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정진택 “4차 산업혁명·팬데믹 앞의 대학… 새로운 패러다임 가져야 미래 대응”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이 지난 8월 2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SK미래관에서 “세계는 지금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 두 개의 파고에 처해 있다”며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발상을 바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제로 베이스 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 정진택 고려대학교 총장

‘제로 베이스’서 다시 출발한다 생각하면 되레 해법 쉬울수도
경영·어문·공학계열 학생들이 팀 이뤄 열린 사고로 대처해야

재학중에 동아리·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창업’도 꼭 해보길
등록금 13년째 동결… 대학이 수익 창출하게 규제라도 풀길

인터뷰 = 이제교 사회부장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신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침 인터뷰가 진행된 시점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에 대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가 발표돼 고려대의 행보와 결정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 총장은 “어떤 목소리나 시각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에 입각해 정도를 걸어가야겠지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속한 진영이 바라는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길 원한다. 그 반대의 상황이 빚어지면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정 총장의 접근 방법은 달랐다. 당장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더라도 ‘틀리지 않는 결정’이 중요하고 더 오래간다고 여겼다. 지난 8월 2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정 총장을 만났다.

―고려대가 조 씨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시선이 쏠립니다.

“학사 운영 규정에 따라 입학취소처리심의위원회가 구성돼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입학사정을 위해 제출한 전형자료에서 중대한 흠결이 발견되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입니다. 조만간 적절한 시기에, 현재까지 진행 사항과 앞으로 계획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대상자에게 소명 자료를 받아 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이후 소속 단과대학장과 교무처장을 거쳐 총장 재가를 받아 최종적으로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앞으로 과정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물론 1심과 2심은 조 씨가 입학지원서류로 제출한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인턴활동을 허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고려대 입장에서는 먼저 해당 서류가 제출됐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부산대 의전원은 2015년에 입학한 조 씨가 제출한 서류를 보관하고 있어 사실관계 확인 절차가 용이했습니다. 조 씨는 2010년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에 입학했는데 11년 전이라 당시 입학서류가 없는 상태입니다. 문서 보존기한이 당시에는 5년이라 관리 차원에서 파기됐습니다. 문제가 있는 서류가 우리 학교에 제출된 사실이 확인된다면 심의위에서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합니다. 당장 말씀드릴 수 없는 점을 이해 바랍니다.”

―학내에서 견해가 다를 경우 갈등 조정을 어떻게 하나요.

“사실 여러 가지 사안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생각이 다릅니다. 사회 구성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어떤 목소리나 시각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도를 걸어가야겠지요. 목소리가 크다고 해서 그쪽으로 따라가면 안 되고, 사실에 입각해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나 조직 내 구성원들의 생각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옳다’는 생각이 모이면 진행하면 되는 것이고, 반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이면 중단하면 됩니다. 그런데 규정과 절차는 선택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문제입니다. 고려대는 원칙대로 판단해 진행할 것입니다.”

―취임 초 가졌던 포부에 대한 중간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어느새 취임 2년이 지나 임기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취임했을 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중심의 고려대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중심의 고려대를 지향했습니다. 일하는 것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술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그 기술을 실행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결국 사람을 위한 기술이 돼야겠지요. 학생과 교직원 등 구성원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협력하고 소통하는 대학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대학들도 장점이 많지만 고려대는 학생들의 열정이 있고 유대감이 강합니다. 남은 임기 동안 고려대가 가진 장점이 극대화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3대 인맥을 고대, 해병대, 호남이라고 하는데요.

“하하, 세 가지 중 어느 인맥이 가장 센지는 모르지만, 세 개를 모두 갖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가끔 인맥이 부작용을 빚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일정 정도의 유대감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면서 개인주의가 강해졌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통해 내가 먼저 양보하고 조직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나보다는 우리, 내가 속한 조직보다는 학교를 생각하고, 학교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 분열이 심각합니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 원칙과 대의보다는 집단의 이익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다수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반대하면 도태되거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 중에서도 진보성향을 가진 분, 보수성향을 가진 분이 존재합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견해가 다릅니다. 소수의 의견이라도 귀를 기울이고 의미 있다고 판단되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열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이를 해소하려면 정치권도 달라져야겠지만 교육이 중요합니다. 내가 중요하고 대접받고 싶다면 그만큼 상대방도 존중해줘야 합니다. 가정은 물론 초·중·고등 교육현장에서 상호존중 태도를 교육해야 합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이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본관으로 향하고 있다. 정 총장은 지난 8월 24일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고와 행동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소수의 의견이라도 귀를 기울이고 의미 있다고 판단되면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정치가 사회분열 해소해야 하지만… 대학도 상호존중하는 교육 필요”

조민씨 입학취소심의 진행 중
조만간 상세한 내용 공개할 것
입학서류 보존기한은 5년이라
조씨 11년전 입학서류는 없어

폴리페서, 국민 기대에 미흡해
전문성과 윤리성 함께 지녀야

―대선 국면인데, 교수님들의 정치 참여(폴리페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교수는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교수들의 전문성, 즉 그들의 두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다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공인이 되는 것입니다. 국민이 공인에게 기대하는 기준은 높습니다. 전문성뿐 아니라 윤리성도 있어야 합니다. 기대에 미흡한 교수들도 우리 사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의 정치 참여는 본인의 소신과 철학에 따라 결정되겠지요. 인문 분야는 물론이고 공학 분야에서도 정부와 프로젝트를 함께하면서 매니저 디렉터로 참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미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두 가지 큰 파고에 놓여 있습니다. 먼저 엄청난 스피드로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입니다. 하나만 닥쳐도 쉽지 않은데 두 가지가 겹쳐서 개인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고 기업도 그렇고 대학도 어떻게 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미래의 변화 방향을 예측해야 대응할 수 있는데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서 제로베이스,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오히려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이지요. 대학도 기존의 모습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융·복합적 교육으로 변해야 합니다. 이제 어느 제품도 어느 서비스도 하나의 전공, 한두 개의 배경을 가지고 나오는 시대가 아닙니다. 적어도 기계공학과 전공 학생과 중어중문학과 전공 학생, 또는 경영학과 전공 학생과 팀을 이뤄 협력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열린 사고와 열린 마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변화의 흐름에 맞춰 행동으로 빨리 옮기는 학교가 발전할 것입니다. 반면에 느리게 움직이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대학은 도태될 것입니다.”

―지식의 상아탑으로 대학의 사명을 정의한다면.

“대학의 사명은 교육과 연구,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는 궁금한 부분에 대한 연구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미세먼지, 바이러스, 인구문제 등 우리 사회와 국가, 세계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성을 가져야 합니다. 봉사도 중요합니다. 성북구에는 다문화가정이 많은데 최근 우리 학생들이 사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업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캠퍼스를 개방해 주민들이 학교 시설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서울시가 지원하는 캠퍼스 타운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제도가 너무 복잡한데, 최근에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줄고 정시모집이 늘고 있습니다.

“제가 79학번인데 예비고사 보고 본고사를 봤습니다. 예비고사 점수가 좋지 않으면 요즘 말로, ‘인 서울’할 수 없었지요. 성적에 의한 차별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 번에 걸러지는 시스템이다 보니 공정성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적만 보고 입학을 결정짓느냐’는 평가 문제가 대두되면서 입학사정관제, 즉 수시모집이란 게 생겼습니다. 수시는 학교마다 전형이 다양한데, 학교가 자신들이 바라는 인재, 지향하는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는 입장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다시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불공정성이 불거지면서 정부가 정시모집을 40% 반영하라는 지침을 내려 수험생 입장에선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모든 대학은 우수한 인재를 뽑고 싶어 합니다. 고려대도 수시전형을 어떻게 해야 좋은 학생이 많이 올지를 놓고 인재발굴처에서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보면 요즘 Z세대는 이전 세대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을 Z세대라고 한다면 그 세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용어가 ‘디지털’입니다. 다음은 모바일인데, 실과 바늘처럼 SNS가 따라다닙니다. SNS에서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데 어떤 면에서는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자유롭게 표현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Z세대는 솔직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것을 왜 해야 되나요?’라고 묻습니다. ‘무조건 해’ ‘시키는 대로 해’라고 말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꼰대’입니다.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면 ‘선배’가 됩니다, 설명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면 Z세대는 바로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저축과 소비습관도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 세대는 수입이 많아도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지출을 하지 않는 저축 우선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수입 규모와 관계없이 자신의 관심 분야나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부분에 돈을 씁니다. 상품 자체의 가치가 아닌, 본인이 상품을 통해 느끼는 만족을 중요시합니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데, 기성세대의 영역으로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가진 좋은 가치들, 인류가 갖고 있는 윤리와 공동체 정신 등 근본적인 덕목들은 양보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대학교육협의회는 정부에 등록금 자율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학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문제입니다. 대학의 수입 상당 부분은 등록금인데, 13년간 동결됐습니다. 반면에 지출은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로제 등으로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등록금 동결을 푸는 것입니다. 사립대학의 수입은 등록금, 재단 전입금, 기부금 등입니다. 연구 프로젝트를 따와도 학교가 쓸 수 있는 비율은 전체 연구비의 10% 정도입니다. 전기도 쓰고 연구실도 유지하고 공간도 보수해야 하니 연구비 전용이 어렵습니다. 등록금 동결 해제가 어렵다면 규제 완화라도 해줘야 합니다. 졸업생이 모교에 10만 원을 기부하면 세제 혜택을 준다거나 기업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린다거나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또 교육용 부지나 공간은 수익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비영리기관인 대학도 유지비용이 들어갑니다. 등록금을 올리지 못한다면 대학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젊은 날 반드시 경험해 보라’고 조언해줄 부분이 있다면.

“요즘은 대부분 130학점을 취득하면 졸업이 되는데, 사실 학점만 딴다면 대학 시절에 시간이 많습니다. 대학에서 경험해야 하는 첫째가 동아리 활동, 옛날 말로 ‘서클’입니다. 동아리에서 1학년 때는 청소하고 주전자 갖다놓고 하며 펠로십을 배울 수 있고, 2학년이 되면 회계, 총무로 돈 관리를 하면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으며, 3학년이 되면 회장 또는 부회장을 하면서 리더십을 기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봉사활동입니다. 집에서 곱게 자란 대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환경의 사람들을 보면 충격을 받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도 고민하게 됩니다. 셋째, 교환학생이나 인턴을 통한 해외생활 경험도 필요합니다. 넷째는 모두가 하기는 어렵겠지만 창업입니다. 성공이 아닌 실패의 경험을 가져보라는 취지입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똑똑하다고 해서 물건이 팔리는 것은 아닙니다. 대박을 터뜨릴 줄 알았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겪어 보면 교훈을 얻게 됩니다. 착각을 깨닫는 것도 교육의 한 장입니다. 실제로 고려대는 ‘쿠카이브’라는 교과-비교과 통합과정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네 가지를 모두 경험해 보면 좋겠지만 이 중 두 가지 정도는 반드시 하라고 학생들에게 얘기합니다.”

―언제 고려대에서 노벨상이나 필즈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중요하듯 연구도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교수들이 연구 결과로 자연스럽게 상을 받는다면 대학은 상을 받는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 환경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한 분야를 파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우리 학교 기부자들에게 노벨상 같은 특정 수상을 위한 발전기금 모집 프로젝트를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어느 교수님이 받든 간에 조만간 과학 분야에서 나오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지요.”

정리 = 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