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학의 옛글산책>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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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이 잠시 한양에 살았을 때 이야기다. 이웃집 밤나무 가지가 넘어와 퇴계 선생 집으로 밤이 떨어졌다. 퇴계 선생은 밤을 주워서 담장 밖으로 던졌다. 혹여 아이들이 먹을까 염려한 것이다. ‘적벽부’에 ‘苟非吾之所有(구비오지소유), 雖一毫而莫取(수일호이막취)’란 구절이 있다. ‘진실로 내 것이 아니라면 비록 터럭 한 올이라도 취하지 마라’는 것이다. 예전 분들은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했다. 퇴계 선생은 어린아이들이 밤 몇 톨이라도 남의 물건을 쉬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 장차 커서 어떻게 될지 걱정한 것이다. 개결(介潔)한 삶과 엄한 가르침이다.

원(元)나라 때 허형(許衡)은 친구들과 한여름 뙤약볕 아래 길을 가다가 갈증을 견딜 수 없었다. 친구들은 배나무를 보자 허겁지겁 배를 따 먹었으나 오직 허형만 먹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 까닭을 묻자 “배나무의 주인은 없을지 몰라도 어찌 내 마음에 주인이 없겠는가”라고 했다. 아무리 힘겨워도 자신의 떳떳함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우리가 귀감으로 삼을 만한 분들이다.

정부는 매년 ‘공직자 청렴 교육’을 한다. 왜 해마다 같은 교육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시험으로 청렴한 사람을 선발할 수 없으니 교육을 해서라도 경각심을 갖게 하자는 취지인 것 같다. 그런데도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무원은 계속 나온다. 도식적인 교육은 별 의미가 없다.

조선 시대에도 벼슬길에 오른 사람들은 어려서 유교 경전을 달달 외웠다. 그 책에는 사람됨을 강조하고 물욕을 버리라는 좋은 말씀이 그득하다. 그런데도 탐관오리는 늘 있었고 유리걸식하는 백성은 수도 없었다. 좋은 글을 문자로만 익힌 결과다. 교육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바로 사람됨이다. 청렴 교육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떳떳함과 염치를 가르치는 것이 옳다. 퇴계 선생과 허형까지는 아닐지라도 퇴근 후 자녀를 보면서 부끄럽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동고 교장,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