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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우석의 푸드로지 게재 일자 : 2021년 09월 09일(木)
고추장, 쓱쓱 비비면 입맛 쑥쑥…빨간 맛의 맵칼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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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수즉석떡볶이

▲  강릉 명동칼국수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고추장

고추, 정유재란 이후 전파설
광해군 6년 ‘남만초’로 기록
조선의 장류중 마지막 등장

오신채서 빠져있어 의외지만
영조도 항상 고추장 챙겨먹어

볶음·비빔·장아찌 등 변주
현대에도 ‘만사형통’ 소스로


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處暑)가 지나니 정말이지 선선하긴 하다. 이즈음 시골에는 초가을 볕에 붉은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한창이겠다. 고추를 말려서 고춧가루를 내고, 정월이면 찹쌀을 개어 넣고 고추장도 담가 먹는다. 고추장 한 숟가락이면 노적 같은 백미 한 그릇도 싹 비울 수 있다. 불현듯 새빨간 고추장이 당기는 새파란 가을이다.

고추야말로 한국인의 입맛을 상징하는 작물이다. 인류가 쓰는 대표적 향신료 고추는 외국에서도 여러 용도로 쓰지만, 우리처럼 거의 모든 음식에 넣지는 않는다. 고추를 많이 먹는 나라 하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원산지인 멕시코와 페루, 태국, 중국, 인도 등 몇 나라 입맛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한국인은 1인당 연간 4㎏ 정도의 고추를 먹는다는 통계가 있다.(4㎏은 은근히 무겁다) 건고추 기준이라 실제론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고추를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의 전통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추지만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언제부터 고추를 재배해 음식에 넣기 시작했을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 전후를 그 전래 시점으로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 이전에 이미 포르투갈을 통해 일본에 도입됐기 때문이다. 왜군이 고추를 태운 연기로 눈을 아프게 할 목적의 화학무기로 들여왔다는 말도 돈다. 왜란 이후 고추 재배의 기록이 나온다. 광해군 6년(1614년) 지봉유설에 남만초(南蠻草)가 등장하는데 전해진 경로가 ‘왜’라서 왜개자(倭芥子·겨자)라고도 부른다 했다. ‘재배한다’고 했으니 최초 도입 시기는 당연히 그 이전으로 추정한다.

기록이야 어쨌든 한국에는 원래 없던 식물임은 확실하다. 멕시코와 페루 등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지금 세계 각국에 현존하는 야생 고추의 식물 DNA를 분석해보면 100% 멕시코 원산과 일치한다. 약 9000년 전 멕시코 원주민들이 이미 고추를 식용했다고 한다. 이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유럽에 전파했다고 하는데 이는 콜럼버스의 기록에 기인한다. 그의 일기에는 고추를 ‘후추보다 더 좋은 향신료’라 썼고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고추는 너무 쓰고 매워 유럽에서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고 콜럼버스도 그리 재미를 보지 못했다.

원래 구대륙에도 야생 고추가 자생했다는 설도 있다. 2011년 발간된 책 ‘고추 이야기’(권대영·장대자·양혜정·정경란 공저)에 따르면 원래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야생 고추가 있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후(1492년) 너무도 빠른 시간 안에 16세기(100여 년 후) 일본과 한반도에까지 전파됐을 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고쵸’라 풀이한 ‘초(椒)’자가 1527년의 훈몽자회에도 등장한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임진왜란 한참 전의 기록도 있다. 태조 이성계(1335∼1408년)가 순창고추장을 무척 좋아해 진상하라 명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황희(1363∼1452년) 정승 역시 된장에 고추만 반찬으로 즐겼다는 말이 내려온다. 진작 있었잖냐는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

물론 이 같은 주장에는 과거 기록된 초(椒)를 지금의 고추(辣椒)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이 따른다. 그 이전 기록에는 산초(山椒), 천초(川椒), 호초(胡椒) 등을 써서 얼얼하고 매운맛이 나는 양념을 초장(椒醬)이라 불렀다.

아무튼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았던지 고추는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16세기 문헌부터 고추 얘기가 자주 나오더니 1680년에는 고추장 만드는 법이 ‘소문사설’에 기록으로 등장한다. 1788년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순창과 천안의 고추장이 유명하다고 ‘명품’까지 적어놨다. 18세기, 드디어 고추를 넣고 담근 김치에 관한 내용이 증보산림경제(1766년)에 등장한다. 김치와 고추의 역사적 만남이 이즈음 시작됐다.

고추장은 고추를 이용한 발효 장(醬)이다. 장류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토속 장류가 고추장이다. 중국에서는 뜻을 풀어 라자오장(辣椒醬)이라 하지만 한국 이름 그대로 쿠자오장(苦椒醬)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처음 ‘한국 매운 고추 양념(Korean hot pepper paste)’이라 풀이했지만, 지금은 국제 규격 인증을 통과해 ‘gochujang’이라 그대로 쓰는 게 맞다. 2009년 제32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총회에서 국제 공식 식품명이 확정됐다. 고추장은 인도의 카레(curry)처럼 한국 고유 장류이니 당연한 일이다.

고추는 채소 중 가장 매운 축에 들지만 의외로 파와 마늘, 부추, 달래, 흥거(무릇) 등 불교의 오신채(五辛菜)에도 막상 빠져 있다. 불가 계율에 오신채가 생긴 이후에 전래된 까닭이 아닐까 하는데, 아무튼 그 덕에 수행하는 스님들은 매콤한 김치나마 챙겨 먹을 수 있게 됐다. 고추는 고추장으로 형태가 변화하며 단맛을 더한다. 새로운 맛의 탄생이다. 고추 특유의 달달한 맛과 향은 녹말(찹쌀)의 당분과 만나 더욱 진해진다. 고추가 가진 미각적 특성 덕에 맵고 달달한 맛이 서로 잘 어울린다.

▲  고씨네 고추장찌개

▲  비와별 닭갈비

고추장까지 생겨나면서 한식은 빨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찬 가짓수가 얼마 없어도 밥을 수북이 먹는 옛날 한식 상차림에 잘 어울렸던 식재료가 고추였다. 조선 왕 중 가장 장수한 영조는 소식하는 식습관이었다지만 고추장을 늘 두고 먹었다. 송이, 전복, 꿩고기와 함께 고추장을 챙겼고 이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참고로 대구를 비롯한 경북 음식이 대부분 빨간 이유는 소금이 귀했던 탓이다. 살펴보면 국이며 찬 모두 온통 붉은 음식 일색이다. 소금이 나는 바닷가와 개펄이 멀고, 해변까지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소금 대신 고추를 택했다. 밥을 삼킬 만큼 매운맛에 방부제 역할까지 하니 찬으로 삼기에 더없이 좋았다. 지금도 청송과 영양 등 경북에 고추 명산지가 많고 고추지, 고추된장박이, 고춧잎 장아찌 등 고추 음식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조건에서 나온 결과다.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응용 식품도 많다. 식초와 설탕을 넣은 초고추장이나 된장을 섞은 쌈장, 고추장과 다진 소고기를 함께 볶아낸 볶음 고추장, 고기와 꿀 등을 넣은 약고추장, 굴비를 찢어 넣은 고추장 굴비 등 다양한 맛의 고추장이 생겨났다. 고추장은 그냥 먹기도 하지만 다른 음식에 쓰임새도 많다. 대표적인 게 떡볶이와 비빔밥, 볶음 양념, 장아찌다. 된장찌개처럼 고추장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대학생 시절 MT에 가면 아침에 끓이던 찌개가 바로 고추장찌개다. 국물맛이 낯익다 했더니 강원도 해안가에서 즐겨 먹는 장칼국수에도 고추장을 쓴다.

고추장은 만사에 형통하는 ‘소스’다. 오이나 당근 등 생채소는 물론이고 오징어나 마른 멸치에도 딱이다. 질 좋은 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보통의 재료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예전엔 돼지갈빗집을 가면 1인당 고추장 종지를 하나씩 내줬다. 요즘도 돼지갈비 노포에 가면 으레 쇠 종지에 고추장을 담아낸다. 제육볶음이나 두루치기 등 고기나 해산물을 볶을 때도 고추장은 필수 양념이다. 특유의 냄새를 잡고 맛을 끌어올린다.

국내에서 고추장으로 가장 유명한 고장은 누가 뭐래도 전북 순창군이다. 이미 300년 전인 1720년 어의 이시필이 그의 저서 소문사설에 순창식 고추장의 레시피를 기록해뒀을 정도다. 가장 이른 고추장 제법의 공식기록이다. 섬진강을 끼고 강천산을 등진 순창은 내륙 산간 분지 지형이라 발효에 필요한 균과 이에 맞는 일조량이 최적의 고추장 제조 조건을 갖췄다. 다른 지역 고추장에 비해 순창의 것은 색이 좋고 향과 맛이 깊다고 대대로 전해졌다. 전통민속 고추장 제법을 전수해온 고추장 마을이 있어 기술 또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전수되고 발달했다. 순창 전통 고추장은 지리적 표시제 8호로 등록되며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고추장과 비슷한 외국 음식을 굳이 꼽자면 중국 두반장과 미국의 칠리 콘 카르네 등이 있다. 셋 다 매콤한 고추(칠리)를 기본으로 콩이나 양파 등을 넣어 점성과 밀도를 높인 음식이다. 쓰촨(四川)식 두반장은 매운 랄초(辣草)를 발효시켜 만든다. 마파두부를 비롯해 훠궈, 탄탄미엔, 쉐주어로우(水煮肉) 등 매운 요리에 주로 쓰인다. 칠리 콘 카르네는 멕시코 음식 같지만 사실 미국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칠리에 소고기와 강낭콩을 갈아 넣고 토마토나 양파, 향신료를 넣어 자작할 때까지 끓여낸다. 치즈를 뿌리고 그것만 먹기도 하지만 빵이나 피자에 얹어 양념으로 먹기도 한다. 토르티야에 듬뿍 얹거나 찍어 먹는 걸 보면 영락없는 양(洋)고추장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고추에 든 캡사이신(capsaicin)이 스트레스 해소와 진통 효과에 그리도 좋다 한다. 끝날 줄 모르는 역병과 멈춘 세상, 지친 몸에 ‘고옥탄가 연료’ 한번 충전한다 생각하고 고추장에 밥을 쓱쓱 비벼 먹으며 잠시나마 행복을 느낀다면 좋을 일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맵칼한 고추장 맛집

◇떡볶이 = 은하수즉석떡볶이는 특유의 수제 고추장이 맛나기로 소문난 집이다. 홍익대 인근 미술학원 학생뿐 아니라 주부, 심지어 ‘아저씨’들도 일부러 멀리서 찾아와 먹고 간다. 전골 식으로 끓여내는 즉석떡볶이의 맛을 책임지는 것은 과일을 갈아 넣은 적절한 단맛의 고추장. 톡 쏘는 매콤한 맛을 은근히 받치는 단맛의 고추장이 깊은 풍미를 낸다. 거창하게 요리라 불러도 손색없다. 바삭하게 튀겨낸 순대 튀김이 압권이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2길 5. 2인세트(떡볶이2 계란2 만두2 라면1 쫄면1 오뎅1) 1만3000원.

◇고추장찌개 = 고씨네 고추장찌개. 간판부터 고추장이 들어갔다.(사장도 고 씨임을 밝히고 있다) 돼지고기 목살을 넉넉히 넣고 끓여낸 매콤 달달한 고추장찌개를 파는 집이다. 식사로도 안주로도 딱이다. 튼실한 목살에 고추장 양념이 배었으니 그 맛이야 오죽할까. 대파를 살짝 튀겨 얹었는데 국물에 상큼한 대파 맛이 녹아난다. 업태로 포장마차를 내세운 집인데 젊은 커플로 그득한 실내 분위기는 분명 ‘힙’한 맛집이다. 점심메뉴 고추장찌개(6900원)는 흑미밥에 달걀프라이까지 근사하게 나온다. 서울 중구 수표로 26 1층. 1만6000원.

◇고추장 굴비 = 순창동백민속고추장. 고추장 음식 중엔 고추장 굴비를 으뜸으로 친다. 순창 고추장 마을에서 대대로 고추장을 담아온 이곳에선 ‘찢은 굴비 장아찌’란 이름으로 판다. 바싹 말려 구워낸 굴비를 찢어 고추장에 박아 넣었다. 국내산 조기 굴비와 순창 고추장마을의 전통 고추장. 명품끼리 만났다. 굴비와 고춧가루부터 겉보리, 천일염까지 죄다 국산만 쓴다. 식당은 따로 없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된다. 찹쌀과 매실, 보리고추장 등도 있다.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821. 1㎏ 15만 원.

◇장칼국수 = 강릉 명동칼국수는 중앙시장 안에 위치한 국숫집이다. 시장상인이나 장 보러 나온 손님들이 허기를 달래는 집이다. 황송하게도 장칼국수 값은 4000원, 칼국수는 3000원이다. 강원도는 맹물에 장(醬)을 풀어 끓이는 장칼국수의 본향이다. 육수용 건어물이 귀했던 탓이다.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된장을 살짝 섞은 국물을 팔팔 끓이고 여기다 직접 반죽을 밀어 칼로 썰어낸 면발을 말아낸 뒤 김가루를 얹으면 끝이다. 얼큰하고 묵직한 국물은 막판에 단맛을 내니 입에 짝짝 붙는다. 강원 강릉시 중앙시장1길 5. 4000원.

◇철판닭갈비 = 비와별 닭갈비. 철판닭갈비에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닭 다리 살에 고구마채, 양배추, 깻잎, 가래떡까지 한 냄비에 담겨 있다. 각양각색의 맛과 식감을 내는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것이 바로 고추장이다. 닭갈비의 본향 춘천에서 1997년 영업을 시작한 이 집(구 우성닭갈비)은 고추장 맛으로 이름났다. 칼칼하면서도 꽤 부드러운 끝 맛이 인상적이다. 양배추에서 우러나는 즙이 달달한 맛을 더한다. 비와별 닭갈비 본점. 강원 춘천시 스무숲길 5.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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