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확장 - 통화긴축 ‘정치적 병행’… 투자위축 부르는 ‘연계위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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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실의 Deep Read - 정책공조냐 미스매치냐

文정부, 대선 앞두고 초팽창예산·재난지원금 등 퍼주기하며 기준금리 인상… 정책 ‘믹스’ 아닌 ‘미스’

재정정책은 민간부문 역량 ‘驅逐’… 통화정책은 자산시장 과열 식히기보다 소상공인·취약계층 부담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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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노령화, 정보화, 기후변화 등 일찍이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거시경제 정책도 변이 중이다. 문재인 정부도 ‘거시정책 공조(policy mix)’ 명분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재정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 당국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통화 당국의 금리 인상 등 긴축 흐름과 충돌한다는 지적에 대해 “거시정책 공조는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일회성 소비 증가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는 현재의 소비를 위해 미래세대에 짐만 지울 뿐이다. 더구나 총선과 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해 보이는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정책 공조냐 미스 매치냐

한국 경제의 경기 회복이 지속될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한국은행은 지난 8월 2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긴축을 예시하는 중앙은행의 강한 의도에 반해 정부는 올해 들어 두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까지 재난지원금을 풀었고, 그것도 모자라 내년 예산을 올해 대비 8.3%나 늘어난 604조 원의 ‘초팽창’ 예산으로 잡았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엇박자라는 비판이 만만찮은데, 정부는 이에 대해 ‘정책 공조’라고 설명하고 있다. 원론적으론 불황에는 경기 흐름과 반대로 확장정책을, 호황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정책을 써야 한다. 유동성 정책만 놓고 본다면 재정지출도 풀고 통화량도 풀거나, 반대로 재정도 조이고 통화량도 거둬들여야 상쇄작용을 해 조화를 이루며 정상적인 정책 공조가 펼쳐진다고 본다.

즉 한편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경기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출 확대와 왜곡된 정책으로 부동산시장을 비롯한 자산시장이 과열됐으니 이를 식히려면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 건 과히 정상적이랄 수 없다.

사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은 미국이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도 발견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6조 달러 규모의 초대형 재정지출 확대를 천명했지만,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잭슨홀 미팅에서 연내 ‘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 상승해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유로존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정책 변이가 부른 위기

확장적 재정지출과 긴축적 통화공급이라는 상충적인 정책이 공존하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 시장에서 일사불란한 비판의 목소리가 아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최근 정책의 변이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론적인 차원에서도 거시경제 정책 수단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던 1970년대에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동등성 정리(Equivalence Theorem)’가 재등장하면서 통화정책 위주의 거시경제 안정정책이 주류를 이뤘다. 1980년대 들어서는 통화정책이 재정부문의 제약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재정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논의들이 전개됐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교수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연계를 강조하며, 재정정책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 통제에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를 지속하면서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한계를 보이자 소위 비정상적인 양적완화를 함께 사용하면서 정책의 조합적 사용이라는 변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재정적자 확대가 글로벌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유로존 및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재정적자가 다시 경제위기·국가채무위기·금융위기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거시경제·금융 연계(macro-financial linkage) 위기’를 확산하게 됐다.

◇훨씬 취약한 한국 경제

한국 경제도 ‘거시경제·금융 연계 위기’에 예외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훨씬 취약하다. 정부의 설명처럼 최적의 정책 조합이 아닌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재정지출로 추가적 수요 증가를 만들기 위해선 투자 증가로까지 연결돼야 경기 회복에 도움을 준다. 일회성 소비 증가만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는 현재의 소비를 위해 미래세대에 짐만 지우는 일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재정지출이 총선과 대선 등 주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뤄진다는 의혹이 짙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경영난에 처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가중되고 있는 소상공인이나 취약계층에게 재정지출 확대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취약한 미봉책에 그치며, 오히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키울 수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신규 가계부채는 감소하겠지만, 이미 가중 부담이 되는 기존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이 증가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다중채무자·저소득자·저신용자와 같은 ‘취약차주’가 2분기 기준 149만9000명으로 전체 가계 대출자의 7.9%에 이른다.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590조7000억 원인데, 이번 금리 인상으로 1조5000억 원이나 연간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에 급속히 편입된 한국 경제는 금리나 환율을 통한 통화정책을 이용한 경제 운영의 여지가 크게 축소됐다. 반면 정치적 민주화는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국민의 사회복지나 경기 진작에 대한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워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재정정책은 일단 시작된 후에는 경기 상황에 맞춰 이를 중단하거나 취소하기 어려운 비가역성을 갖고 있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재정정책은 성장 기여도가 낮아서 민간부문의 역량을 구축(驅逐)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신중해야 할 정책 공조

당장 국민의 요구에 맞춰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하게 되면 국가채무가 늘 수밖에 없다. 과다한 국가채무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의 이자율 관리와 물가 안정화 능력을 저하할 수 있다. 정부는 성장 잠재력과 재정 건전성, 원화가치의 안정 등을 우선순위로 놓는 재정·통화정책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

서강대 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 세줄 요약

정책 ‘믹스’ 아닌 ‘미스’ :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한 가운데 재정 당국은 추경·재난지원금·초팽창 예산 등 재정지출 확대 박차. 재정지출로 경기 부양한다면서 자산시장 과열 식히려 금리 인상하는 건 비정상.

정책 변이가 부른 위기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책 공조 혹은 정책 믹스라는 명분으로 확장적 재정정책과 긴축적 통화정책을 동시 사용하는 일이 빈번해짐. 정책의 변이성 때문. 하지만 이는 거시경제·금융 ‘연계 위기’를 확산.

훨씬 취약한 한국 경제 : 한국 경제도 이 위기에 예외일 수 없고 훨씬 취약. 특히 정치적 목적을 의심받는 확장적 재정지출은 민간부문 역량을 구축(驅逐)하고 미래의 재앙 불러. 금리 인상도 가계부채 부담을 불러올 것.

■ 용어 설명

‘테이퍼링’은 ‘점점 가늘어지다’ ‘끝이 뾰족해지다’는 뜻인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 정책 규모를 축소해나간다는 의미로 쓰임. 2013년 당시 벤 버냉키 Fed 의장이 처음으로 언급함.

‘동등성 정리’란 정부 지출 수준이 일정할 때, 재원조달 방법의 변화는 민간경제활동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 데이비드 리카도의 이름을 따 ‘리카도 동등성 정리’ 혹은 ‘대등 정리’로도 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