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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1년 09월 10일(金)
이건표 “유소년 선수 후원 13년…473명 회원에게 매달 딱 1만원씩만 걷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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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6년 퇴직해 6년째 주중 농사일을 하며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건표 운사모 회장은 지난달 20일 충남 청양군 자신의 자택에서 익어가는 토마토 열매를 들어 보이며, 쏟는 정성만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유망주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계속 돕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 M 인터뷰 - 대전 체육계 ‘키다리 아저씨’ 이건표 운사모 회장

형편탓에 운동 포기하는 일없게
대전 학생선수에게 매달 장학금

운동장 겉돌던 보육원 출신 선수
격려금 받고 전국체전 금메달 따

도쿄올림픽의 오상욱·우상혁도
후원받고 성장해 태극마크 달아
사연 알려지자 전국서 가입문의

42년간 교육자로 운동부와 인연
사비털어 지원하다가 회원 모아
학생 54명에게 총 3억5000만원


이건표(67)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은 대전 체육계에서 ‘키다리 아저씨’로 통한다.

이 회장은 지난 8월 끝난 도쿄올림픽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회장이 이끄는 운사모가 펜싱 남자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오상욱(25·성남시청)과 육상 남자높이뛰기 결선에서 235㎝를 뛰어 한국신기록을 작성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의 학창시절에 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전해졌기 때문. 운사모는 가정 형편 등으로 인해 운동에 전념하기 어려운 대전지역 유소년 선수에게 고교 3학년까지 매달 장학금 20만 원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다. 운사모 회원들은 매월 1만 원씩 각출, 장학금을 마련한다. 현재 473명의 회원이 운사모에 가입돼 있고, 총 54명의 학생선수가 운사모의 지원을 받았다. 그동안 학생선수들에게 지급된 장학금 규모는 3억5000만 원이다. 운사모는 오상욱과 우상혁 외에도 국가대표를 여럿 배출했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진 못했지만 남자탁구 안재현(22·삼성생명)과 남자핸드볼 골키퍼 이창우(18·대전대성고), 여자카누 이하린(27·대전시청) 등이 운사모의 후원을 받고 성장해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달 20일 충남 청양군 자택에서 만난 이 회장은 “도쿄올림픽 이후 인터뷰를 많이 했고, 운사모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13년 만에 마침내 운사모의 좋은 뜻이 알려져 꽃이 핀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 회장은 “이 모든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닌 우리 운사모 구성원의 노력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대전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교육자다. 1973년 2월 공주교대를 졸업하고 이듬해 3월 초등교사로 임용됐으며 2016년 8월 정년 퇴임할 때까지 42년 동안 교육계에 몸을 담았다. 2004년 3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대전서부교육청, 대전시교육청 장학사를 지냈으며 2008년 9월부터 퇴임할 때까지 초교 교장을 맡았다. 2002년에는 한국교원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이 회장과 스포츠의 인연은 우연히 맺어졌다. 이 회장은 “공주교대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한 선배가 뛰어오더니 ‘너 운동 좀 하게 생겼다’면서 핸드볼부에 들어가라고 권유했고,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 가입했다. 어렸을 적부터 몸이 약했고, 의지력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었고 학창시절에는 왕따도 당했다. 그래서 운동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운동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회장의 인생은 핸드볼부에 들어가면서 크게 바뀐다.

이 회장은 “체력도 끈기도 없었는데, 운동을 하면서 달라졌다. 몸이 튼튼해졌고, 정신력도 강해졌다. 돌이켜보면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듯싶다. 전국교대 체육대회에선 육상선수로 출전했다. 인생의 대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운동의 매력에 푹 빠진 이 회장은 공주교대 졸업반 시절 ‘학생들에게 공부와 운동을 함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마음을 굳힌다. 몸과 마음이 운동으로 변화하는 걸 실감했고, 운동을 통해 무엇이든 끝까지 이루고야 마는 끈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처음 부임한 학교에 육상부가 있었다. 이 회장은 운동부 지도교사 보직을 맡았고, ‘공부하는 육상부’로 탈바꿈시켰다. 이 회장은 “그 시절 학생선수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만 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운동만 하다가 잘못된 길로 가는 사례를 많이 봤다. 그래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도록 밤 7∼10시까지 따로 보충 수업을 했다”고 말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월말고사에서 육상부원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 평균 90점 이상을 받았고, 전교 1등까지 육상부에서 나왔다.

2004년 장학사가 됐고, 소년체전 등 유소년 체육을 담당했다. 그런데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운동을 그만두는 학생들의 사연을 듣게 됐다. 운사모를 구성하게 된 계기. 이 회장은 “장학사를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떠나는 유망주를 여럿 봤다”면서 “처음엔 사비를 털어 딱한 사정이 있는 선수들을 지원했는데 이게 한 명, 두 명이 아니기에 버거웠다”고 밝혔다.

2008년 초교 교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운사모를 구상했다. 유소년 체육을 담당하면서 만난 지도자와 체육계 인사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했다. 이 회장은 “책임감과 의리가 있었던 4∼5명이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수원에 박지성로가 있듯, 우리도 대전에서 길에 이름을 붙일 만한 체육인재를 길러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게 운사모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운사모 규모는 조금씩 커졌다. 100명이 모인 2009년 12월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첫 장학생 4명을 선발했다. 장학생으로 뽑힌 학생선수들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고3 때까진 무조건 지원한다”고 약속했다.

운사모 회원은 매월 1만 원씩 회비를 낸다. 1만 원 이상은 받지 않는다. 이 회장은 “10만 원씩 내고 싶다는 분들도 있었다. 좋은 마음은 감사하게 받는다. 하지만 회비를 강제할 수 없는 비영리단체고, 성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월 1만 원이면 부담 없이 꾸준하게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회원은 473명. 매년 2000만 원 전후의 장학금이 모인다. 이 회장은 “이건 성금이다. 곳간에서 가을 곶감을 빼먹듯이 빼먹으면 다 없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장학금 지출 외에는 회비를 건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A는 3세가 되던 해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랐다. A는 정구선수였지만, 정구부 운영을 위한 ‘깍두기’였다. 그래서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냈다. 이 회장은 A를 만나 “너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훌륭하게 된 사람이 세계 역사에 엄청나게 많다”면서 운사모 회원들의 격려금 10만 원을 전했다. “네 맘대로 써도 되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A는 10만 원을 받으면서 “저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처음 받아요”라고 울먹였다. A는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고 다짐했고, 이 회장은 A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이 회장은 “이후 A가 정말 100% 달라졌다. 이전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는데 연전연승을 달렸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실업팀에 스카우트 돼 지금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운사모가 배출한 최고의 성공사례 중 하나다”고 말했다.

오상욱은 3기 장학생이다. 오상욱의 지도교사가 이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상욱이라는 유망한 학생이 있는데, 형도 펜싱을 하기에 운동비용이 부담됐고, 그래서 동생 오상욱이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 회장은 오상욱을 만나자마자 ‘이 친구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오상욱은 운사모의 회원이 됐다. 2018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뒤 곧바로 운사모를 찾아왔고 매달 1만 원씩을 내고 있다. 오상욱은 세계 정상에 오른 뒤 회비 외에도 따로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이 회장은 “좀 더 네가 성공한 뒤에 해도 괜찮다”고 만류했다.

최근 이 회장은 ‘돈쭐’을 경험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계신 분들로부터 운사모에 가입하고 싶다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이 회장은 “오상욱과 우상혁이 SNS에 고마움을 남겼고, 그걸 본 국민이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다. 상욱이와 상혁이 덕분에 운사모가 유명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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