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가 지난 2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7세기에 멈춰있는 이슬람 율법으로 통치하겠다는 탈레반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 이슬람학자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硏 교수
SNS 상 ‘아이스크림 셀카’ 같이
변화한 모습 보여주려 하지만
경제지원 노린 유화 제스처일뿐
목적은 이슬람 근본주의國 건설
印, 카슈미르에 테러 세력 투입
파키스탄, 파슈툰 민족 자극 등
상대국 ‘탈레반 이용’ 할까 촉각
신장 위구르 문제 中과도 엮여
7월 회담 효과 오래 갈지 의문
中 지원해도 정상국가화 힘들듯
인터뷰 = 임정환 기자
지난 15일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으로 알려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SNS상에서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소총으로 무장한 탈레반 전투원들이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진이었다. 일부 서방 언론은 이 사진을 ‘변화한 탈레반 2.0의 한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미지 개선용’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우세했다. 2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탈레반은 정말 변했을까, 아니면 유화책 차원의 이미지 메이킹일까. 어떻든 질문은 하나로 집약된다. ‘탈레반은 과연 앞으로 아프간을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 이슬람 학자인 박현도(55)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 24일 “탈레반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박 교수는 이날 문화일보 편집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통치 근거로 삼겠다는 이슬람 율법(샤리아)은 7세기에 멈춰 있다”면서 “복잡하게 얽힌 민족문제도 그들이 정상국가가 되는 것을 크게 방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문제아’ 탈레반의 전면 등장으로 아프간뿐만 아니라 인접 국가들도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서강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뒤 캐나다 맥길대에서 이슬람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이란 테헤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탈레반이 변했을까. ‘샤리아의 틀 안’에서 여성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자하고 똑같다. 아니 오히려 종교적 신념은 더 무섭다. 그걸 위장은 해도 버리진 못한다. ‘샤리아의 틀 안’이라는 말이 무서운 게 샤리아를 가져오라고 하면 아무도 가져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샤리아는 규정되지 않는다. 헌법이나 회사의 사규처럼 적혀 있는 게 아니다. 틀이 굉장히 넓고 어떤 사안에 대해 강경하게 해석될 수 있으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있다. 심지어 탈레반은 여기에 근거해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목적이 확고하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았던 7세기에 멈춰 있는 사회다. 기독교나 불교가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를 얘기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탈레반은 과거로 돌아가길 원한다.”
―탈레반은 과거 1996년 내전을 통해 집권했을 때도 말과 행동이 달랐다고 들었다.
“평화, 여성 인권, 언론의 자유는 그때도 했던 이야기다. 탈레반 창설자인 무하마드 오마르는 당시 카불 주민들에게 안전을 약속했고, 사령관도 ‘복수하지 않겠다. 개인적 원한은 없다’며 항복한 정부군과 관료들에게 전원 사면령도 내렸다. 하지만 ‘피의 숙청’이 바로 진행됐다. 당시 전직 대통령 모하마드 나지불라는 탈레반이 카불을 접수한 다음 날 처형당해 시신이 참혹하게 훼손된 채로 길거리에 매달렸다. 탈레반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조직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탈레반이 겉으로나마 유화적 제스처를 내놓는 이유는 뭘까.
“돈이다. 탈레반은 경제 재건을 이야기했다. 돈 없이는 경제 재건을 할 수가 없다. 문제는 아프간의 75%가 산악지대라서 절대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경작지는 10%밖에 안 된다. 산악지대가 70%에 달하는 우리나라와도 또 다르다. 그곳 산악지대는 힌두쿠시산맥 등 5000∼7000m에 달하는 고산지대가 대부분이다. 탈레반은 유화적 제스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기존과 같은 지원을 받기를 원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해 지원이 끊길 경우, 탈레반은 아프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으로 보나.
“마약(양귀비)밖에는 길이 없다. 이미 아프간 사람들 80∼90%가 마약 관련 일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과거에도 마약은 탈레반의 돈줄이었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마약을 근절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미국은 양귀비밭을 불태우고 대신 사프란(고급 향신료)을 키우게 했다. 사프란이 고부가가치이긴 한데 손이 많이 간다. 반면 양귀비는 고가면서도 쉽게 키울 수 있다. 사실 탈레반만 마약으로 득을 본 게 아니다. 미군이 주둔하던 시절에 아프간 정부도 뒤로는 마약으로 먹고살았다고 본다. 심지어 아프간의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의 동생 왈라 카르자이는 ‘마약왕’이라고까지 불렸다. 이제는 미군도 없으니 탈레반이 범정부적으로 마약 사업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부분에서도 탈레반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이슬람 문화에서 마약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레반도 1994년 처음 세워졌을 때는 마약을 금지했다. 하지만 결국 돈이 필요해지자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슬람에서 만들지만 소비하는 건 비이슬람이니까 괜찮다’는 논리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탈레반 전투원들이 천진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 외신 캡처
―저항군이 판지시르 지역에 집결해 있다고 한다. 이들이 판세를 뒤집을 가능성도 있나.
“탈레반에 대항하는 저항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프간의 민족 구성을 봐야 한다. 아프간에는 파슈툰족(약 42%)이 제일 많고 그다음이 타지크족(약 27%)이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주축이고 판지시르 저항세력의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는 타지크족이다. 저항 세력이 원하는 건 탈레반이 주도하는 정부 구성에 타지크족도 넣어달라는 것이다. 탈레반과 전투를 벌이기 전에 그 부분에 대해 우선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전황으로 볼 때 외부세력이 도와주지 않는 한 협상이나 전투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이 정상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일단 중앙집권적 국가를 세우기는 어렵다고 본다. 아까 얘기했던 종족 간 갈등의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종족 간에 권력을 나눠야 할 텐데 탈레반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과거에 탈레반은 소수민족을 학살한 적도 있기 때문에 소수민족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을 거다.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이 문제가 더 불거질 것이다. 파슈툰족끼리 나라를 세우면 몰라도 현재 상황에선 방안이 없다.”
―중국은 탈레반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 많이 도울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중국도 원하는 게 있어서다. 중국은 탈레반이 신장(新疆)위구르 지역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한다. 신장위구르 지역도 이슬람 영향권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아프간의 국경이 맞닿은 와칸 회랑 지역은 탈레반 극단주의자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니 중국 입장에서는 탈레반에 ‘돈 줄 테니 너희들 나쁜 짓 하지 말라’고 할 이유가 있다. 지난 7월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탈레반 이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회담한 것은 일종의 ‘사랑의 맹세’다. 하지만 그게 오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신장 지역에서는 탈레반 측을 향해 ‘같은 이슬람이라더니 왜 우리를 도와주지 않느냐’는 비난이 나올 것이다. 탈레반 내부에서도 ‘같은 편인데 왜 돕지 않느냐’란 이유로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다른 주변국도 골치 아파할 거 같다.
“사이가 좋지 않은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 상대가 탈레반을 이용할까 봐 두려워한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획책해 이슬람 다수 지역인 카슈미르에 테러 세력을 투입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반대로 파키스탄은 인도가 탈레반과 손잡고 아프간-파키스탄 국경 지대에 파슈툰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것을 걱정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탈레반 때문에 앙숙인 이란이 골치 아파하는 상황을 즐길 테고, 이란은 ‘사우디가 탈레반을 이용해서 테러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거다. 러시아는 탈레반이 자기 앞마당인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자극할까 봐 두려울 것이다. 탈레반 하나가 아프간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건 북한 문제보다 더 복잡하다. 너무 많은 나라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아프간이 정말 다시 테러의 온상이 될까.
“사실 전 세계 국가들이 매우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가 테러다. 미국도 탈레반과 협상했을 때 아프간을 테러 온상지로 만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의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그걸 지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산악지형이 장대해 테러 세력들이 숨어 있기가 좋다. 그래서 과거 미국이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도 찾아내지 못했다. 더욱이 탈레반 내에서 카불의 치안을 맡을 정도로 핵심 세력인 하카니 네트워크가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하카니 네트워크가 득세하면서 알카에다가 다시 중흥기를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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