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톡>실화 다룬 옛추억·풍경에 ‘뭉클’…공포·희망 파고든 사기에 ‘전율’

  • 문화일보
  • 입력 2021-09-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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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앞두고 개봉하는 ‘기적’·‘보이스’

여름 시장에 이어 한국영화 추석 대목 시장이 다시 열린다. 이번엔 2편이다. 간이역을 유치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소박함을 담은 ‘기적’(감독 이장훈)과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보이스’(감독 김선·김곡)다. 각 휴먼 코미디와 범죄 액션의 장르적 외피를 입었으나 결국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한가위 관객들의 선택은 어느 쪽일까.


1988년 한국 첫 민자역 ‘양원역’ 모티브
박정민·임윤아의 풋풋한 매력 스크린‘가득’
옛 일상·당시 음악 어우러져 여운 남아


“토요일 오후 그렇게 망설이지 말고 춤을 춰봐요 나와 함께.”

가수 김완선이 1989년 발표한 ‘기분 좋은 날’의 첫 소절이다. 듣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이 노래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은 배우 박정민·이성민·임윤아 주연작 ‘기적’의 전체 정서를 관통한다. ‘기적’은 그 제목처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기적이 진행되는 과정을 느리지만 선명한 발자국을 찍으며 관객들의 마음에 여운을 주는 시의적절한 ‘명절 영화’다.

기찻길이 지나는 산골에 사는 준경(박정민)은 “마을에 기차역을 세워달라”며 청와대로 50통 넘게 편지를 보낸다. 왕복 5시간이 넘는 통학 길을 오가는 준경의 마음과 달리 원칙주의자인 기관사 아버지 태윤(이성민)은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그는 자칭 ‘뮤즈’인 라희(임윤아)의 도움을 받으며 기차역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차곡차곡 진행해나간다.

‘기적’은 ‘배우 보는 맛’이 일품이다. 박정민은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0대 소년의 풋풋한 매력을 스크린 가득 담는 데 성공했다. 그와 호흡을 맞추는 임윤아 역시 앞서 선보인 영화 ‘엑시트’의 코믹한 캐릭터에 10대 소녀의 청순미까지 더하며 그럴싸한 앙상블을 이룬다. 완고한 아버지를 연기하는 이성민은 영화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배우의 존재감은 출연 분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고 웅변하듯, 유독 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당위를 온몸으로 설명한다. 준경의 누나 보경 역을 맡은 이수경은 기대 이상의 발견이다. “대학 가는 것보다 아버지와 동생 챙기는 게 더 좋다”는 보경은 마치 실제 산골 소녀를 데려온 듯 날것 같은 연기로 ‘기적’에 힘을 불어넣는다.

기적 같은 상황으로 이야기를 이끌기 위해 부여한 다소 과도한 설정은 아쉽다. 준경의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 그를 수학천재로 묘사하고, 맹목적으로 그를 좋아하는 국회의원 딸 라희의 존재도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각 인물이 가진 속내를 영화 후반부에 몰아치듯 쏟아내며 아귀를 맞춰가는 과정도 다소 헐겁다.

하지만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실화가 바탕’이라는 한 줄의 설명은 기적적인 이야기에 힘을 부여한다. 실제 1988년 마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역 ‘양원역’을 모티브로 한 터라 영화적 설정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장훈 감독이 공들여 일군 1980년대의 풍경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테이프가 엉켜 남녀 주인공을 낭패에 빠뜨리는 비디오테이프와 예스러운 질감의 사진을 토해내는 폴라로이드, 빨간 우체통 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면,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과 영화 ‘라붐’의 주제가로 유명한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Reality)는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추석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보러 가도 좋은, 착하고 기분 좋은 영화다. 12세 관람가. 안진용 기자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보이스’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소재로 다룬 액션
전직형사 변요한·조직총책 김무열 연기 ‘압권’
사기수법·과정 현실감있게 그려내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연간 3만 건을 오르내리고 있다. 피해 금액은 2018년 4040억 원에서 2020년 7000억 원으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도 보이스피싱 범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영화가 주목한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그들의 사기 수법과 과정을 범죄 액션 장르에 담아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건설 현장의 작업반장인 전직형사 서진(변요한)과 아내(원진아)는 어느 날 걸려온 보이스피싱 전화 한 통에 속아 아파트 중도금 7000만 원을 뜯기고, 다른 동료들도 목숨 같은 돈을 다 잃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아내까지 교통사고로 쓰러져, 서진은 조직의 총책인 설계자(김무열)를 직접 잡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고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접해 보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어떻게 전화 한 통화에 그렇게 쉽게 속을 수 있나” “보이스피싱 사기는 노인들이나 당하는 일 아닌가.” 그러나 영화에서 보이듯 최근 보이스피싱 수법은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김무열의 대사처럼 “상대의 공포와 희망을 파고들어” 사리판단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동안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보이스피싱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프로덕션이 눈길을 끈다. 제작진은 지능범죄수사대, 화이트 해커, 금융감독원 등의 협조와 자료 조사를 통해 리얼한 보이스피싱 세계를 창조했다. 예를 들어, 변작기를 이용해 번호를 조작하는 방법, 피해자의 콜을 가로채는 수법,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대본 등 멀쩡한 사람이 보이스피싱에 걸려들어 피해자가 되는 장면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정밀하게 짜인 보이스피싱 과정에 비해 변요한이 사건에 뛰어드는 대목은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아무리 전직형사라지만 전화 몇 통으로 실체도 불분명한 조직을 찾아내고 잠입하는 게 작위적이다. 잠입 후에도 의심받는 위기가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비교적 쉽게 특급 보안 정보에 접근하고 외부와 연결도 되는 장면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벌한 조직 내에서라면 정말 죽을 둥 살 둥 해야 할 텐데 모든 일이 생각보다 수월해 보여 한 단계 더 깊은 몰입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미덕은 분명해 보인다. 결코 캠페인 같지 않은 방법으로 보이스피싱의 과정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면서 호기심도 자극한다. 또한 변요한, 김무열, 박명훈, 김희원의 연기가 조금은 부족한 극의 개연성을 영리하게 보완한다. 변요한은 수많은 액션을 거의 대역 없이 소화했다. 김무열은 비열한 악인의 모습을 얄미울 정도로 잘 표현했다. 지능범죄수사대장 김희원과 조직의 해결사 박명훈의 카리스마도 돋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보이스피싱을 안 당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게 된다. “모르는 데서 전화가 오면 아예 받지 않는 것”이다. 15세 관람가. 김인구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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