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2021.9.24 금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1년 09월 07일(火)
그들의 옷을 입고 행적 따라가며…‘貴人’을 기다리다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  김병종, 생명의노래-환희, 한지에 먹과채색, 60×45㎝, 1998.



■ 김병종의 시화기행 - (88) 아일랜드의 국민축제 블룸스데이

조이스 소설 ‘율리시스’ 속 하루
6월16일 기념해 관광객 등 몰려
축제 주인공은 작품속 ‘블룸스’

알수없는 우연·운명 뒤얽힌 삶
‘오디세이’보다 난해하게 서술
‘제3의 힘’ 끌려가는 인생 풀어쓴
이지함의 ‘토정비결’과도 유사



내 어머니는 유대교 랍비 같은 분이었다.

그분이 평생 읽은 성경을 쌓아 놓는다면 높이가 돌배기 키만큼은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을 떠돌다가 가끔씩 고향 집에 가서 어머니의 그 낡은 성경들을 보면 한 인생의 목적이 오직 저 책을 읽는 것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어머니가 구정 무렵이면 천연스럽게 토정비결을 좀 가져오라고 했다.

한숨을 쉬며 금년 운수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갈지 좀 보자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 앞뒤 안 맞는 태도에 속으로 실소하곤 했다. 내가 책을 펼쳐 “오는 삼월에는 동방에서 귀인이 와서 도움을 준다 했는데요?” 하면 “작년엔 남방에서 온다고 하더니…” 하며, “덮어라, 다 헛소리야” 그러시고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토정비결. 저자가 살았던 당시, 조선 백성들의 삶이 너무나도 곤궁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석학 이지함(1518∼1578)이 쓴 것이었다. 음력 정월부터 섣달그믐까지 사람들의 운수를 길흉화복에 따라 하이쿠(俳句) 같은 짧은 시로 서술한 것. “동쪽이나 서쪽에서 귀인이 찾아온다”거나 “가을이 되기 전 힘든 일이 다 풀려나간다” “봄바람 불어 얼음이 녹고 꽃이 피리라”는 식의 애매한 4언3구 시들은 결국 힘든 삶이 개선돼 좋은 날들이 오리라는 위로로 끝맺게 된다. 그런데 평생 성경만을 의지하던 내 어머니가 토정비결에 솔깃한 것은 의외였던 것이다. 하긴 콜카타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빈자들을 섬겼던 수녀 마더 테레사마저 과연 하나님은 계신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고개를 드는 때가 있다고 고백했던 판에, 일찍 남편을 보내고 홀로 자식들 건사하는 아녀자로서는 오죽했겠는가. 때때로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너무 멀리 계시고 땅의 삶은 홀로 힘들어질 때, 금년 운세는 또 어떻게 풀려갈지 왜 아니 궁금했겠는가.

‘율리시스’는 어떤 면에서 아일랜드인의 토정비결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이 더블린에서 딱 하루 동안에 겪는 이야기다(보다 정확하게는 1904년 6월 16일 아침 8시에서 다음날 새벽 2시까지다). 우리의 삶이 알 수 없는 우연과 운명으로 뒤얽혀 있다는 것을 장장 734면에 걸쳐 보여준다. 그때까지의 문학 엄숙주의와 결별한 것은 물론, 문학 서사의 틀 또한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었다. 의식의 흐름, 신화와 과거, 현재와 미래가 뒤엉킨 데다 지나치게 외설적이고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한동안 금서가 되기도 했다.

이지함 역시 선비와 행정관료였지만 자신과 가문을 둘러싼 파란만장한 운명을 보면서 인생의 행로는 알 수 없는 제3의 힘에 이끌려 간다는 생각을 했었을 것이고, 이를 자신이 공부한 역리학을 바탕으로 연작 시의 형태로 썼던 것이다. 요설로 사람들의 삶을 미혹시킨다고 해 역시 한때 금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율리시스’에 ‘토정비결’을 얹혀보는 내 상상력이야말로 황당하긴 하다. 하지만 현실의 불가해함을 풀어나가려는 서술의 방법에 있어서만은 두 책이 유사하다. 사실 ‘율리시스’의 근원은 ‘토정비결’이 아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18장(章)의 이야기들과 삽화를 넣는 형식까지 방불하다. 그러나 마치 미궁에 들어선 듯한 그 난해함과 은유의 구조는 ‘오디세이’를 뛰어넘는다. 오죽하면 작가 자신도 말했단다. “나는 그 책 속에 너무도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들을 감춰두었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기 바쁠 것이다. 이것만이 나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객쩍은 서사가 길어졌다. 더블린에 와서 안 사실인데 매년 6월 16일은 세상에는 없는 그들만의 날이란다. 마치 토정비결처럼 그 도시에 귀인(貴人)이 오는 축제 날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 귀인의 이름은 두 사람의 ‘블룸스(Blooms)’. ‘율리시스’의 주인공들 이름이다. 상상 속의 인물이 그날만은 현존 인물로 나타나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6월 16일은 제임스 조이스가 그의 아내 노라 바나클(Nora Barnacle·1884∼1951)과 첫 데이트를 한 날이기도 했다. 그는 호텔 청소부로 곤고한 삶을 보냈던 아내를 소설 속 주인공과 겹쳐 놓았다. 타지마할을 지어 아내에게 헌정했던 옛 인도 무굴제국의 샤 자한 황제처럼, 그는 하얀 대리석이 아닌 검은 펜 글씨로 바나클에게 블룸이라는 이름을 헌정했던 것이다. 축제의 날 거리로 몰려나온 인파들은 소설 속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과 매리언 블룸의 의상을 입고 그들이 걸었던 코스들을 따라 순례를 시작한다. 더블린 사람들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서 조이스와 율리시스 마니아들이 모여들고 각종 문학 포럼이나 부대 행사들이 함께 펼쳐지게 된다. 마치 독일 바이로이트의 바그너처럼, 우리나라 남원의 춘향처럼 한 예술가와 그 예술 속 인물을 기리며 그날 하루 고단한 삶을 내려놓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수난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그리고 대체로 핍절한 역사를 가진 나라나 민족은 이야기로 애환을 풀어낸다. 우리나라의 판소리가 그러하듯 이야기의 서사 구조 속에 삶의 가닥을 얹어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일랜드는 우리와 너무도 흡사하다. 그 땅에 내리자마자 알 수 없이 편안한 분위기며 기시감 같은 것이 잡아끄는 듯했던 것도 어쩌면 그런 친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바람이 불듯 그렇게 세월은 간다. 어느 하루쯤 하던 일 놓고 착하게 손잡고 원무를 도는 일, 그것이 축제일 것이다. 마음의 빗장을 열고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으며 둥글게 둥글게 그렇게 돌아가는 것. 그래서 축제는 인생들이 영혼의 햇살을 초대해 온몸으로 받아내는 기쁨의 놀이가 된다. 그 순간 지상의 청소부 바나클도 하늘로 비상하는 매리언 블룸이 되는 것이리라.


시인 윤동주는 이렇게 썼다.


내일 내일 하기에 / 물었더니 /
밤을 자고 동틀 때 / 내일이라고 /


새날을 찾던 나는 / 잠을 자고 돌아보니 /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 내일은 없나니…



그렇다. 내일은 없거나 불확실하다.

그러기에 축제는 지금 당장 이곳에서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속절없이 지나가는 우리 삶의 매순간이 블룸스데이가 되게 하는 일이리라. 아일랜드 국민 축제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블룸스데이의 기원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배경이 된 축제다.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 단 하루 동안에 레오폴드 블룸과 그의 아내 매리언 블룸, 스티븐 테일러스라는 세 인물이 더블린에서 겪는 18가지 에피소드를 모아 쓴 책. 길고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블룸스데이는 1954년 첫 축제를 개최한 후 매년 더블린과 그 일대를 중심으로 열려왔다. 행사 기간을 전후해서 조이스를 기리는 학술대회, 전시회, 공연 등이 열리고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2004년에는 소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축제와 행사가 수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기도 했다.

▲  블룸스데이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삶과 유산을 기념하는 행사로 매년 6월 16일에 열린다.


- 문화부 SNS 플랫폼 관련 링크



[ 많이 본 기사 ]
▶ 진중권 “대장동, 단군 이래 최대 비리사건…탁월한 분장술..
▶ [단독]‘이재명 기본소득’ 설계 이한주, 부동산 투기 의혹
▶ [단독]이재명 “부동산 투기에 나라 망한다”더니…최측근..
▶ 51세 김구라, ‘늦둥이’ 아빠 됐다…추석 직전 출산
▶ 추성훈 딸 추사랑, 모델 비주얼…길게 뻗은 다리 눈길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꾸짖는다” 이유로 친할머니 흉기 ..
洪 “공약 베껴 짬뽕” 尹 “특허라도 있..
60대 탈북 여성, 파주서 월북 시도하..
“주유시간에 배터리 충전” 신기술 공..
동시간대 최다 기록… 추석 끝나자마..
topnew_title
topnews_photo 서울·강원 등 아파트·상가 10여개페이퍼컴퍼니 세워 편법증여 의혹전문가 “세금 줄이기 전형적 방식”김현아·이후민, 성남=조재연 기자대..
mark추성훈 딸 추사랑, 모델 비주얼…길게 뻗은 다리 눈길
mark“윤석열레드팀 근거없다”…고검, 2월에 이미 결론
진중권 “대장동, 단군 이래 최대 비리사건…탁월한..
‘전현무♥’ 이혜성, 2세 계획… “나 닮은 딸 낳고파..
“與주자 호남 지지율…이낙연 49.7% 이재명 39.1%..
line
special news 51세 김구라, ‘늦둥이’ 아빠 됐다…추석 직전 출산
방송인 김구라(51)가 ‘늦둥이’를 얻었다 김구라는 추석 직전 둘째 아이를 품에 안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

line
‘지옥의 우물’ 예멘 사막 한복판 깊이 100m 내부 탐..
[단독]이재명 “부동산 투기에 나라 망한다”더니…..
경찰, 화천대유 수상한 자금흐름 계좌추적도 안해..
photo_news
홍준표 의원도 아내와 함께 예능 나들이
photo_news
오징어 게임 전세계 돌풍… 글로벌 히트 이유..
line

illust
피자 먹으러 갔다 산 복권이 5천억원에 당첨
[Global Focus]
illust
마오쩌둥 넘어서려는 시진핑…‘21세기 홍위병’ 샤오펀훙은 양..
topnew_title
number “꾸짖는다” 이유로 친할머니 흉기 살해한 1..
洪 “공약 베껴 짬뽕” 尹 “특허라도 있나”… ..
60대 탈북 여성, 파주서 월북 시도하다 적발
“주유시간에 배터리 충전” 신기술 공개… 전..
hot_photo
‘구단주 찬스’ 60세 부통령 축구 ..
hot_photo
‘골때녀’ 이천수, 신들린 전략…F..
hot_photo
배우 서이숙, ‘심장마비 사망’ 또..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1년 1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