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감사편지 쓰기’ 연중 캠페인>농사로 손자 뒷바라지하신다며… 밤마다 파스 붙였던 ‘하부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남교육감賞 이희웅

안녕하세요. 저 둘째 외손주 희웅이에요. 외할아버지를 7세 때부터 “하부지 하부지”라고 부르며 쫓아다녔던 때가 엊그제 같네요.

시끌벅적하던 집을 떠나 경남 진주로 온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어요. 가끔 집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의 두 다리가 너무 아파 보여 속상했어요. 나무에서 떨어져 고관절을 크게 다치셨는데, 응급차에 실려 서울 병원으로 가실 때 너무 놀라 두 손을 힘껏 잡아드리지 못했던 게 지금도 죄송하고 후회돼요.

여전히 농사짓느라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항상 무거워요.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저를 타이르고 조언해 주시느라 늘 어깨가 무거우셨죠. 커 보였던 어깨가 초라해지신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파요. 형과 제가 독립할 때까지 엄마를 도와주신다고 했죠. 재활과 일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란 말이 외할아버지께 제일 잘 어울린다고 감히 생각해요.

외할아버지께서 늘 강조하신 ‘역지사지’라는 말을 학교에서 다시금 되새기게 돼요. 기숙학교의 룸메이트와 부딪치는 일이 생기면 나보다는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게 되거든요. 대표로 친구들을 통솔할 때도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배웠어요. 부족하고 가난한 환경에서도 저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꾸짖어 주시고, 때론 치킨을 함께 먹으며 오순도순 이야기 나눴던 때가 그리워요. 아버지 없이 자란 제가 사춘기 때 나쁜 길로 들어설까 자주 꾸중하셨죠. 그때 저는 외할아버지 말씀이 듣기 싫고 짜증 난다며 ‘꼰대’ 어른의 말로 치부하면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기억이 너무 부끄러워요.

형은 “보석이”라고 부르며 좋은 거, 맛있는 거를 항상 먼저 주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차별이라며 서러워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 기억이 좀 더 강한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저를 인정해 주실 것 같아 이 악물고 공부했어요. 그게 제게 좋은 동기부여가 됐어요. 옳은 길의 반대는 나쁜 길이 아니라 쉬운 길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춘기 때 너무 쉬운 선택만 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거예요. 적당한 가시밭길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줬어요.

열심히 학교생활 잘해서 공군 부사관으로 임관하게 되면 돈 많이 벌어 제가 받은 은혜 꼭 돌려드릴게요. 이젠 제가 든든한 두 다리가 돼 드릴게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제 곁에 계셔만 주세요. 저희 두 형제 졸업할 때까지 농사지어 뒷바라지하신다며 밤마다 파스에 의지하시죠. 곧 방학하면 제가 튼튼한 두 다리로 감자도 캐고 옥수수도 딸게요.

외할아버지는 어두운 바다를 밝혀 주시는 제 삶의 등대고, 더울 때 그늘을 만들어주시는 큰 아름드리나무예요. 할아버지께서 제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사랑과 격려로 보살펴 주신 덕에 지금까지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제가 평생 효도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늘 제 곁에 계셔 주세요. 사랑합니다, 하부지.

아빠의 자리를 대신해 준 외할아버지께


* 문화일보 후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감사편지 쓰기’ 공모전 수상작.
관련문의:1588-1940 www.childfun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