 열었다. “궁극의 세계는 심오한 흑(黑)과 백(白)의 절제된 만남 속에서 그 깊이감을 들여놓을 수 있다. 특히 검은색은 블랙홀과 같은 우주의 본질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 종이·하양·검정을 표현의 주축 요소로 삼았다. ‘검은 눈물(Black Tears)’ 연작이 나온 배경이다. ‘비밀의 화원’ ‘현자(賢者)’ ‘무제’ 등의 연작도 그 연장선이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이렇게 말한다. “김길후는 허공에 긴 칼을 휘두르는 검객일 수도 있고,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춤꾼일 수도 있다. 무당이나 춤꾼은 행위를 드러내지만,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 그는 화가이기 때문에 행위를 하고 흔적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한 춤을 추는 무당(shaman)이다. 신명에 빠져 붓 춤을 추면서, 태곳적의 영기(靈氣)를 불러내, 예술이 지닌 치유의 기능을 임재하게 하는 샤먼의 역할을 한다.” 김길후 개인전 ‘혼돈의 밤’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지난 7월 21일 개막했다. 오는 22일 끝난다. “예술이 도대체 뭔지 궁금해서 여러 나라를 다니며 해답을 찾는 모습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혼돈의 밤’은 만물이 소생하기 전의 원시 상태를 가리킨다. 작품 23점을 둘러보며 전율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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